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 생활의 질 최고…물가도 가장 비싸
▶ 비제란드공원은 단일 조각가 의해 만들어진 세계최고 규모
오슬로 시청
■제5일 올덴(Olden) 에서 오슬로(Oslo)
자연 속에서 2일을 보내고 오슬로 다시 귀환하는 날이다. 올덴 호텔에서 아침 식사 후 8시에 버스에 올랐다. 오슬로까지는 종일 버스 속에서 있어야 한다. 도중에 리레함메르(Lillehammer)에 잠깐 들리기로 되어 있었다.
노르웨이 남부 내륙에 있으며 올덴에서 312 km(194마일) 떨어져 있다. 고속도로라 4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다. 산으로 둘러쌓여 있고 강과 호수가 있어 아름다운 곳이다. 199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며 1996년에는 동계 청소년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1928년 노벨문학상을 탄 Sigrid Undset 여류작가가 1949년 생을 마칠 때까지 작품 활동을 하면서 이곳에서 살았다.
리레함메르까지 가는 동안 조앤은 손님들을 지루하게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무엇보다도 유럽의 문화와 역사에 능하고 여행의 경험이 풍부하여 오는 동안 쉬지 않고 유렵의 문화와 역사를 설명하였다. 리레함메르시에 들어와서 시내 관광을 간단히 하고 오슬로로 향했다. 약 180㎞로 고속도로라 2시간 거리다. 오슬로에 도착하여 바로 Scandic Crwon Hotel 에 여장을 풀었다.
■제 6일 오슬로 (Oslo)
오슬로는 1048년 바이킹 왕이 건설하였으며 13세기에 수도로 정해졌다. 노르웨이 수도로서 정치 경제의 중심지다. 또한 오슬로는 무역, 은행, 산업 및 선박의 중심부이기도 하다. 녹지대와 숲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경치가 아름답다. 67만 명의 인구로 주위를 합한 메트로는 170만 이상이 된다. 노르웨이 전체 인구의 3분의1이 이곳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12년 fDi 잡지의 보도에 의하면 유럽 대도시 중에서 생활의 질에서 제1의 도시로 꼽기도 했다. 반면에 세계에서 가장 생활비가 비싼 곳 중의 하나다.
바이킹 배 안에 무덤, 죽은자의 개인 소지품과 함께 소장
■바이킹 배 박물관 (Viking Ship Museum)
아침 식사 후 버스는 노르웨이의 첫 관광지인 오슬로 시 변두리에 있는 바이킹 배 박물관으로 향했다. 바이킹 박물관은 스칸디나비아 모든 나라에 있다. 그러나 바이킹 배 박물관은 노르웨이가 더 잘 알려져 있다. 멀지 않는 곳에 민속역사박물관, 해양박물관 등이 있으나 일정에 포함되지 않았다.
바이킹 박물관도 일정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홍사장의 특별배려(?)로 가 볼 수 있었다. 사실 바이킹 나라에 와서 바이킹 박물관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여행의 중요한 것을 빠트리는 결과라고 생각되었는데 배 박물관을 관람한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였다.
정부는 현재 박물관의 3배 규모의 박물관으로 확장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것이 설립되면 바이킹족의 보다 광범위한 유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바이킹족의 시대는 8세기에서 11세기 후반까지 300년 이상이다. 박물관은 3척의 배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소규모의 박물관이다. 2척의 배는 원형으로 복구되어 소장되어 있다. 공예기술에 능통한 이들이 제작한 것이라 섬세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전시된 3척의 배들은 바이킹시대인 약 820년과 900년에 오크로 제작된 것으로 모두가 넓이 약 5미터 길이가 약 22미터로 30명의 노 젓는 사람, 1명의 조타수와 1명의 감시병 총 32명의 선원이다.
오슬로 시에 있는 오슬로 피오르드에서 1867년에 발견된 배는 원형으로 복구하지 않고 발견되었을 때 그 모습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 흥미있는 것은 이 작은 배들 속에 무덤이 있으며 이 무덤에는 죽은 자가 사용했던 개인 소지물도 함께 소장되어 있다. 잠시 동안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 후 우리 일행은 버스로 오슬로 시내 근교에 Frogner Park 공원으로 향했다.
■후로게느 공원 (Frogenr Park). 비제란드설치(Vigeland Installation)
750년에 설립된 후로게느 공원은 110 에이커로 오슬로 시 공원 중 제일 큰 공원이다. 매년 백만 명 이상이 공원을 찾는다. 오슬로 시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후로게느메노(Frogner Manor)의 한 부분이다.
이곳에 시 박물관 비제란드 박물관 공원 야외에 설치된 비제란드 조각공원이 있다. 우리 일행이 간 곳은 조각공원이다. 노르웨이의 유명한 조각가 구스타프 비제란드 (Gustav Vigeland)의 조각들이 놓여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공원 중앙에 작품이 설치되어 있는 이 지역을 비제란드 설치(Vigeland Installation)라 부른다. 그래서 때때로 이 지역을 비제란드 공원(Vigeland Park)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조각공원은 세계에서 단일 조각가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으로는 가장 큰 규모다. 조각이 놓여있는 지역은 약 80에이커의 거대한 규모다. 212개의 동과 화강암으로 된 조각으로 30년 이상에 걸쳐 제작한 것들이다.
