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처음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곳은 역시 공항이었다. 위조 도미니카공화국 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다가 도쿄공항에서 적발됐다. 그 때가 2001년. 16년 후 ‘김철’이란 가명의 여권으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마카오 행 여객기를 타려다가 피살됐다.”
이코노미스트지의 보도다. 같은 날(2월17일자) 이코노미스트지는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 구속기사도 실었다. 뇌물죄 혐의로 구속됨으로써 경영권을 내놓게 될지도 모른다는 진단과 함께.
2017년 2월 셋 째 주의 시점에 불과 며칠 간격을 두고 발생한 김정남 피살과 이재용 구속. 다시 말해 북한 정치권력 3대 세습의 곁가지로 전락한 비운의 황태자의 죽음, 그리고 삼성이라는 대한민국 제 1의 경제 권력의 3대 세습자의 구속. 거의 동시에 발생한 이 사건들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
누가. 왜. 그리고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김정남 피살과 관련해 쏟아지고 있는 질문들이다. ‘누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이른바 백두혈통이다. 그 백두혈통을 살해한다. 그런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김정은 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그러면 왜. 해석이 구구하다. 그 한 해석은 이렇다. 백두혈통의 적통은 장남인 김정남에 있다. 그 사실에 김정은은 심한 콤플렉스를 느꼈다. 결국 권력을 승계하자마자 김정남 살해를 지시했다. 그게 5년 전이다. 그러니까 김정남 피살은 시간문제였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필이면 지금의 타이밍인가. 이 질문과 맞물리면서 ‘왜’에 대한 해석도 달라진다. 북한의 국내적 요인도 요인이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역학관계에서 그 답의 실마리가 찾아진다는 것이다.
압박이 보통 거세진 것이 아니다. 통상 문제에. 대만카드를 들고 나섰다. 남중국해에서도 초강경자세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시진핑의 중국은 수세에 몰리게 됐다. 워싱턴의 3면 공세에 뭔가 양보를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몰린 것이다. 북한 핵문제다.
그렇지 않아도 김정은은 중국으로서도 탐탁하지 않은 존재다. 그런 마당에 북한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전복)의 압력은 날로 거세지고 있다. 베이징은 뭔가 특단의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김정남 카드다.
골칫거리인 김정은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그 김정남 카드를 만지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과 ‘김정은’을 놓고 모종의 빅딜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일본, 홍콩 언론들의 분석이다. 워싱턴 외교가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북한은 그 정황을 인지했다. 기습적 대응에 나섰다. 한낮에, 세계인들이 드나드는 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을 암살한 것이다. 3대 세습을 완성시킬 백두형통은 자신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 거다.
이 백주의 살인극은 그러면 길(吉)이 될까 흉(凶)이 될까. 정통성 확보에 잠간동안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결국 흉사 중에 흉사가 될 것이라는 게 대다수 관측통들의 진단이다.
고든 챙 같은 전문가는 어쩌면 김정은이 저지른 마지막 실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까지 하고 있다. 김정남 암살의 후폭풍으로 정권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3대 세습 김씨 왕조가 중요한 터닝 포인트를 맞을 수도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형을 죽임으로써 극도로 폭악(暴惡)한 체제의 민낯이 드러났다. 결국 레짐 체인지의 압력은 안팎으로 더욱 거세지면서 쿠데타발생 가능성까지 일부에서 점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재용의 구속은 그러면 한국 경제, 더 나아가 한국 사회 전반에 흉이 될까 길이 될까. “세계 최대 스마트 폰, 반도체 제조사인 삼성의 신규투자와 기업인수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포천지의 보도다. 블룸버그 통신도 비슷한 진단을 했다. 재판이 장기화 되면서 세계적 기업으로서의 삼성의 위상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평가는 다르다. 이재용 구속을 한국의 고질병인 재벌과 정치권의 유착관계 종식의 전환점으로 본 것이다. 무엇을 말하나. 법치(法治)의 승리,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것이다.
시장권력이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면서 정치권력이 됐다. 그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이 권력은 마침내 정치와 유착관계를 통해 사회전반의 민주주의를 유린하기 이르렀다. 보다 못해 시민 권력이 견제에 나섰다. 이런 면에서 삼성의 실질적 총수인 이재용 부회장 구속은 시대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인 것이다.
2017년 2월 셋째 주의 시점에 거의 동시적으로 일어난 사건. 김정남 피살과 이재용 구속, 이는 어쩌면 전체주의 수령유일주의체제에 가해진 저주와 대한민국이란 민주주의체제에 내려진 축복이 아닐까. 다름에서가 아니다. 3대 세습이 무너질 위기를 맞았다. 이와 함께 두 체제가 맞이할 내일이 너무 극명히 대조될 것으로 보여서 하는 말이다.
독극물 투약으로 고통 속에 처절히 일그러진 김정남의 데드 마스크, 거기서 감지되는 것은 김정은이 머지않아 맞이할 운명이다. 이재용의 구속, 거기에서 우선 예견되는 것은 한국경제에 가해질 타격이다. 그러나 그 너머로 다른 그림이 어른거린다.
그 그림은 고통을 딛고 민주주의가 한층 업그레이드 된, 보다 밝고 투명한 한국 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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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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