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버락 오바마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에서 있은 그의 고별 연설은 어째서 그가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차분하고 논리적이면서 유창하고 감동적인 그의 연설은 그가 웅변가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다. 트위터를 통해 비명 비슷한 외마디 소리만 지를 줄 아는 도널드 트럼프와 너무 비교된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를 맞은 미국 경제를 살려냈고 수천 만명의 무보험자가 건강 보험의 혜택을 누리게 됐으며 9/11 사태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됐음을 언급하는 등 자신이 이룩한 치적을 열거했다.
“나는 여러분에게 우리 건국 문서에 적힌 믿음을 굳건히 지킬 것을 부탁합니다. 노예와 노예제 폐지론자가 속삭인 생각, 이민자와 개척민과 정의를 위해 행진했던 사람들이 노래한 정신, 외국의 전장과 달의 표면에 국기를 박은 사람들이 확인한 믿음, 아직 쓰이지 않은 역사를 가진 모든 미국인의 가슴 한복판에 있는 믿음, 바로 우리는 할 수 있고 해냈다는 것입니다” 는 말로 고별사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러나 그의 연설은 그의 집권 8년이 어째서 애초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친채 끝났는지도 말해주고 있다. 한 시간 가까운 그의 연설 어디에도 그의 정책적 실패에 대한 인정과 반성은 찾아 볼 수 없다.
2009년 그가 집권했을 때 대다수 미국인들은 그의 통합과 포용, 희망의 메시지에 높은 기대를 갖고 있었다. 미 유권자들은 금융 위기에 대한 책임을 물어 당시 집권당인 공화당을 몰아내고 민주당에게 의회 다수당 지위를 부여했다.
오바마가 좀 더 포용력 있는 정치를 펼쳤더라면 건강 보험, 세제 개혁, 사회 복지 제도 개선, 불법체류자 문제 등 폭넓은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연방 상하원을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을 믿고 전국민 의료 보험 제도를 밀어부쳤다.
그 결과 공화당 단 한 표의 지지도 얻지 못한채 오바마케어 법안은 의회를 통과했고 다른 현안에 대해 타협안을 찾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공화당과의 협력이 물 건너간 상태에서 오바마는 행정 명령으로 현안을 해결하려 했다. 미성년자녀인 상태에서 부모와 함께 미국에 밀입국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미성년 입국자 추방유예’(DACA) 명령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야당 협조 없는 법안 제정과 대통령령의 문제는 대통령과 의회 다수당이 바뀌면 하루 아침에 정책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선거 유세 중 오바마케어 폐지를 포함 오바마가 내린 행정 명령 중 상당수를 뒤집을 것을 공언해왔다.
오바마의 일방적인 정책 결정에 미 유권자들은 민주당을 응징하는 것으로 답했다. 오바마 자신만 2012년 선거 재선에 성공했을뿐 전국적으로 지난 8년간 민주당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연방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공화당에 내줬고 주정부 차원에서도 99개 상하원 중(네브라스카만 단원제) 69개가 공화당 다수며 50개 주지사 직중 33개가 공화당 차지다. 오바마 집권 8년간 선거에서 진 민주당 주 상하원 의원 수만 900명에 달한다.
오바마 집권 8년간 경제가 꾸준히 성장한 것은 사실이나 그 속도는 연 2%대로 역대 회복 중 가장 느리다. 실업률은 8년내 최저지만 많은 사람들이 직업 찾기를 포기했고 임금도 거의 오르지 않았으며 빈부 격차는 오바마 취임 때보다 더 커졌다. 빈 라덴은 사살됐지만 그 뒤를 이은 IS는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고 무엇보다 시리아 내전 방치로 수백만의 이재민과 수십만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미국민 대다수가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런 미국인들이 ‘오바마 집권 3기’라 불린 힐러리 클린턴을 거부하고 그와 정반대인 도널드 트럼프를 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 유학생과 백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그가 첫 흑인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오바마의 역사적 입지는 확고하다. 수많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인종 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미국의 저력을 온 세상에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가 남은 많은 시간을 스스로 고별사에서 밝힌대로 미국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데 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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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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