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이 시작된 지 한달 반. 자고 나면 큼직한 사건들이 터져서 뉴스 따라잡기도 숨차다. 이대로 연말쯤 가면 세상은 어떻게 변해 있을지 감이 안 잡힌다.
출범 4주 트럼프 행정부는 여전히 좌충우돌 갈피를 잡기 어렵고, 한국의 탄핵정국 소용돌이는 국민을 완전히 둘로 쪼개 놓았다. 그 여파가 이곳 한인사회에도 미쳐서 요즘 모임에 가면 탄핵 이야기는 자제하는 것이 매너가 되었다. 미국도 한국도 어수선한데, 북한까지 가세했다. 김정남 암살사건이 터졌다.
화산 폭발하듯, 용암 끓어오르듯 세상이 부글부글하다. 이 모든 혼란의 근저에는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높이 올라 남들을 지배하고 싶은 욕심, 권력욕이다. 권력에 대한 과도한 욕망, 무한정 독차지하려는 욕심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패와 폭력, 전쟁과 학살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권력 추구는 인간의 자연스런 욕구이다.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의 ‘야망’은 다른 말로 욕심이고, 보다 큰 것, 보다 높은 곳에 도달하려는 욕심은 다른 말로 권력의지이다. 원대한 야망을 품고 목표를 향해 줄기차게 달려가서 마침내 성공에 이르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권력욕이다. 권력욕은 성공의 필요조건이다.
네플릭스의 자체제작 시리즈 ‘왕관(The Crown)‘이 지난 11월 전 세계에 동시 공개되면서 호평을 받았다. 엘리자베스 2세가 25살에 즉위해 여왕으로서 적응해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제작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주소 중 두 곳(버킹엄과 다우닝가 10번지)에서 벌어지는 내밀한 이야기들을 담아내겠다”고 밝혔었다.
그래서 당시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의 주인인 윈스턴 처칠 경에 관해서도 상세하게 나오는데, 그가 여왕에게 거짓말을 하는 부분이 있다. 80세의 노 정치인은 뇌졸중으로 쓰러져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어린 여왕에게 ‘감기’라고 거짓 보고를 한다. 병이 알려지면 총리 자리에서 밀려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50년을 정치를 하고, 총리를 두 번씩 역임하고서도 권력을 놓고 싶지 않은 욕심이다.
20세기 영국의 영웅이자 지금도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인 처칠은 야심가였다. 처음 의회에 발을 들여놓은 청년시절부터 그의 목표는 총리였다. 그의 탁월한 리더십과 부단한 노력의 원천은 권력의지였다. 권력에 동반되는 책임과 의무를 기꺼이 감수하며 자아실현과 사회적 공헌을 함께 추구하는 건강한 욕심으로서의 권력욕이다.
적당하면 약이 되고 과하면 독이 되는 것은 권력 욕심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순간 정도를 벗어나 눈먼 말처럼 맹목적으로 권력을 장악하려 들면서 비극은 시작된다. 대표적인 예가 독재자들, 그들의 말로이다.
이들이 눈먼 말이 되는 발단은 자기애성 성격장애. 스스로를 대단히 위대한 인물로 생각하는 과대망상의 자기도취증이다. 마땅히 자신이 최고 권력을 갖고 칭송과 경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사담 후세인은 자신을 이라크 국민들의 구세주라고 생각했고, 무아마르 카다피는 스스로 아프리카의 ‘왕 중의 왕’으로 즉위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타나는 현상은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나 반대를 절대로 용납하지 못하는 것. 반대파를 잔혹하게 보복한다. 이어 반대파가 자신을 암살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 권력을 빼앗길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독재자들의 공통점이다. 김정남이 암살된 배경도 그 언저리일 것이다.
백악관의 주인도 청와대의 주인도 대단한 자기애의 주인공들이다. “내가 하겠다는 데 누가 뭐라느냐”가 이들의 기본 인식이다. 트럼프 취임 후 하루도 잠잠할 날 없는 이유, 외국친구들과는 말하기도 낯 뜨거운 국정농단 사태가 한국에서 벌어진 이유이다.
요즘 가장 마음 편한 사람은 오바마 전 대통령일 것 같다. 한시도 긴장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8년의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훌훌 털어버린 지금 그는 얼마나 홀가분하겠는가.
지난주 카리브 해상에서 카이트 서핑에 심취한 그의 모습을 보며 몸도 마음도 날아갈 듯 가볍겠다 싶었다. 오바마 부부는 백악관을 나온 후 팜 스프링스로, 버진 아일랜드로 따뜻한 곳을 찾아다니며 퇴임휴가를 즐겼다. 이번 주에는 대통령 기념도서관 건립사업을 협의하기 위해 시카고를 방문 중인데 “양 어깨를 누르던 세계의 무게를 다 벗어버린 듯” 편안해 보였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주어진 만큼 행사하고 때 되면 내려놓을 때 권력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권력은 아름다울 수 있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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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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