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마무리하며 우리의 삶을 돌아본다. 인간의 삶에서 스스로가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부분은 얼마나 되는 가를 생각해본다. 삶에는 불가항력의 사건들이 분명하게 존재해서, 주어진 조건을 살아낼 뿐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가 있다. 지난 6년 죽음의 공포를 조건으로 살아가는 시리아 국민/난민들의 삶을 생각한다.
2015년 9월 초, 한 장의 사진이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모래에 얼굴을 파묻고 물가에 엎어져 있는 어린아이. 아일라 쿠르디의 사진이었다. 살육의 도가니가 된 고향을 탈출해 살길을 찾아 나섰던 시리아 난민가족이 에게 해를 건너다 오히려 죽음을 맞았다. 난민들을 가득 실은 고무보트가 뒤집어지면서 세 살배기 아일라의 네 식구 중 셋이 죽었다. 혼자 살아남은 아이의 아빠는 부유한 아랍 국가들이 시리아 난민들을 돕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거의 1년이 흐른 지난 8월 또 한 장의 사진이 우리의 망각을 질타했다. 물새처럼 순한 아기의 주검으로 촉발되었던 관심도 잠깐, 각자의 일상에 떠밀려 시리아의 비극적 사태는 지구 저편 우리와는 무관한 사람들의 일로 잊혀졌다. 그런 무관심을 뒤흔들면서 다시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것은 5살 소년 옴란 다크니쉬의 사진이었다.
시리아 내전의 상징 같은 격전지 알레포에서 소년은 무너진 건물더미 속에서 구조 되었다. 온몸이 먼지와 재로 뒤덮이고 머리가 찢어져 피가 흘러내리는 데도 소년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울음도 아픔도 잊어버린 듯 멍한 아이의 눈망울은 그 자체로 내전의 참상이었다.
5살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포탄 소리와 비명, 죽음의 공포 속에서 자랐을 것이다. 아이에게 세상은 그런 곳, 비극과 참상이 일상이다.
2011년 내전 발발 후 시리아에서는 30여만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집계된다. 그중 민간인이 9만명, 어린이 1만6,000명이 여기에 포함된다. 세상에 태어나 경험한 것은 ‘지옥’ 뿐인 아이들이다. 시리아 인구 2,400만명 중 절반은 난민이다. 1,200만명이 시리아 국내와 국외를 떠돌고 있다. 그들의 삶도 ‘지옥’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시리아에서 태어난 것 외에는 달리 잘못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도 심한 고통에 내몰렸다. 무엇이 이 엄청난 비극의 뿌리일까.
시리아의 비극은 아랍 전역을 민주화 물결로 설레게 했던 ‘아랍의 봄’에서 시작되었다. 아사드 정권의 수십년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고, 이들의 평화적 시위를 정부군이 무자비하게 진압하면서 내전이 시작되었다.
정부군과 반군 싸움에 이란과 레바논 등 시아파 국가들이 전자를 지원하고, 사우디, 터키 등 수니파 국가들이 후자를 지원하면서 시아파 대 수니파 싸움이 되고, 여기에 러시아와 서방 국가들이 각기 이해에 따라 정부군과 반군을 지원하면서 시리아 내전은 복잡하고 복잡한 대리전으로 비화했다. 비극의 뿌리가 깊어서 파생되는 일이다.
시리아 비극의 뿌리는 1,3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가 632년 사망하자 후계자 선정을 두고 무슬림이 갈렸다. 무슬림 공동체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을 지도자로 뽑아야 한다는 측과 후계자는 무함마드 가계에서 이어져야 한다는 측이었다. 다수를 차지한 전자가 수니파, 소수인 후자가 시아파로 종파 간 갈등이 이제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아사드 정권이 자국민에게 극도로 무자비한 것은 국민들 대다수가 수니파인 반면 자신은 시아파이기 때문이다. 12%에 불과한 소수종파로서 다수파 국민들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아사드는 철권통치를 택했다.
시리아 비극의 보다 직접적 뿌리는 100년 전 서구 제국주의였다. 수니파와 시아파가 항상 대립관계였던 것은 아니다. 각각의 근거지를 토대로 평화롭게 공존했다. 이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은 것은 서구의 탐욕이다. 1차 대전 중이던 1916년 영국과 프랑스는 중동지역을 나눠서 차지하기 위해 협정을 맺었다. 이 지역의 종파와 종교, 부족을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국경선을 그으면서 오늘의 비극이 잉태되었다.
아일라의 아빠가 아랍 국가들에 섭섭함을 토로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나라는 달라도 100년 전만해도 같은 고향 사람이고 친척이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레바논 내전 중 레바논에서 그리고 2번의 이라크 전쟁 중 이라크에서 피난 온 수니파 난민들을 시리아 국민들은 환대했었다.
시리아 정부와 반군이 일단 휴전에 들어갔지만 얼마나 갈지는 알 수 없다, 죄 없는 아이들이 지옥만을 경험하다 죽어가는 비극에 세계가 관심을 좀 가져야 하겠다. 지금 우리의 선택이 1,000년 후 우리 후손들에게 불가항력의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역사 앞에서 겸허한 자세로 새해를 맞았으면 한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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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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