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 정치교체. 정의로운 민주공화국…. 벌써부터 온갖 슬로건이 난무한다. 게다가 잠룡(潛龍)으로 불리는 자천타천의 대선주자도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다. 하기는 대통령 선거가 3개월 앞으로 다가왔으니 무리도 아니다.
슬로건은 모두 그럴 듯 했다. 그런데 실패한 대통령만 줄줄이 양산됐다. ‘87년 체제’ 이후 5년마다 보아온 현상이다.
‘실패한 대통령’에도 그런데 급이 라는 게 있다. 부패, 국정문란 정도가 아니다. 말 그대로 국기가 흔들린다. 대한민국이 도대체 어디까지 망가져야 하는가. 이런 탄식과 함께 박근혜 정권 내내 들려온 자조의 소리는 ‘이게 나라인가’다.
불통으로 시작됐다. 독선으로 일관했다. 게다가 비선의 국기농단이 드러났다. 대통령의 무능과 무지가 까발려졌다. 그 대통령이 결국 탄핵을 당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천박성에, 몰염치다. 참 나쁜 대통령을 넘어 어이가 없는 대통령임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정말이지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대한민국이 지배됐다. 그 사실에 경악했다. 뒤 따른 것은 분노에, 좌절감이다. 이제는 피로감만 몰려든다. 그것이 정치를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심정이 아닐까. 그런 정황에 또 다시 선택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대선정국이 코앞에 닥친 것이다.
도대체 누구를 찍어야 하나 그리고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것이 한국적 정치 풍토에서 가능하기는 한 것이기는 하나. 동시에 제기되는 질문 같다.
누구를 찍어야 하나. 그 질문부터 살펴보자. 그 답의 실마리는 ABP(Anything But Park Geun-hye)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닐까. 뭐 다른 말이 아니다. ‘ABP=성공한 대통령의 특질’이란 등식이 성립되지 않을까 해서다.
“분명한 비전제시, 그 비전을 현실정치에 구현시킬 수 있는 능력, 주요 국정목표를 압축해 설정하고 집중하는 능력, 그리고 정책결정 과정에 대한 숙지 등 네 가지가 위대한 대통령이 지녀야 할 능력이다.” 대통령학(學)으로 유명한 마이클 시걸의 지적이다.
W 부시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칼 로브도 비슷한 진단을 하고 있다. 분명한 비전제시, 그 방향성 설정, 위기대응능력, 그리고 확고한 신념에 따른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 등을 성공적인 대통령이 지녀야할 기본 능력으로 꼽은 것이다.
전문가마다 다소 의견이 갈린다. 그렇지만 위대한 대통령이 지녀야 할 능력 진단에서 몇 가지는 공통된다. 확실한 비전 제시, 역사의식, 탁월한 소통능력, 위기관리능력 등이 그것이다.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 전에 갖추어야 할 것은 자질이다. 이런 지적과 함께 또 다른 전문가는 성공한 대통령들이 지닌 공통의 자질로 세 가지를 열거한다. 정직성을 바탕으로 한 고결성(integrity), 강한 정신력(strength), 그리고 남을 배려하는 성품(caring)이다.
한국의 차기 대권주자에게 무엇보다 먼저 요구되는 것은 무엇일까. 품위, 정직성, 대통령다움- 다시 말해 고결성이 아닐까.
저질스런 비열한 인간들에게 농락당했다. 탄핵으로 이어진 박근혜-최순실게이트에서 한국인들이 특히 당혹해 하는 것이 바로 이 부문이다. 오죽했으면 보수 일각에서 대통령은 나라를 위해 마지막 품위를 지켜달라는 애원까지 나오고 있을까. 그 상처 치유를 위해 새로운 지도자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정직을 바탕으로 한 고결성으로 보여 져 하는 말이다.
정직은 신뢰의 원천이다. 신뢰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초다. 신뢰가 무너지면 정치도, 경제도 파탄난다. 현재의 탄핵정국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신뢰를 무너뜨림으로써 야기된 사태다. 때문에 무엇보다 먼저 요구되는 것은 정직한 인품의 지도자인 것이다.
두 번째는 비전과 가치관 제시가 아닐까. 초(超)불확실성에 사로 잡혀 있다. 경제가 그렇고 외교 안보가 그렇다. 그 대한민국의 좌초는 동북아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 한국을 바라보는 밖에서의 시선이다.
분명한 비전과 가치관을 제시하고 적극적 소통을 통해 그 비전을 국민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지도자 선출은 이런 면에서 일종의 국민적 소명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성공적인 대통령은 그러나 혼자 될 수 없다. 국민이, 유권자가 함께 할 때 가능하다. 그게 그런데 한국적 정치 풍토에서 가능한 일일까.
정치인은 선동한다. 대중은 집단 광기(狂氣)를 내뿜는다. 이성은 찾아볼 수 없다. 여전한 진영논리에 갇혀있고, 감정, 비정상이 판친다. 나라가 결딴나든 말든 권좌에서 끝까지 안 내려오겠다는 실패한 대통령. 그리고 그 대통령을 무조건 감싸는 친(親)박이라는 사람들이 그렇다.
그 정반대 스펙트럼에 있는, 친(親)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문재인을 비판하면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는 폭도로 돌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이성적이어야 할 종편방송 시사토론 패널들에게서도 종종 그런 모습이 비쳐진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이제 3개월 앞으로 다가온 한국의 대통령선거. 그 대선은 국민적 축제가 될까. 아니면 또 한 차례 정치적 대재난으로 이어질까. 아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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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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