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11일 링컨센터 데이빗 게펜홀에서 열린 백건우 뉴욕필 협연은 연말을 보내는 한인들에게 축복같은 시간을 선사했다. 백건우가 연주한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3번 C단조 작품번호37’은 클래식을 잘 모르는 이에게도 연주에 몰입하게 했고 콘서트가 있은 지 2주일이 지났어도 그 여운을 음미하게 만든다.
특히 이 피아노협주곡 3번은 베토벤이 귀가 멀어가는 와중에 작곡된 곡이라고 한다. 베토벤은 알다시피 한창 음악가로서 명성을 날릴 때 귀가 멀기 시작하여 50세에는 귀가 완전히 멀었다. 음을 듣고 연주를 하고 작곡을 해야 하는 사람이 소리를 들을 수 없다니 그야말로 사형선고이다. 눈앞이 캄캄하고 마음이 무너지는 절망적 상황에서 베토벤은 교향곡5번, 9번, 6개 현악4중주곡 등을 계속 작곡하였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처럼 치명적인 결함도 없다. 그런데 불굴의 의지는 지닌 인간은 그 치명적인 결함을 종종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스코틀랜트의 타악기 연주자인 이블린 글레니(Evelyn Glennie)는 8살에 청각장애를 앓고 12살에 청각이 완전히 상실됐다. 2015년 음악의 노벨상이라는 폴라 음악상을 수상한 그녀는 세계 각국의 오케스트라와 1년 100회 정도의 연주를 하며 세계 각국의 타악기를 연주하는데 황병기 가야금 연주자와 함께 한국 타악기를 연주한 적도 있다.
그녀는 느끼는 연주를 한다. 소리의 진동과 뺨의 떨림의 소리를 감지하는 연습을 수없이 하며 귀로 듣는 것이 아닌 피부로 듣는 훈련을 한 그는 맨발로 무대에 서서 소리의 진동을 느낀다. 귀가 아닌 온몸으로 듣고 연주하는 맨발의 연주자다.
또한 강하고 개성 있는 색감으로 그림을 그리며 세계 화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텍사스 출신 현대미술가 존 브램블릿(John Bramblitt)이 있다. 그는 어려서 시력이 안 좋다가 간질로 완전히 시력을 잃어버렸다. 그는 좌절에 시달리는 대신 머릿속 상상을 촉각에 의지하여 그림을 그린다. 작품이 완성하기 까지 피나는 연습과정이 필요했다.
한국 TV 예능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최고 인기를 얻은 이연복 중화요리 달인은 냄새를 못맡는다. 그는 26살에 축농증 수술의 후유증으로 후각을 잊어버렸다고 한다. 후각 대신 미각을 발달시켜 간 조절을 정확하게 한다고 한다.
그 외에도 사고로 전신 불구가 되어 입으로 타블렛을 물고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발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등 신체의 장애를 극복한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장애물에 부딪쳤을 때 극복하려고 애 쓰다가 힘에 부치면 실망하고 좌절하고 포기하곤 한다. 색다른 도전 앞에서는 망설이고 불평하고 체념하기 쉽다. 그러나 삶에는 직선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회도로가 있고 곡선이 있다며 삶에 대해 경건한 태도를 보여주는 이들이 있다.
눈 코 입 귀가 정상이고 사지육신이 멀쩡한 사람도 한 분야에서 우뚝 서려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른다. 하물며 화가가 그림을, 음악가가 음악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눈이요 귀일 것인데 이 기본적인 것이 상실되었다면 그날로 그 일을 접어야 한다고들 생각한다. 이 치명적 결함을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힘든 노력을, 남들보다 수십배, 수백배의 노력을 할 것은 자명해 보인다.
잘 보이고 잘 맡고 잘 들리는 이 모든 것이 제대로인 우리들은 얼마나 정상적으로 살고 있는가? 사지육신이 멀쩡하나 마음이 병들지는 않았는가? 게으르고 나태하며 남한테 폐를 끼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극한 장애를 극복한 사람의 이야기는 정상인인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이제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이 해도 끝난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는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 시 한 구절이 생각한다. 검은 몸을 뜨겁게 태워 다른 이들을 따뜻하게 해주고 하얀 재가 되어버린 연탄재, 온몸을 태워, 자기 전부를 태워 삶을 사랑하라는 말이다. 당신은 지난 일년동안 단 한번이라도 남을 위해 살아본 적이 있는가? 또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가?....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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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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