텍사스는 들꽃의 나라다. 주화(州花)가 야생화 블루버넷(Bluebonnet)일 정도로 야생화 천국이다. 다른 곳은 모르지만 텍사스 수도 어스틴 근교 들꽃들은 봄가을이면 장관을 이룬다.
우리가 흔히 ‘이름 모를 들꽃’, 혹은 ‘이름 없는 들꽃’이라 일컫는 것은 들꽃들이 지닌 익명성과 은둔성 때문이리라. 들꽃이라고 생물학적으로 학명이 없진 않을 텐데, 관상용이 아니기에 꽃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왜 그 하나하나 이름이 없겠는가.
이름은 있되 알려지지 않은 이름들. 이 때문에 이름 없이 자신의 삶을 소신껏 살아가는 우리네 민초(民草)들과 들꽃들은 당연히 정서적 동지일 수밖에 없다.
또, 들꽃이 지닌 은둔자의 모습은 어떠한가. 인간은 대개 널리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싶어 하는 공명심이 강하지만, 다른 한편엔 사회로부터 멀리 피하여 숨어서 살고 싶어 하는 은둔성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세속을 벗어나 숨어사는 은자의 삶이란 들꽃같이 소박하고 맑고 쓸쓸하리라. 하지만 누가 들꽃같이 산다고 하여 헛되다 말할 수 있으랴.
‘Hamilton Pool Rd’가 끝나고 우회전이 아닌 좌회전을 하면 ‘Spur 962번’ 지방도로가 나오는 데 그 길에서 샛길로 들어가는 시골길은 구글 지도에도 나오지 않을 정도다. 전형적인 텍사스의 평원지대로 목장 길을 한 시간 정도 천천히 혹은 조용히 운전하며 가는 길이다.
노란색, 보라색, 분홍색, 하얀색, 등의 꽃들이 길가 양쪽으로 똑같이 피어있는 모습이 데칼코마니(흡수성이 적은 종이 위에 물감을 두껍게 칠한 후 반으로 접었다 펴서 대칭적인 무늬를 만드는 초현실주의 회화 기법)를 보는 듯 환상적이다.
한참 동안 데칼코마니 들꽃 길을 지나니 한국의 들국화를 연상시키는 들꽃들이 구릉을 온통 뒤덮고 있다. 노란 색도화지를 깔아 놓은 듯 장관이다. 한국에선 전혀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유채꽃의 노란 물결은 인위적이지, 자연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화 속 나라라 해야 할지, 별천지라 해야 할지,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돌아오는 길에 존슨 대통령 생가 푯말이 보였다. 생가라 하여 집 한 채 있는 줄 알았더니 널디 넓은 목장이었다. 그 곳도 들꽃이 장관이었다.
생가의 들꽃들도 널은 목장에 자연 상태로 피어있어 곱고 청아했지만 감동이 덜 했던 것은, 알게 모르게 보호를 받는다는 점 때문이었으리라. 존슨 대통령 농장 안에 피어있는 화사한 들꽃들을 방문객 어느 누가 함부로 짓밟고 꺾겠는가.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위험 상태에 완벽하게 노출되어 있지 않은 들꽃이라면 엄밀하게 말해 들꽃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들꽃은 보호 받는 꽃이 아니기 때문이다.
들꽃의 미덕은 기름지지 않은 땅, 토척하기 이를 데 없는 땅에서 힘겹게 피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들꽃에 대해 한없는 안타까움과 애잔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광활한 텍사스 대평원 인적도 없는 거기에, 저만치 피어있는 들꽃은 ‘아름답다’기보다는 ‘어여쁘다’는 느낌을 준다. ‘아름답다’는 말이 주는 화려함과 당당함보다 주목 받지 못한 자에 대한 연민의 정이 ‘어여쁘다’는 말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힘없고 연약한 들꽃의 아름다움은 군집성으로 완성된다. 들꽃은 하나였을 때는 그 모습이 별로 눈이 띄지도 않는다. 모양이 신통치 않고 초라하기까지 하다. 잘난 것 하나 없는 갑남을녀와 같다. 즉 존재감이 느껴지질 않는다.
그러나 그 볼품없는 들꽃이 한군데 모여 군락을 이루었을 때 그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어떤 장미화, 백합화와도 비교할 수 없는 위용을 드러내는 것이다. 힘없고 못난 백성이라도 한데 뭉치면 나라님도 바꿀만한 위용을 갖게 된다고 한다면 엉뚱한 상상일까. 한데 모여 있어야만 존재감이 도드라지는 들꽃들은 서로가 서로를 잘 보살피리라. 단단한 공동운명체적 삶으로 서로가 서로의 존재에 고마움을 느끼며 끝없이 아끼고 사랑하리라.
들꽃은 살며시 나에게 속삭였다. “저희들처럼 이웃을 사랑하세요.”
<
김완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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