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stro-Hungary 가 Serbia 를 포격하기 시작하자 Slav 족 중 최대강국인 러시아는 같은 Slav 족의 피침을 좌시하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즉각 참전하였고 러시아와 동맹관계에 있었던 프랑스도 참전하게 되었다.
Austro-Hungary 와 동맹관계에 있었던 독일은8월 1일에 Russia 에, 8월 3일에는 프랑스 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러시아와 프랑스의 양면협공을 우려한 독일은 벨지움과의 중립조약을 무시하고 벨지움을 통과하여 프랑스를 공격했다. 프랑스와 동맹관계에 있던 영국이 참전하자 불가리아와터키는 독일편을 들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국가들은 아래와 같다.
▲연합국측: 영국 Ireland ,France, Belgium, Luxemburg ,Italy, Russia ,Rumania ,Serbia Montenegro , Albania, Greece, Cyprus, North Africa, Portugal ,일본,미국
▲중부 유럽측: 독일 Austro-Hungary Bulgaria Turkish Empire
▲중립국가들: Norway Sweden Denmark Netherland Switzland Spain
미국은 국제분쟁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왔는데 이중립적입장은 미국무역의 증대에 크게 도움이되는 것이었다. 전쟁이 시작되면 교전국가들은 군함, 상선을 가리지 않고 적대국의 배들을 침몰 시키는 경우가 있었다. 전쟁 중이라도 여객선이나 민간인들 의 선박은 포격전에 대피하도록 경고하는 등 최소한의 인명피해가 나도록 하는 것이 국제해상법이었다. 그러나 이 법이 집행되도록하는 경찰도 없었고 범법국가를 재판 하는 법원도 없었다.
전쟁 중에는 중립국의 무역선도 무기수송 등을 방지하기 위해 교전국들의 수색을 받아야 했으나 식료품은 압수하지 않는 것이 관례이었다. 유럽에 전쟁이 일어나면 중립국인 미국의 무역은 독점적으로 몇 배씩 증대하였다. 1914년 전쟁이 시작되던 해 에 미국과 연합국들간의 무역은 8억 달러이었으나 1916년에는 30억 달러로 늘어났고 미국과 독일측 간에는 반대로 1억7천만 달러에서 백만 달러로 줄어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 일어나자 Wilson 은 1914년 8월 4일에 미국의 중립을 선언하였다. 자동차왕 헨리 포드는 큰 배를 임대하여 평화교섭단을 노르웨이, 스웨덴 등의 나라에 보내어서 평화협상에 앞장서 줄 것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Wilson 은 미국민들에게 편파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말자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민의 나라인 미국의 여론을 통일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미국에는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지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많았고 이들은 독일쪽을 지지했다. Ireland 이민자들은 무조건 영국 쪽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Wilson 자신을 포함한 대부분의 미국사람들은 영국을 모국으로 생각하였다.
미국은 영어를 쓰고 영국의 법과 제도를 승계 했으며 미국의 독립전쟁도 실은 “미국인들도 영국민으로 인정해달라” 는 요구에서 시작되었던 까닭이다. 미국인들은 지금까지도 영국에 대해서 이와 같은 “love/hate” 감정 을 가지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도 여론은 영국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917년까지는 미국이 영국쪽으로 참전할 만큼 여론이 모아지지는 않았다.
당시 세계 최강의 해군을 가지고 있었던 영국은 서서히 독일을 해상봉쇄해 오기 시작 하였다. 해군력이 아주 미약하였던 독일은 해상수송이 단절되기 시작하자 극심한 물자결핍을 당하게 되었고 비상적인 수단을 써서라도 영국의 해상봉쇄를 중지시켜야만 하였다. 독일은 1915년부터 가지고 있던 잠수함 (U-Boat) 27척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해상봉쇄를 막아야 했다.
