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위대한 국가입니다. 이 나라를 지키는 일은 아주 멋진 삶의 길입니다. 미합중국 공군, 당신도 그 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원대한 꿈을 품으세요. 꿈을 높은 저 하늘에 두세요!”쌔애앵~ 최첨단 전투기가 창공을 나는 멋진 장면과 함께 끝나는 이 영상은 미 공군 모병광고이다. 1983년 주한 미 공군 전력의 핵심거점인 오산 공군기지 내 비행단 통할사령부에서 신참 소위로 나름 열심히 복무했다. 금요일이면 동기들이나 미 공군의 카운터파트 정보장교들과 함께 장교클럽에서 미켈롭 같은 생소한 맥주를 마시며 포켓볼이나 손 화살 던지기 같은 게임을 즐겼다. 분위기가 고조되면 바로 옆 기지극장에 가서 ‘플래시 댄스(Flash Dance)’ 같은 영화를 보곤 했다. 본 영화가 상영되기 전 음속 전투기가 굉음과 함께 창공을 멋지게 곡예기동 하며 “원대한 꿈을 품으라(Aim High), 목표를 하늘로!” 라는 그 유명한 마지막 멘트가 나오면 내 가슴은 벅차올랐다.
그렇지, 꿈을 원대하게 가져야지... 그런데, 이젠 원대한 꿈을 새로 가질 때가 아니라 꿈이 얼마나 이뤄졌는지 돌아봐야할 나이가 되었다. 내 인생에 이렇다 할 멋진 성과가 있는지 자문을 해보면 대답은 궁해진다.
이럴 때 무난하지만 사실 매우 중요한 ‘성과’를 꼽자면 아이들이 잘 커서 자기 앞가림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02년 H1-B 금융권 취업비자로 미국에 이민왔을 때 두 아들은 중학 2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남가주 세리토스에서 한 학기를 다니며 미국학교에 겨우 적응하던 아이들은 나의 새로운 부임지인 북가주 실리콘밸리로 다시 전학을 해야 했다.
아들들의 미국학교 숙제를 도와주는 일은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아이들은 알아서 영어 수업 잘 따라가고 숙제 잘 하며 잘 자라준 것이 그저 대견하고 고마울 뿐이다. 더 이상 뭘 바란다면 그건 과욕일 것이다.
책상을 마주 보며 앉아 몇 년째 같이 지내온 밥이 1956년도에 출간된 낡은 통계학 책을 한권 기념으로 건네준다. 나보다 4살 위인 그는 이른바 스탠포드 키드이다. 부친이 이 대학 교수여서 캠퍼스 교수 촌에서 자랐고 프린스턴을 다니느라 4년 타지생활을 했을 뿐, 다시 스탠포드로 돌아와 컴퓨터공학 석사학위를 받고 거의 45년을 캠퍼스에서 살고 있다.
최근 그의 부친이 98세로 타계하셔서 장례를 치르느라 한동안 그가 사무실을 비웠었다. 그는 통계학 및 경제학과 교수였던 부친의 연구실을 정리하는 일이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세계적인 석학의 연구실 이 너무도 궁금했던 나는 그를 따라 가보기로 했다.
서가는 오랜 세월 대학자의 숨결이 스민 책들로 가득했다. 그가 사다리를 타고 서재 가득한 책과 자료를 정리할 때, 나는 유품 책들 중 한권만 기념으로 달라고 했더니, 그는 선뜻 부친의 저서를 한권 내게 선물한 것이다.
내세를 믿지 않는 이들이 들으면 어떨지 모르지만, 다음 생애에 나는 학자의 길을 걷고 싶다. 당신 아버님처럼 세계적인 대학자가 되어 인류에 공헌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밥에게 말하니, 친절한 미국인인 그는 그렇게 되길 바란다며 잔잔한 미소를 지어준다.
지나온 내 삶을 돌아보면 눈앞의 현실에 급급했던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현실의 벽장 안에 갇히지 않고 큰 꿈을 갖는다는 것이 왜 그렇게 요원하게만 여겨졌는지...
고학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42개월간 공군에서 복무한 후 제대할 때 나도 대다수 친구들처럼 샐러리맨의 길로 들어섰다. 학업을 계속해 석·박사 학위를 받는 꿈, 그것도 해외유학을 통해 그 꿈을 추구하기에는 현실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도전하기에는 앞에 가로막힌 장벽이 너무 버겁다며 스스로를 한계 속에 가둬놓고 살아왔다.
만약, 그때 어떤 큰 자극을 받아 과감히 한계를 박차고 해외유학의 길에 올랐다면 지금의 나의 인생은 많이 달라졌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젊은 나에게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눈앞의 현실에 갇히지 말라고, 높은 꿈을 갖고 추구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덕환, 꿈을 저 높은 하늘에 두어라. 원대한 꿈을 가져라(Aim High)! ”
<
김덕환 실리콘밸리 부동산 중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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