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러브, 박 보오 검!”지난해 방영된 한국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의 주연배우 박보검에 대한 찬사이다.
“나 벌써 몇 번을 봤는지 몰라요, 너무 재미있어서 완전 중독되었어요!”살짝 흥분된 목소리의 주인공은 리처드의 대만계 부인인 피비이다.
오늘은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팔로알토YMCA 수영장에서 한시간 동안 진행하는 아쿠아 부트 캠프라는 수중훈련반 친구들과 모인 날이다. 길게는 10년, 짧게는 1년을 함께 체력을 단련해온 수영친구들과 그 가족 등 15명이 20대 중반의 백인 여자 강사 매디를 초대해 정갈한 한국식당에서 우정의 오찬을 함께 하는 자리이다.
베트남 태생 중국계인 리처드는 가정적이다. 토요일마다 클래스를 마치고 나면 코스코나 수퍼마켓에 들러 식재료를 사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한다. 그런 그가 지난 한주 안보이기에 웬일인가 했더니 요리하다 손을 베었다며 붕대로 동여맨 왼손 약지를 들어 올리면서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그는 마나님이 한국드라마 삼매경에 푹 빠져 있을 때는 절대 방해하지 않고 맛있는 요리를 지어 올린다며 너스레를 떤다. 중국 남자들이 요리를 잘 해서 아내들이 좋아한다는 것은 낭설이 아니다.
그는 베트남 전이 한창이던 청소년기에 부모를 따라 파리로 이민을 갔다. 프랑스 육군병사로 복무하고 대학을 졸업한 뒤, 유펜으로 유학와 컴퓨터 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실리콘밸리에 정착하였다. 노키아에서 일하던 중 10년 전 그가 잠깐 감원 당했을 때 우리는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었다(미국에서 감원 당해보지 않은 자 인생을 논하지 말지어다). 지금은 잡지 온라인 구독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의 임원으로 승승장구 하고 있다.
그 옆에 앉은 대만 출신 저캉과 메이 부부는 대학에서 조교와 학생으로 만나 사랑을 꽃 피우다 인디애나로 유학와 박사학위를 함께 취득한 생명공학자들이다. 유순한 인상의 메이와 달리 남편 저캉은 남자 중 최고 연장자임에도 불구, 버터플라이, 개인 혼영 등 모든 종목을 지치지 않고 소화하는 것만으로는 성에 안차 클래스가 끝난 후 팔굽?펴기 30개를 하는 강철 체력을 자랑한다. 한 친구의 표현에 의하면 산적 같은 느낌을 주는 인텔리 마초이다.
건너편에 앉은 40대 후반 크리스는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업체의 중추적 인물로 중국계, 하와이계, 유럽계 피가 섞여 영화배우처럼 멋지게 생겼다. 인도네시아 출신의 아내 사라가 주니어 칼리지 내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그가 책을 사면서 만나 결혼에 이른 풋풋한 사랑의 주인공이다.
60대 후반인 일본계 여성 히사에를 사이에 두고는 중국 상해 출신으로 피아노 교습을 하고 있는 역시 60대 후반의 수잔과 조용한 성격의 남편 조셉이 앉았다. 도쿄 출신으로 목욕탕집 딸이었다는 히사에는 남편이 일본기업 실리콘밸리 지사에서 근무하다 은퇴하면서 이곳에 정착했다.
수잔은 66년부터 약10년 간 모택동 주석이 진정한 공산주의 체제를 확립하겠다며 지식인들을 농촌의 강제 노역장으로 내몰아 세뇌교육을 시키는 등 악명 높은 문화혁명의 광풍을 20대 초반에 몸서리치게 경험하였다고 한다. 모택동이 최고의 의료기술을 총동원해서 어쩌면 150세까지 살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 때는 거의 절망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예약한 방이 인원 초과돼 에콰도르 출신 MIT 재원인 아이다는 대학동창인 스페인 출신 남편과 두 어린아이를 데리고 룸 바로 밖 홀에 앉아 식사하는 불편을 기꺼이 감수한다.
이렇게 만남을 귀히 여기고 참가하는 성의를 보여준 모든 친구들에게 나는 깊은 동지애를 느낀다. 한국에서 친구가 보내준 품질 좋은 하이킹 면양말을 그들에게 한 켤레씩 선물했다. 너무 좋아하며 입이 귀에 걸린 그 친구들을 보니 나도 행복해진다.
어떻게 이렇게 세계 각지에서 모여 함께 수영을 하게 되었는지 그 인연이 신기하다. 친구들과 맛있는 한식과 정담을 나누노라니 인기그룹 ‘빌리지 피플’의 1978년 노래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영맨, 걱정할 것 없어, 영맨, 낯선 동네라고 기죽지마.
영맨, 모두 모여 그곳으로! Y.M.C.A.! ”
<
김덕환 실리콘밸리 부동산중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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