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터 아더는 미 역사상 가장 이름이 기억되지 않는 대통령의 하나다. 1881년 9월 제임스 가필드가 취임 6개월만에 암살되는 바람에 대통령이 된 그는 전임자의 남은 임기를 마친 후에는 은퇴하고 말았다. 그가 지금까지 간혹 이름이 오르내리는 이유는 역사상 최악법의 하나인 ‘중국인 배척법’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1848년 가주에서 금이 발견되자 전세계에서 ‘캘리포니아 드림’을 꿈꾸며 온갖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그 중 하나가 중국인이었다. 금이 풍부히 나올 때는 이들 존재가 용인됐지만 산출량이 줄면서 이들에 대한 박해는 심해졌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중국인의 이민을 일체 금지하는 1882년의 ‘중국인 배척법’이다. 이 법 때문에 가족과 헤어진 중국인들은 평생을 이산 가족으로 살아야 했다. 이 법은 제2차 대전이 터진 후 중국이 연합국의 일원이 되면서 1943년 매그너슨 법 제정으로 폐기됐다. 중국인 차별이 사라지는데 장장 60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중국인을 차별한 것은 연방 정부만이 아니었다. 가주 정부는 이보다 먼저 1858년 중국인과 몽골계의 가주 입국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다. 이 법이 1862년 주 대법원에 의해 위헌 판결을 받자 1879년 아예 주 헌법을 고쳐 주 정부가 중국인 입국을 금지하고 중국인의 공무원 임용을 금지하는 길을 열어 놓았다. 비백인과 백인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은 1948년 주 대법원의 위헌 판결을 받고서야 무효화됐다.
연방 하원은 2012년 ‘중국인 배척법’ 제정에 대한 유감을 표시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2014년 가주 의회는 중국인 이민자들의 업적을 기리고 ‘중국인 배척법’을 제정한 데 대해 연방 의회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아시안 이민자들에 대해 가장 배타적이던 가주가 이민자 권익 옹호를 위해 앞장서고 있는 모습은 상전벽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130년 전 일어났던 일이 지금 미국에서 되풀이되려 하고 있다. 이번 타겟은 중국인이 아니라 회교도와 멕시코인들이다. 타겟은 바뀌었지만 이들이 백인들의 생명과 재산,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기본 논리는 비슷하다.
그러나 이번은 그 때처럼 쉽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세월이 지났고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시애틀 연방 지방법원의 제임스 로바트 판사는 3일 워싱턴과 미네소타 주정부가 이란, 이라크 등 회교권 7개국 국민들의 입국을 불허한 도널드 트럼프의 행정 명령이 위법하고 위헌적이라며 그 효력을 정지시켜 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여 사실상 이를 무효화하는 잠정 명령을 내렸다. 연방 법무부는 이에 불복해 샌프란시스코 연방 항소법원에 이를 뒤집어 달라는 긴급 소원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이를 거부했다.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법적 패배를 맛본 도널드는 일개 판사가 일국의 대통령이 내린 명령을 무효화했다고 펄펄 뛰고 있으나 대통령이 내린 명령뿐 아니라 의회가 제정한 법률도 무효화할 수 있는 권한을 사법부는 갖고 있다.
이번 소송에는 10명의 전직 고위 외교관과 국가 안보 책임자,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과 애플 등 100개 하이텍 기업, 280명의 법대 교수와 292개의 고등 교육기관이 가세해 트럼프의 행정 명령 무효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 명령이 미국 안보를 튼튼히 하기는커녕 위태롭게 할 것이란 게 이들 생각이다.
특정 종교가 다수인 나라 국민 전부의 입국을 금지한 것은 국적을 이유로 비자 발급에 차별을 금지한 1965년 ‘이민 국적법’을 위반한 것일뿐 아니라 특정 종교 차별을 금지한 수정 헌법 1조와 ‘정당한 절차’ 없이 개인의 자유를 박탈할 수 없다는 수정 헌법 5조, 법의 ‘평등한 보호’를 보장한 수정 헌법 14조를 위반한 것이다. 이 헌법의 보호 규정은 시민권자뿐 아니라 미국에 발을 디딘 모든 개인에 적용된다.
일부에서는 1952년 제정된 법이 대통령에게 외국인의 입국을 제한할 수 있는 폭넓은 권한을 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1965년 법은 바로 이 권한을 제한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두 법이 상충될 때 나중 제정된 법이 우선한다는 것은 법학의 초보적 원리다.
이번 싸움은 미국 역사에 오점을 남긴 낡고 병든 추한 세력과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한 미국의 건국 이념을 실현해 가려는 사람들간의 한 판 승부다. ‘정의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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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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