공원 정문에서 들어가면 넓이 15미터 길이 100미터의 다리(bridge)가 있다. 이 다리는 정문 부근에서 우물(fountain)까지 연결되어 있다. 다리 양편에 조각들이 줄을 이어 세워져 있다. 이 공원에서 인기 있는 작품 중의 하나인 성난 아이(Angry Boy, Sinnataggen)가 이 다리에 있는 조각들 중에 있다. 1미터가 조금 넘을 정도의 높이의 동으로 된 조각이다.
흥미 있는 것은 동상에 손을 대지 않도록 되어있으나 소년의 손을 잡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한쪽 손이 변색이 되어 금색으로 변했다. 공원 당국이 2015년에 다시 칠을 했지만 우리가 갔을 때 마찬가지로 한 손에 칠이 벗어지고 금색으로 변해있었다. 더욱이 흥미있는 것은 이 나체의 상 아이 고추도 색깔이 변해있었다. 손만 잡은 것이 아니라 아이 고추도 사람들이 많이 잡았다는 증거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우물이 있으며 우물 주위 공원에는 예쁜 꽃들이 심겨 있다. 이 우물은 동으로 주조되었다. 우물가에 있는 동으로 된 나무모형의 조각에 매달린 아이들과 무덤이 묘사된 조각들은 죽음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상징했다. 우물 주위 바닥은 희고 검은 화강암 모자이크로 깔려있다.
우물 뒤편에 계단으로 올라가면 이 공원의 하이라이트인 하나의 돌로 만든 돌기둥이 높이 서 있는 monolith totem이 있는 프레트폼이 있다. 14년이 걸려 제작되어 1944년 크리스마스에 일반에게 공개된 프레트폼의 가장 중요한 것은 한 개의 돌로 된 돌기둥이다. 14미터가 되는 한 개의 돌에 121명의 사람들의 모형이 새겨져 있다. 하늘을 향해서 즉 영원을 향해서 높이 올려가려고 하는 사람들의 조각이다. 이 돌 주위에 인간의 각종의 모습과 생활, 감정 등을 묘사한 36 그룹의 인간들의 조각들이 둘러싸고 있다. 이 그룹들의 모습들은 인간의 일상생활에 관계되어 있는 모습들이라 조각에 문외한인 나도 이해가 되는 듯했다.
■구스타브 비제란드 (Gustave Vigeland) (1869-1943)
원명은 Adolf Gustav Thorsen 이었으나 나중에 그가 살던 작은 촌락의 이름을 따서 Vigeland로 개명했다. 창의력과 다량의 작품으로 노르웨이 조각가 중에 특별한 위치에 있는 유명한 조각가다. 공예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작은 촌락에서 자랐지만 어려서 오슬로로 보내져 나무공예를 공부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다시 고향에 와서 가족을 도왔다. 1888년 직업조각가가 되기 위해 오슬로로 왔다.
1891-1896 년 사이 코펜하겐 파리, 베를린, 플로랜스 등을 여행하고 파리에서는 조각가 로댕과도 자주 교류했다. 이태리에서는 고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에 경험을 갖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삶과 죽음, 남녀 관계에 대한 영적문제를 많이 다루었다. 노벨평화상 메달을 제작한 사람이다.
■오슬로 시
조각공원에서 나와 주위에서 점심 후 우리 일행은 오슬로의 대표적 변화가인 칼 요한 (Karl Johans)으로 들어갔다. 이 거리는 오슬로 시를 동서로 가르는 길로 중앙기차역에서 시작하여 왕궁까지 연결되어 있다. 기차역과 왕궁 외에 국립극장, 노르웨이 최고 의회, 궁전공원 등이 있다. 기차역 앞에서 자유시간이 허락되어 각자가 번화가를 누비도록 했다. 나는 칼 요한의 끝인 궁전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유럽의 다른 대도시처럼 관광객들이 붐빈다. 집결 시간 때문에 관광객을 헤치며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양쪽 길에 빽빽이 들어선 고급 상점들을 스쳐만 갔다. 샤핑을 하지 않으니 상점이 있어도 관심이 없었다. 다시 돌아왔을 때는 1시간이 되지 않은 것 같다.
