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0년 전쯤 살았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재미있는 상상을 했었다.
“우리가 가진 모든 연장들이 우리의 명령에 의해서든 스스로 필요성을 인식해서든, 알아서 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라.”그러면 노예도 노동자도 필요 없는 세상, 사람이 일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상상이다. 일을 하지 않는 것, 특히 이득을 위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을 그는 인간적인 삶의 기본이라고 여겼다. 일은 물질세계와 연결되니 천박하다는 것이다. 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은 노예에게 시키라고 그는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꿈꿨던 세상에 지금 우리는 살고 있다. 집안에서도 공장에서도 기계들이 사람을 대신해 일을 하고 있다. 그렇기는 한데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상상과는 반대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일에 매여 살고 있다. 전기밥솥이 밥을 해주고 세탁기가 빨래를 해주지만 주부들은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시간에 쫓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적인 삶, 정신세계를 추구하며 여가활동을 즐기는 삶은 점점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첨단기술로 절약된 시간 속으로 새로운 일들이 계속 밀려들기 때문이다.
2017년 새해를 맞으며 이 시대의 보편적 근무환경과 관련한 보도들이 주목을 끌었다. 우선은 프랑스에서 1월1일 부터 시행에 들어간 ‘접속차단 권리’, 직장인들이 퇴근 후에는 업무관련 이메일을 열어보지 않아도 될 권리이다.
인터넷과 랩탑, 스마트폰 등의 테크놀로지 시대가 되면서 직장의 시간적 공간적 경계가 허물어졌다. 어디나 사무실이고 언제나 근무시간이다, 잠옷 입고 침대에 누워도, 수영복 입고 해변에서 휴가를 즐길 때도 이메일과 카톡 메시지는 밀려든다. 개인적 삶의 영역을 마구 침범하는 이런 메시지들로부터 직장인들을 보호하려는 것이 프랑스의 새 근로기준법의 취지이다.
직장인들에게 이메일 체크는 습관이고 중독이다. 스마트폰만 열면 메일을 볼 수 있는 편리함이 문제이다. 편리하니 자꾸 열어보게 되고, 자꾸 보다보니 일에서 헤어나지를 못한다. 관련 조사에 의하면 미국에서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매 주말 평균 5시간을 직장 이메일 처리하는데 쓴다. 그만큼 자녀들과 놀아주고, 친지들과 담소하는 양질의 시간이 줄어든다는 말이다.
여행사이트 엑스피디아 조사에 의하면 미국의 성인들 중 67%는 여행 가서도 직장 이메일과 음성메시지를 점검한다. 그래서 휴가 중에도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지 못한다는 사람이 10%에 달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일에 끌려 다니는 걸까. 두려움과 경쟁심이 원인으로 꼽힌다.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언제 감원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남보다 더 인정받고 더 빨리 승진/성공하고 싶은 욕망이다. 그래서 ‘자나 깨나 일’인데, 거기에는 당연히 대가가 따른다. 때로 대가는 혹독하다.
일본 최대의 광고회사인 덴쓰의 이시이 타다시 대표이사가 며칠 전 사퇴 의사를 밝혔다. 1년 전 크리스마스 날 24세의 여직원이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자살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다.
신입사원이었던 여직원은 지옥 훈련 같은 근무일정을 감당하느라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 증세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해 10월 한달 간 초과 근무만 105시간으로 50여 시간을 연속 근무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상사의 근무지시가 부당해도 어린 사원은 감히 거역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일이 대단히 중시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일은 일차적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수단이지만 현대인들에게는 그 이상이다. 일을 통해 정체성을 얻고, 소속감을 가지며, 삶의 의미를 찾고 자기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돈과 권력, 명성을 얻는 수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이 곧 삶은 아니다. 일에 너무 치우치다 보면 삶에서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린다,코카콜라 사장이었던 브라이언 다이슨은 인생을 5개의 공을 가지고 노는 저글링에 비유한다. 일, 가족, 건강, 친구, 정신의 공들이다, 이들 공을 번갈아가며 공중에 던져 올리는 게임 같은 것인데 어느 하나에 치중하다보면 다른 공들을 놓치게 된다.
그가 깨달은 것은 일은 고무공, 다른 것들은 유리공이라는 사실이다. 고무공은 땅에 떨어지면 다시 튀어 오르지만 유리공은 다르다. 금이 가거나 완전히 깨져 버릴 수도 있다. 일은 실패해도 다음 기회가 있지만, 가족이나 건강, 친구나 정신은 한번 잘못되면 영영 잃을 수가 있다.
새해결심을 하는 시기이다. 저마다 결심의 내용은 달라도 목표는 같다. 보다 나은 삶을 살자는 것이다. 보다 나은 삶에 필요한 것은 균형. 인생의 유리공과 고무공의 균형을 잡는 지혜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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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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