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스 마이모니데스는 중세가 낳은 가장 위대한 유대 철학자로 꼽힌다. 1135년 스페인의 코르도바에서 태어난 그는 유대교의 경전인 구약의 권위자일뿐 아니라 천문학, 의학, 철학 등 온갖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다. ‘위대한 독수리’라는 별명과 “(출애굽기의)모세에서 모세(마이모니데스)에 이르기까지 모세만한 인물은 없다”는 묘비명은 유대인 정신 세계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말해 준다.
유대인은 인간이 베풀 수 있는 덕 중 자선의 덕을 으뜸으로 친다. 나라를 잃고 2,000년 동안 온 세상을 헤매던 유대인 공동체가 아직까지 존속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의 하나는 그 구성원들이 서로 어려울 때 도왔기 때문이다. 이런 전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10년 현재 미국에서 가장 기부를 많이 한 53명 중 19명이 유대인이고 상위 6명 중 1위 조지 소로스(3억3,000만 달러), 2위 마이클 블룸버그(2억8,000만 달러), 4위 엘라이와 에디트 브로드 등5명이 유대인이다. 빌 게이츠 등이 주도하는 억만장자들의 ‘기부 약속’에 동참한 사람의 절반도 유대인이다.
마이모니데스가 쓴 수많은 글 중 지금도 널리 읽히는 것의 하나가 ‘자선의 8등급’이라는 것이다. 똑똑한 유대인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어려서부터 이를 가르친다. 마이모니데스에 따르면 자선 중 가장 낮은 등급은 불쌍해서 주는 것이다. 거지에게 주는 동냥이 이에 해당한다. 그 위는 자선을 선으로 생각해서 주기는 하지만 인색하게 주는 것, 그 위는 달라기 전에 미리 주는 것, 그 위는 자발적으로 충분히 주는 것이다.
4등급은 자신은 알리되 받는 사람은 알리지 않고 주는 것, 3등급은 자신은 감추되 받는 사람은 알리고 주는 것, 2등급은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알리지 않고 주는 것, 그리고 마지막 1등급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주거나 무이자로 빌려줘서 그 사람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가난한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유대인은 아니지만 마이모니데스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른 사람이 있다. 찰스 피니다. 뉴저지 주에서 태어나 한국 전쟁에 공군 무전사로 참전했으며 코넬대 호텔 경영학과를 나온 그는 면세점 체인을 창업해 억만장자가 됐다. 그가 81세가 되던 해인 2011년 그는 2016년까지 남은 재산을 모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는 작년 말 자신의 재단 애틀랜틱에 남아 있던 마지막 700만 달러를 모교인 코넬대 후배들의 장학 기금으로 내놓는 것으로 그 약속을 지켰다. 그가 평생 기부한 돈의 총액은 80억 달러로 이 돈은 주로 고등교육과 보건, 인권, 학술 사업 지원에 쓰여졌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이런 일을 익명으로 해왔다는 것이다. 그의 자선 사업 행위가 드러난 것은 파트너와 법적 분쟁으로 돈의 용처가 공개됐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제 남은 재산은 200만 달러. 지금까지 남에게 준 돈의 액수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숫자지만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을 것이다. 그는 75세 이전까지는 비행기도 이코노미만 타고 다녔으며 식사도 주로 햄버거로 때우곤 했기 때문이다. “바지는 한 번에 한 벌밖에 못 입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런 그의 행적은 한국의 재벌과 재벌 2세들의 모습과 너무나 비교된다. 한국에서 나오는 재벌 관련 뉴스는 배임, 횡령으로 감옥에 가거나 재산을 놓고 형제까리 소송을 벌여 원수가 됐다는 이야기 아니면 회사 비행기를 개인 비행기로 착각해 마음대로 기수를 돌리게 하거나 아버지의 빽만 믿고 술에 취해 종업원을 폭행하는 재벌의 자식에 이르기까지 한심한 이야기뿐이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SNS에 올렸다는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있는 우리 부모 가지고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라는 말은 한국의 소위 있다는 집 자식들의 의식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런 사회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
한국 부모들은 유대인 교육에 관심이 많지만 어떻게 하면 자녀를 명문대에 보낼 수 있는가에 국한돼 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베풀며 사는 삶의 중요성에 대한 가르침이다. 한국 부모들이 마이모니데스를 읽고 피니를 본받는 재벌이 나오지 않는한 한국이 공정하며 평화롭고 번영하는 사회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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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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