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아이들이 어렸을 때, 12월이 되면 몸이 몇 개쯤 되었으면 싶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무슨 대단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듯 계획을 짜고 시간을 안배해야 했다.
아이들 선물이 제일 큰 일이었다. 삼남매를 위한 엄마아빠의 선물에 산타클로스 선물을 합치면 6개. 거기에 아이들이 엄마 아빠에게 주는 선물, 그리고 저희들끼리 주고받는 선물을 합치면 아이마다 4개씩 합이 12개. 기본적으로 18개의 선물을 장만해야 하는데 문제는 차편이었다.
선물을 미리 알게 하면 안 되니 아이들 모두 떼어놓고 혼자 샤핑몰에 가기도 하고,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가서 아빠(엄마) 선물을 고르게 하기도 하고, 아이를 한명씩 데리고 가서 다른 두 아이의 선물을 고르게 하기도 했다. 그렇게 수도 없이 샤핑몰을 왔다 갔다 하고, 그 사이사이 크리스마스트리 사오고 집안 장식하고, 지인들에게 카드 보내고 선물 보내고 … 크리스마스 아침이면 ‘올해도 무사히~’ 끝난 것이 반가울 뿐이었다.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난 지금, 아이들은 어떤 크리스마스 추억을 가지고 있을까. 그때 발이 닳도록 다니며 골랐던 선물들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샤핑몰을 함께 헤집고 다녔던 기억, 크리스마스 아침에 선물 꾸러미들을 풀며 한바탕 신이 났던 기억 … 한 지붕 아래서 함께 했던 훈훈한 시간들이 추억의 알갱이로 남아있지 않을까 싶다.
지난해 독거노인을 주인공으로 크리스마스 TV광고를 제작했던 독일의 수퍼마켓 체인이 올해도 가족을 주제로 광고를 만들었다. 가장 소중한 선물은 ‘함께 하는 시간’이라는, 지난해와 같은 주제이다. 돈 한푼 안드는 ‘시간’이라는 선물에 우리는 왜 이렇게 인색해진 걸까.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를 돈과 물건이 차지한 결과, 삶에서 주객이 전도된 결과이다.
독일 최대 수퍼마켓 체인 에데카(EDEKA)는 지난해 짧은 광고 하나로 전 세계를 감동시켰다. 부인은 세상을 떠나고, 자녀들은 각자 일하랴 제 가족 돌보랴 바빠서 도무지 고향집에 오지 못하는 어느 노인의 우습고도 슬픈, 웃픈 이야기이다.
몇 년 째 크리스마스를 혼자 맞았던 노인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낸다. 자녀들에게 자신의 사망 소식을 전한다. 갑작스런 소식에 삼남매는 충격을 받고, 자책과 후회로 괴로워하면서 고향집에 도착하는데 그들을 맞은 것은 희색만면한 아버지와 크리스마스 만찬. “이렇게 안하면 어떻게 너희 모두를 불러 모을 수 있었겠니?”온 식구가 오랜만에 한 지붕 아래서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장면으로 광고는 끝나고, 시청자들은 각자의 노부모를 생각하며 가슴 뜨끔해 했다.
수명은 길어지고, 배우자 떠나고 나면 고독과 끝없이 벗해야 하는 것이 노년의 현실이다. 자녀들이 번갈아 가면서라도 노부모를 찾아가 함께 시간을 보내면 좋겠지만 사는 지역이 다르면 생각뿐, 실천이 쉽지 않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그러다 보면 세상의 모든 시간을 다 낸다 해도 같이 할 수 없는 순간이 닥친다. 삶은 결국 시간, 살아 있어야 시간도 있다.
올해 에데카의 광고는 크리스마스 준비하느라 바빠서 정작 아이들은 뒷전으로 밀리는 많은 가정의 풍경을 담았다. 가족들, 특히 아이들과 즐거운 명절을 보내기 위해 선물도 사고, 집안장식도 하는 것인데, 거기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아이들이 방치되는 것이다. 무대 장치에 공을 들이느라 출연 배우들을 잊어버리는 격이다.
광고에서 30·40대 부모들은 바쁘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트리도 사야하고, 샤핑도 가야하고, 쿠키도 만들어야 하고, 하나라도 잘못되면 안 되는데 … ” - 그 옆에서 아이는 완전히 잊혀진 존재가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뭘 하고 있나’ 싶은 자각이 들면서 “이것도 할 필요 없고, 저것도 할 필요 없고, 좀 잘못 되면 어떤가. 단 하나 중요한 것은 네 옆에 같이 있어주는 것” - 부모와 아이들이 웃음을 되찾고 ‘최고의 선물은 함께 하는 시간’이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광고는 끝난다.
물건은 넘치고 시간은 부족한 시대이다. 집집마다 장난감도, 옷도, 책도 넘쳐나서 때마다 아이들에게 뭘 선물할지가 큰 고민이다. 돈 버느라 일에 매여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미안함을 많은 부모들은 물건 선물로 푼다.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노년이 되면 물건은 별로 필요하지 않다. 입던 옷 입고, 쓰던 물건 쓰면 된다. 은퇴연금이나 웰페어를 받으니 용돈이 특별히 필요한 것도 아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고독감, 가장 아쉬운 것은 ‘사람’이다.
연말연시, 많은 사람들이 들뜨고 많은 사람들이 외롭다. 시간을 준다는 것은 존재를 잠시 내어주는 것,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소중한 선물을 아끼지 말자.
junghkwon@koreatimes.com
<
권정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