일행은 다시 버스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오슬로시청으로 향했다. 다음 방문지 관계로 시청에서는 외부만 구경하기로 했다. 시의회와 시행정부의 건물이다. 시청에는 아트 스튜디오와 갤러리도 있다. 1931년에 건축이 시작되었지만 2차 세계대전의 발생과 함께 공사는 일시 중단되었다. 재개된 공사는 1950년에 준공했다. 붉은 벽돌건물의 동쪽과 서쪽 지붕위에 높은 타워가 세워져 있다. 이 타워에 49개의 종이 있어 매일 25분 울린다. 이것은 오슬로의 전통으로 때때로 콘서트 연주와 함께 울릴 때도 있다. 2005년에는 오슬로 시민들이 선정한 ‘세기의 건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노벨평화상수상이 개최되는 오슬로 시청
오슬로의 시청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이곳에서 평화상을 수상했다. 노벨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1833년에 태어난 스웨덴 사람이다. 화학자로서 엔지니어이며 발명가요 사업가다. 박애주의자이기도 한 그는 1896년에 사망하였으며 그의 유언으로 노벨상을 제정하도록 했다. 그의 유언에 따라 노벨평화상은 스웨덴이 아닌 노르웨이 의회에서 선정한 5명으로 구성된 평화상위원회에서 선정하도록 하였으며 시상도 노르웨이에서 하도록 했다.
유언은 왜 가장 권위 있는 평화상이 스웨덴이 아니고 노르웨이가 주관하고 시상식을 하도록 한 것에 대한 언급이 없다. 따라서 여러 가지 억측만 돌고 있다. 이 중에서 노벨이 노르웨이의 애국작가 Bjornson을 좋아했기 때문이란 설이 있는가 하면 국제평화운동에 최초로 지지한 곳이 노르웨이 의회였기 때문에 노르웨이 의회를 신임했다는 설도 나돌고 있다. 아마도 노벨은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연합했던 시대의 사람이라 노르웨이에 대한 배려가 있었을 것이며 평화상이 정치적 도구로 전략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작용하였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시청건물 외곽만 보고 호텔에 체크인 했다. 저녁 식사 후 호텔 컴퓨터실로 가 이메일 체크를 한 후 노벨평화상에 대한 정보를 조사했다. 마침 유투브에 2014년 노벨평화상 수상식 실황이 있어 보기 시작했다. 120분당의 다큐멘터리로 인도의 Kallash Satyarthi와 파키스탄의 Malaya Yousafzai가 공동으로 수상하는 시상식이었다.
15세에 여성의 교육을 외치다가 탈레반 테러의 총격을 받아 사경에서 소생했다. 그 후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파키스탄의 어린 여성의 교육을 위한 사회활동가로서 역할을 인정하여 말라야는 17세의 어린 나이에 노벨상을 받은 최연소의 사람이 되었다.
시상식 시작 전 수상자들이 입장할 때는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박수를 치며 이때 군복과 같은 정복을 입은 3명의 나팔수가 나팔을 불면 국왕 부부와 총리부부가 입장한다. 무대 위에 사회자가 서고 그 옆에 수상자와 노벨위원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왕과 왕비 총리부부는 약 3백여 명이 양쪽으로 갈라 앉은 중앙통로 앞 사회자 정면에 의자를 따로 놓고 앉았다. 다른 참석자들이 앉은 평범한 사무용 의자 같다.
왕과 수상 부부가 앉은 바로 뒤에 관중석 맨 앞줄에 수상자들의 가족이 앉았고 Malaya 부모와 두 어린 남동생이 보였다. 교육가인 아버지와 어머니는 40대 후반으로 보인 미남 미녀다. 2시간 동안 진행한 시상식은 수상자들의 소개와 수상자의 수상 연설 그리고 중간 중간에 총 6차례의 음악인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를 했다. 식이 끝난 뒤에는 국왕이 나가는 것을 알리는 나팔소리 그 뒤를 수상자와 노벨위원들이 함께 나갔다. 이때 모든 사람들은 왕이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모두 일어섰다.
노르웨이 관광은 남서부 지방 산악지방에서 피오르드 관광이 주요 일 중 하나였다. 고래 관광, 곰 관광, 개 설매 등은 북쪽으로 가야 한다. 이외에도 많은 종류의 관광이 있다. 여행은 시간, 재정, 건강, 취향 등 여러 가지 요인을 감안하여 목적에 따라 대상과 지역을 선택한다. 넓은 세계를 종횡무진 다닐 수 없다.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보지 못한 사람들이 세계 사람들의 대다수다. 이번 3일간의 노르웨이 피오르드 관광은 특이한 것이었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피오르드에 대한 상식이 전무였다.
노르웨이는 국토가 16,000마일의 방대한 해안선으로 되어 스웨덴과 핀란드의 북극해를 막고 있다. 그리고 북극해를 향하는 소규모의 소련 땅도 노르웨이의 해안선이 막고 있다. 그래서 세계3대어장의 하나인 바다를 점유하고 있으며 어업권의 방대한 이해관계로 노르웨이가 유럽연합에 가담하지 않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다.
수도 오슬로의 관광도 흥미 있는 관광이었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과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도 거의 오슬로와 같은 위도 상에 있는 것은 다소 온화한 기후도 이유 중의 하나다. 오후 늦게 오슬로를 떠나 스웨덴 공업도시 칼스타드(Kalstad)로 향했다. 약 220㎞2시간40분 거리다. 숙소인 Scandic Crown 호텔에 도착한 것은 늦은 저녁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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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진 ‘빛과사랑’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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