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떠났는데/ 서울이 텅 비었다”고 문정희의 시 ‘기억’은 시작한다. “한 사람이 들어서니/ 세상이 불안으로 가득하다”고 해야 할까. 2017년 1월20일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이 취임했다.
대통령 취임식이 거행되던 아침, 남가주에서는 비가 내렸다. 지난 며칠 호우주의보가 내려지고, 일기예보대로 밤새 내리던 비는 오전 내내 주룩주룩 계속 되었다. 빗줄기를 보며 빗소리를 들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을 보고, 떠나가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는 기분은 착잡했다. 앞으로 어떤 미국이 펼쳐질까, 유색인종 이민자로서의 불안 혹은 걱정이다.
미국 민주주의의 힘은 4년마다 되풀이되는 단합의 전통으로 다져진다. 대통령 선거기간 민주 공화 양편이 원수가 된 듯 치열하게 싸우다가도 일단 선거가 끝나면 분위기는 바뀐다. 국민들은 당선자에 대한 예우를 다하고 신임 대통령은 자신에게 반대한 국민들을 포용함으로써 온 나라가 다시 하나가 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화합을 위해 갈등과 이견을 잠시 보류하는 치유의 기간이자 허니문이다.
이번에는 이런 허니문이 있기는 할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정치나 공직경험 전혀 없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트럼프, 그래서 기존의 원칙 무시하기를 즐기는 그가 어떤 행보를 이어갈지 예측이 어렵다. 불확실성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트럼프는 취임연설에서 ‘국민’과 ‘미국’ 최우선주의를 약속했다. 워싱턴 기성정치권과 소수 엘리트들이 독점하던 힘과 부를 일반 국민들에게 되돌려서 국민들이 통치하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했다. 잊혀진 존재였던 이 나라의 남성과 여성들이 다시는 잊혀지지 않고 모두가 귀 기울이도록 만들겠다고 약속했다,아울러 무역, 세금, 이민, 외교 등 모든 면에서 오로지 미국의 이익을 지키는 결정, 미국 최우선주의 정책을 펼치겠다고 했다. “우리의 일자리를 다시 가져오고, 우리의 국경들을 다시 지키며, 우리의 부를 되찾고, 우리의 꿈을 되살리는” 정책들로 새로운 국가적 자부심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애국심으로 하나가 되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그의 캠페인 메시지의 연장선이다. 나라의 수장으로서 합당한 주장으로 들리지만 문제는 ‘우리’이다.
트럼프 시대가 불안한 것은 그가 의미하는 ‘우리’의 범주가 너무 좁기 때문이다. 그가 지명한 장관 15명 중 백인이 13명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서 미국이 중시해온 포용과 관용, 배려의 가치가 흔들릴 수 있다.
‘우리’에 속하지 않는 드리머들, 1,100만 서류미비자들은 당장 내일을 계획할 수 없는 불안에 싸여있다. 오바마케어 없으면 무보험자로 전락하는 1,800만명의 불안도 심각하다. 트럼프는 취임 후 최우선 과제로 불법체류자 추방과 오바마케어 폐지를 공언했다.
기본적으로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이고, ‘우리’와 구분되는 집단은 반발한다. 불법체류자 수출국으로 지목된 멕시코, 미국 일자리 빼앗아가는 주범으로 꼽힌 중국 등 세계 각국이 긴장하고 있고, 미국 내 다양한 소수 집단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취임식 참석자 못지않게 많은 트럼프 반대 시위대가 워싱턴에 집결한 배경이다. 일부 과격한 시위로 취임식 당일 거의 100명이 체포되었다.
트럼프 시대가 불안한 것은 그의 ‘장벽’ 때문이다. 멕시코와의 국경에 세우겠다는 물리적 장벽만이 문제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국가와 국가 사이에 그가 세우는 상징적 장벽들도 문제이다. 국민을 인종과 종교로 가르고, 지구촌에서 미국을 고립주의로 이끄는 장벽이다.
21세기 글로벌 시대는 공존의 시대이다. 개인도 나라도 고립된 채 번창할 수는 없다. ‘장벽’이 아니라 ‘다리’가 필요하다. “장벽 세울 생각만 하고 다리 세울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니다”라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트럼프의 이민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내치지 말라는 충고이다.
교황은 미국의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토마스 머튼을 꼽는다, 가톨릭 수도승이었던 그는 1958년 캔터키, 루이빌의 한 샤핑가에서 신비로운 체험을 한다. 오고 가는 낯선 사람들을 보며 “갑자기 그들의 가슴 속에 있는 내밀한 아름다움을 보게 되었다”고 했다. 사람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연결된 존재라는 깨달음이었다. 수도원에서 단절된 생활을 하던 그가 1960년대 사회정의 운동을 이끄는 영적 지도자가 된 계기이다.
미국이 극한 분열의 시대를 맞고 있다. ‘장벽’은 분열을 더 깊게 할뿐이다. 신임 대통령도 국민들도 우리 모두는 연결된 존재라는 사실을 되새겨야 하겠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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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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