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밸런타인스 데이에 시카고의 한 여성은 남편을 위해 아주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꽃다발 대신 진심을 가득 담은 선물, 편지였다. 뉴욕타임스의 독자칼럼 ‘현대식 사랑(Modern Love)‘ 에 기고할 에세이를 그는 그 날 마무리했다.
모르핀에 취해 가끔씩 정신이 혼미해지고 깜빡깜빡 졸아서 글의 진전이 느리지만 글쓰기를 미룰 수는 없었다. ‘마감시간’이 다 됐기 때문이었다. 2015년 9월 난소암 판정을 받은 후 생의 마감시간이 재깍재깍 다가들고 있었다.
에세이의 제목은 ‘내 남편과 결혼해보세요(You May Want to Marry My Husband)’, 글은 모든 결혼 가능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공개서한이라고 할 수 있다. 남편과 잘 맞을 누군가가 그 글을 읽고, 남편을 알게 됨으로써 남편에게 또 다른 러브스토리가 시작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글을 쓴다고 했다. 그로서는 죽음을 앞두고 남편에게 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는 ’남편의 여자’ 를 찾아주고 싶었다.
동화작가인 에이미 로젠탈(51)의 에세이가 뉴욕타임스 온라인 판에 실린 것은 지난 3일이었다. 제목에 끌려서 글을 읽은 후 나는 가슴 뻐근한 감동을 받고, 여러 사람에게 이메일로 전달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 며칠 온라인상에서 수백만 명이 글을 주고받았다.
에이미와 동갑으로 24살에 만나 26년 결혼생활을 한 변호사 제이슨은 갑자기 유명인사가 되었다. 키 5피트 10인치, 몸무게 160파운드의 잘 다져진 체격, 핸섬한 얼굴에 패션센스 넘치는 멋쟁이, 아마추어 화가이자 콘서트를 즐기며 여행 같이 다니기 딱 좋은 낭만적인 남자, 요리 잘 하고 집안 곳곳 손질 잘 하며 아이들에게는 더 할 수 없이 좋은 아빠 … 신상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그렇게 ‘남편 중매’를 서놓고 열흘 후인 지난 13일 그는 세상을 떠났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한국에서는 ‘대통령 탄핵’ 사태가 블랙홀처럼 대중의 관심을 빨아들인 지난 몇 달, 국가와 민족을 논하는 거대담론들 사이로 ‘사랑’이라는 이슈가 떠오르곤 했다. ‘모던 러브’ 즉 ‘이 시대의 사랑’을 생각해보게 하는 사건/사연들이다.
사랑은 사람이 하는 것이니 근본적으로 이 시대와 저 시대가 다르지 않지만, 어떤 ‘튀는’ 사랑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고정적이지 않다. 사랑은 연령과 인종 그리고 성별을 초월한다 해도 그 허용 정도는 시대에 따라 달라져왔다.
‘황혼이혼’이 날로 증가하는 시대에 앞의 에이미의 사랑은 시대를 초월하는 사랑의 본질을 확인시켜 준다. 사랑이 지고지순할 때 조선시대의 사랑과 21세기 미국의 사랑이 다를 수 없다. 반면 프랑스 대선주자 에마뉘엘 마크롱의 사랑과 영화감독 홍상수의 사랑은 ‘튀는’ 사랑으로 눈길을 끈다. 전자는 아내가 엄마뻘이어서 화제가 되고, 후자는 아내 있는 남자의 사랑 즉 불륜이어서 비판을 받는다. 인기가 필요한 전자는 ‘화제’를 한껏 즐기고, 관심에서 놓여나고 싶은 후자는 화제에서 밀려나기만을 바랄 것이다.
오는 4월 선거를 앞두고 지지율 2위를 달리고 있는 마크롱 전 경제부 장관은 대단히 튀는 인물이다. 나이 39살에 정치경력도 별로 없이 대통령 직에 도전하는 패기, 젊고 활기찬 풍모 그리고 25살 연상 아내와 팔짱끼고 당당하게 활보하는 모습 등이 프랑스 유권자들에게는 신선한 자극이 되고 있다.
그가 아내 브리지트 트로뉴를 만난 것은 15살 때였다. 10학년이던 당시 트로뉴는 불문학 교사이자 연극반 지도교사로 그를 가르쳤다. 당돌한 소년은 세 아이의 엄마이자 남편이 있던 40살 여선생을 사랑했다. 보다 못한 그의 부모가 소년을 12학년 때 멀리 파리로 전학 보냈지만 결과적으로 ‘사랑’을 끊어내지는 못했다.
소년의 풋사랑을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여겼을 여선생도 결국은 이혼을 하고, 두 사람은 10년 전 결혼했다. 24년 꿋꿋한 사랑을 그는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기고 프랑스 국민들 역시 이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진정한 사랑이면 모든 게 용서되는 사회가 프랑스이다. 정치 지도자라 해도 사생활은 사생활일 뿐, 사랑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지난 가을 프랑스에서 가장 주목받은 책은 ‘안에게 보낸 편지’였다. 프랑솨 미테랑 전 대통령이 ‘숨겨둔‘ 여자 안 팽조에게 보낸 편지들을 담은 1,276 페이지의 책이다. 미테랑은 45살 때 19살의 안을 만나 평생 연인관계를 유지했다. 그의 장례식에는 부인 다니엘과 안이 나란히 섰었다.
홍 감독의 ‘불륜’ 역시 프랑스인들의 눈으로 보면 별 일이 아닐 수 있다. 두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제3자가 간섭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사랑이 누군가의 아픔을 전제로 한다면 이는 사랑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들을 아픔으로 내몰아도 어쩔 수 없을 만큼 나의 사랑은 불가피한가, 돌아보는 자세는 필요하다. 이 시대에도 사랑은 기쁨이고 슬픔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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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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