지난 200여 년 동안 각국이 공동으로 존중해왔던 항해자유권을 무시하고 무차별적으로 영국의 선박들을 침몰시키기 시작하였다. 독일로 향한 물자들을 무조건 압수해버린 영국도 해상법을 위반하기는 마찬가지이었다.
1915년 2월에 독일은 영국 해안지역을 해상전투 지역이라고 선포하고 중립국 선박들이 독일의 잠수함이 참전중인 이 지역을 항해하지 않도록 경고하였다. 독일은 미국의 신문에 미국인들이 영국의 배를 타고 여행하지 않도록 광고하였으나 Wilson 은 미국은 모든 나라의 선박을 사용할 권리가 있으며 만일 미국인의 생명이나 재산에 위해가 있을 때에는 가해자를 엄중히 처단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1915년 5월 7일 밤에 독일은 Ireland 근해에서 영국의 당시 세계에서 제일 큰 호화여객선 4만5천톤 Lusitania 호를 아무런 사전 경고없이 어뢰로 폭격하여 18분 만에 배를 침몰시켰다. 이 배는 보호를 위해 중립국인 미국기를 달고 있었으며 무기와 탄약도 실고 있었으나 독일잠수함의 기습 어뢰공격은 국제해상법 위반이었다. 이 배에 탔던 미국인 128명을 포함해 1198명이 수장되었다.
Wilson 은 “미국인은 접전지역에서 교전 중인 국가의 선박이라도 승선할 수 있는 중립국민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라고 독일에게 강력히 항의하며 미국은 앞으로 미국의 영예를 지킬 것이라고 하였다.
미국민들의 여론은 들끓기 시작하였고 Teddy Roosevelt 전 대통령은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Bryan 국무장관은 Wilson 이 중립국의 해상자유권을 고집함으로써 미국이 전쟁에 휘말리게 만든다고 항의하면서 장관직을 사직하였다. 그러나 Wilson 은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그 얼마후 독일잠수함이 영국 여객선 Arabic 호를 또 침몰시켰는데 그때에도 미국인 두 명이 사망하였다. 미국이 분노하여 곧 참전할 것을 우려한 독일은 1915년 9월 1일에 “앞으로는 비무장 여객선을 침몰시키지 않겠다” 는 Arabic Pledge 에 서명하였다.
그러나 해상봉쇄를 저지해야 할 수밖에 없었던 독일은 또 1916년 3월에 연합국인 프랑스서의 여객선 Sussex 호를 침몰시키고는 황급하게 Sussex Pledge 를 1916년 5월 31일에 또 서명하면서 영국도 국제해상 자유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은 연합국 측의 군수물자 조달과 창고역할을 했다. 연합국 측이 군수물자의 대금을 제 때에 지불하지 못하게 되자 미국은행들은 20억 달러을 대부해 주어서 물자를 계속 공급해 주었는데 이 정책은 미국기업을 보호해주기 위한 부차적인 목적도 있었다. 미국민의 여론은 점점 영국쪽으로 쏠리기 시작하였다.
Wilson 은 국제분쟁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던 까닭에 1915년과 1916년에 친지 House 대령을 특사로 유럽에 보내서 전쟁의 중단을 권고해 보았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는 미국이 군사강국이 아니라 세계의 민주화를 위해서 앞장서는 도덕적인 나라가 되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정국은 그의 이상을 실현해 보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1916년의 대통령선거에 재출마 해 볼 생각이 있었던 Teddy Roosevelt 는 공화당을 동원하여 Wilson 이 국제정세에 맞추어 군대를 강화하고 전쟁준비를 하지않고 있다고 비난 하였다. Wilson 은 까닥 잘못하다가는 1916년의 총선거에서 공화당에게 “전쟁불준비 Wilson!” 이라는 선거구호를 주게 될 것이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드디어 그의 정치철학과는 어긋나는 일이었지만 1915년 11월에 Wilson 은 육군과 해군의 증강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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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환 /LI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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