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휴가를 맞아 흩어졌던 자녀들이 모였다. 가족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짧은 시간동안 그나마 같은 공간에서 지내기에는 여행이 가장 효과적이어서 함께 데스밸리 국립공원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차에서 보내는 시간도 딸과 아들과 대화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골든 협곡, 모자이크 협곡을 함께 걸었는데 사막 속에서 놀라운 아름다움을 만났다. 붉은 빛과 연두색의 퇴적층 바위들이 지각변동으로 솟아오른 후 굳어지기 전에 물로 깎인 굽이굽이가 그대로 작품이었다. 거대한 손으로 만들어진 조각품이었다.
모래언덕에서 바라보는 멀고 가까운 산과 언덕 곡선은 햇빛에 반사되어 녹색, 하늘색, 청색, 빨간색과 자주색의 물감을 짜놓은 화가의 팔레트였다.
데스밸리 국립공원은 캘리포니아 동쪽과 네바다와 경계하는 부분에 걸쳐 있는 광활한 사막 산악 지형으로 알래스카를 제외한 미국 본토 내 최대의 국립공원이다. 산처럼 거대한 모래언덕들과 해수면 보다 낮은 소금 사막, 병풍처럼 둘러친 높은 봉우리들과 여러 사암 협곡들이 늘어서 있는 이곳은 미국에서 가장 건조하고 기온이 높은 지역이다.
연중 강우량이 5 cm 미만인 데 그 이유는 겨울에 비구름이 태평양에서부터 캘리포니아 내륙으로 불어갈 때 4개의 산맥을 거치면서 비와 눈을 뿌리고 남은 건조한 바람만을 데스밸리에 남겨 주는 ‘비 그림자 효과’ 때문이다.
‘데스밸리’ 이름의 유래는 1846년-1848년 멕시코 대 미국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멕시코에 속해 있던 캘리포니아 땅이 1848년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미국이 차지하였다. 멕시코 사람들에게는 뼈아픈 역사이다.
이 전쟁이 끝나갈 무렵 우연히 금광이 발견되고 그 소식이 전국으로 퍼졌다. 1849년 캘리포니아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수천 명이 몰려들었다. ‘49년 사람들’이란 뜻의 ‘49ers’라는 말이 생겨났고, 현재 샌프란시스코의 미식축구단 이름이 ‘49ers‘이다.
당시 동부에서 캘리포니아로 오는 방법은 ’클리퍼‘라는 배를 타고 뉴욕에서 남미의 끝을 돌아 5개월 만에 오는 것과 마차를 타거나 걸어서 오는 것이었다. 이때 지름길로 이곳을 통과했던 사람들이 죽거나 죽을 고생을 한 끝에 붙여진 이름이 ’데스밸리‘이다.
일확천금의 꿈은 불과 몇 년밖에 지속되지 못하였다. 새크라멘토 동쪽 시에라네바다 산맥 주위로 처음 5년 간은 상당량의 금이 발견되었으나 금은 급속히 바닥이 났다. 데스밸리 주위에서도 금이 발견되었으나 잠깐 반짝하였을 뿐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치고 망했다.
데스밸리 주위에는 폐광촌과 유령도시가 여럿 있는데 쓸쓸한 모래바람만 건물의 잔해를 흔들고 있었다. 데스밸리에서 금으로는 재미를 못 보았으나 각종 세제와 실험실에서 약품 개발에 쓰이는 붕사가 발견되어 붕사사업이 몇 년 동안 번창하기도 했다.
데스밸리의 황량하고 척박한 땅에도 생명이 있다. 작은 메스키트 나무가 자라고 있는 데 키는 작지만 땅속으로는 40미터 이상 뿌리를 내리고 지하수를 빨아 올려 생존하고 있다. 과거 인디언 원주민들은 그 열매를 갈아 사용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사막의 정적을 느껴보기 위해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눈을 감으니 고요함 속에서 골드 러시를 찾아가는 마차소리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그리고 100 년쯤 뒤에 미국으로 이민온 나를 포함한 미주한인들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무엇을 찾아 미국으로 왔던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달려 왔던가?금광을 찾아 성공한 미주한인들도 있다. 그러나 많은 ‘49년 사람들’처럼 지치고 허탈에 빠진 동포들도 있다. 이제는 우리가 금광 소식에 흔들리지 말고 메스키트 나무처럼 깊은 뿌리를 내려 자리를 지켜야 되지 않나 생각해본다. 우리의 뿌리는 정직, 성실 더 나아가 희생과 깊은 사랑이 되어야 않을까?칠흑 같은 밤이 되어 자브리스키 언덕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니 별 천국이었다. 은하수도 오리온도 보였다. 이름도 모를 수많은 별들이 외치고 있었다. “금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면 별의 아름다움을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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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 내과의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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