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재앙이었다’-. 고대 로마제국의 황제 코모두스의 치세에 대한 역사가들의 평가다. 5현제의 하나인 마르쿠스 아우렐루스가 아버지다. 그런 그가 즉위하자 펼친 것은 측근정치였다.
코모두스는 검투사 경기에만 열중해 있었다. 그 와중에 측근에 의한 매관매직이 공공연히 이루어졌다. 어느 정도였나. 측근에 돈을 내고 근위대장에 임명됐다. 그러다가 닷새 만에 물러났다. 심지어 여섯 시간 만에 쫓겨난 기록도 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나. 그 측근, 클레안드로스는 결국 성난 군중에게 살해된다. 그래도 코모두스는 검투사 경기에만 정신이 빠져 있었다. 결국 반정(反正)과 함께 제위에 오른 지 12년 만에 암살된다.
그러자 원로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코모두스를 ‘기록 말살형’(Damnatio memoriae)에 처하기로 결정한다. 이 형에 내려지면 초상은 물론이고 공적 비에서 이름도 지워진다. 코모두스 치하의 그 ‘끔찍했던 나날’들을 역사란 기억에서 아예 지워버린 것이다.
2016년은 한국인에게는 ‘끔찍한 한 해’(annus horrbilis)였다. 블룸버그 통신의 지적이다. 이 해는 후세에 ‘병신국치(丙申國恥)’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국내에서 나오는 소리다.
여성이 대통령이 됐다. 그만큼 민주주의가 발달했다. 그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이 대통령 한 사람으로 인해 샤머니즘 국가로 전락했다. ‘코리아 브랜드’에 큰 상처가 난 것이다. 순간 대한민국은 물론 해외의 한인들까지 집단적 ‘멘붕’사태에 빠졌다.
최순실이 해외에 은닉한 돈만 10조가 넘는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 요직 후보자를 최순실에게 전달하면 대상자를 최종 낙점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또, 그리고 또….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그 끝은 도대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다.
집단 멘붕이 이내 분노로 확산됐다. 그러니까 그동안 보아온 것은 대통령의 환영(幻影)이었던 거다. 그 환영이 지워지면서 민낯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분노는 허탈감으로 바뀌고 있다. 고작 그런 정도 인간이었나 하는.
심각한 언어장애를 앓고 있다. 그 정신연령은 17~18세에 불과하다. 그는 언어성형자이다. 민주의식이 부족하다고 할 수준도 넘어섰다. 스스로를 무오류의 왕으로 생각한다. 유체이탈화법으로 유명한 박근혜 대통령의 평소 발언이 낱낱이 해부된다. 그리고 내려지는 비판이다.
언어는 사고의 집이다. 언어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 언어로 볼 때 사고체계는 극도로 단순화 돼 있다. 피(彼)와 아(我)만이 존재하는 흑백세계에 갇혀 있다. 그리고 내면은 천박한 수준이다. 그러니까 ‘무개념’의 인간이라는 거다.
보수 우파의 기수이자 최종 보루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그동안의 일반적 인식이다. 과연 그럴까. 그 의문제기의 발단은 미친 소가 날 뛸 때, 그러니까 광우병 폭력세력이 대한민국을 무법천지로 만들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신에 대한민국이 흔들렸다. 불안선동세력이 판쳤다. 그 중차대한 국면에서 여권의 실세였던 박근혜는 미친 소 세력에 동조했다. 그 판단력은 과연 안전한 것인지 보수진영에서도 이의가 제기됐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05년 한나라당 대표를 맡았던 시절 김정일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도 그렇다. 게다가 대통령이 된 이후 박근혜 외교는 친중(親中)으로 일관했다. 그 압권은 자난 해 중국의 전승절 70주년을 맞아 시진핑, 푸틴과 나란히 천안문 망루에 오른 것이다.
무엇이 친중노선을 걷게 했나. 역시 비선실세들의 영향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이제 와서 폭로되고 있다. 친중노선에 유일하다시피 반대를 한 사람은 남재준 정보원장으로, 그는 결국 비선실세의 눈에 나 경질됐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안보와 외교문제에서도 박대통령은 ‘무개념’으로 일관 했다는 사실이다. 세계관이 빈곤하다. 그러니 확고한 외교 전략이란 것도 없다. 그게 박근혜 외교의 실상이었던 거다.
한 마디로 무능하다. 거기다가 사악하기까지 하다. 탄핵선고를 내린 국민들의 박대통령에 대한 판결이다. 거기에 하나를 더 붙인다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보수세력 말살’이 박대통령에게 내려지는 또 다른 역사의 심판이 아닐까.
3류 수준의, 말도 안 되는 몇몇 측근들과만 소통을 해왔다. 그 결과, 정치, 경제는 물론 외교와 안보까지 그르쳤다. 그 실정(失政)의 덤터기가 온통 보수세력에 돌아가 하는 말이다.
2016년 병신년의 달력이 한 장 남았다. 그런데 그 하루하루가 길게 느껴진다. 너무나 ‘끔찍한 해’이기 때문인가. 그렇다고 절망뿐인 것은 아니다. 크리스마 스이브에도 켜진 촛불에서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 함성에는 좌(左)도 우(佑)도 없다. 정파가 없는 것이다. 진영논리를 펴려고 했다. 그러자 민심은 더욱 화났다. 그리고 정치권의 그 분열책동을 막았다. 오로지 부패에 저항해 촛불을 켜 든 것이다.
‘끔찍한 해’(annus horrbilis) 병신년은 이제 굿바이. 희망의 정유(丁酉)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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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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