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30여년을 살아도 한국의 친구들과는 여전히 친구 사이이다. 한 두해에 한번씩 서울에 가면 반드시 만나는 친구 그룹들이 있다. 주로 중고교 친구, 대학 동창, 신문사에서 동료로 지낸친구들이다.
모두 수십년 알고 지낸 흉허물 없는 사이인데 언제부터인가 말을 가려야할 필요를 느꼈다. 20대까지만 해도 생각들이거기서 거기였는데 40~50 즈음부터일까,그룹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굳어졌다.
대충 구분하자면 강남에 사는 돈 있는 친구들과 강북에서 돈과는 별 상관없이 사는 친구들이다. 전자는 보수, 후자는진보인데 각기 입장이 너무도 확고해서그 반대편 생각을 용납하지 못한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저편은 ‘ 빨갱이’ 이거나‘보수 꼴통’이어서 말을 섞을 수 없다는것이 암묵적 합의이다. 나는 이편에서는말을 하고, 저편에서는 입을 다물었다.
지난 4개월 광장을 메운‘ 촛불’과‘ 태극기’를 보면서 나의 서로 다른 그룹 친구들을 생각했다. 한 그룹은 열심히 촛불을들었고, 다른 그룹은 태극기를 들지는 않았지만 촛불을 불안해했다. 10일 헌재의대통령 파면 결정에 한 그룹은 환호하고,다른 그룹은‘ 종북’이 설쳐댈 세상을 우려한다. 한국은 둘로 갈라져 있고, 분열의골은 깊다. 분열과 대립은 이번 탄핵사태로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박근혜 탄핵의 비극은 예정되어 있었는 지도 모른다. 한국 현대사를 바라보는상반된 시각, 그 분열의 시원에서 비극은태동되었다.
지난 2012년 12월 대선에서 박근혜는상대후보인 문재인 보다 100만표 정도더 얻어서 당선되었다. 국민들은 계층, 세대, 지역별로 정확히 양분 되었고, 이들을 가른 것은 상당부분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였다. 보릿고개에서 나라를 구한 위대한 대통령으로 보느냐 정권욕에 사로잡힌 독재자로 보느냐의 차이이다. 전자의 숭배가 태산 같이 굳건한반면 후자의 증오 또한 그 못지않게 강력하다.
박근혜의 비극은 분열에서 시작된 정권이 분열의 골을 더욱 깊게 한 데서 비롯된다. 당선 초기 약속했던 국민 대통합의 노력은 없었다. 부모를 흉탄에 잃은 충격과 이후 뼈저리게 경험한 배신의 상처때문인지 그는 반대 의견을 받아들이지못한다. ‘반대’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이귀를 닫아버리는 불통의 통치를 낳고, 불통하는 만큼 비선 측근에 의지하면서 어처구니없는 국정농단의 빌미를 제공했다.
그는 왜 실패했을까. 첫째는 그의 의식이 1970년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본다. 몸은 21세기에 있지만 의식은 박정희 통치시대에 멈춘 듯하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최대 과제는 아버지가 못 다한일을 완수하는 것이었다. 그 시대의 인물들을 기용하고, 국정 교과서를 개정했다.
둘째는 그가 능력에 비해 너무 큰 자리를 차지한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스스로의 업적 보다는‘ 영애’이기 때문에추앙을 받았다. 그를 높이 띄운 것은‘ 박정희 향수’였다. 이번 탄핵정국 중에도“ 부모를 모두 총탄에 잃은 가엾은 우리 영애를 왜 못 살게 구느냐”가‘ 태극기’ 진영의분노였다.
‘주역‘을 깊이 공부한 신영복 교수가‘자리’에 관해 말한 적이 있다. 사람은 각자 자기 능력의 70% 정도 쓰는 자리가적당하다는 것이다‘. 자리’가 그‘ 사람’ 보다 크면 사람도 상하고 그 자리도 파탄된다고 했다. 능력은 70인데 100의 능력을요구받는 자리에 앉는다면 부족한 30을무엇으로 채우겠는가. 거짓과 위선, 아첨등 부정한 방법들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의 비극을 끝으로 이제 한국은박정희 시대를 넘어서야 하겠다. 해묵은분열이 더 이상 새 시대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머리가 둘 달린 전설 속의 새를 생각한다. 몸통은 하나인데 머리가 둘인 새 이야기이다. 머리가 둘이니 생각이 둘이어서사사건건 부딪친다. 갈등이 잦아지면서 증오가 깊어졌다.
어느 날 머리 A가 우연히 독초를 잘못 먹고 복통으로 심하게 고생을 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옆의 B도 같이 배가아픈 것이었다. A는 B를 못살게 굴기 위해 계속 독초를 먹었다. 독이 치사량을넘어서며 결국 B는 죽었다. 한 몸을 공유한 A 역시 무사할 수가 없었다. 그도같이 죽었다.
한국에서 대선이 곧 시작된다. 골 깊은분열을 넘어서 국민들을 하나로 아우르고, 능력의 70%만 쓰면서 여유롭게 나라를 통치할 수 있는 인물이 어디 없을까.
그런 지도자를 찾아야 하겠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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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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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한국같은 환경에서 제대로된 지도자가 나올수가 있을까요?
좋은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