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한 친구가 딸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있다. 비영리기구에서 일하는 그의 딸은 출장이 잦다. 미 전역으로 돌아다니느라 잠 한번 편히 못자는 딸에게 그는 질 좋은 이불을 장만해주고 싶다고 했다. LA 제 집에서 자는 날만이라도 편하게 잤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이다,친구는 깃털처럼 가볍고 구름처럼 포근하다는 야생거위 털 이불을 알아보았다. LA 한인타운에서 고급상품을 취급하는 한 가게에 가보았는데 값이 엄청나더라고 했다. ‘2,000달러나 한다더라’는 이야기를 10여 년 전에 들은 기억을 떠올리며 “얼만데?” 하고 물으니 “3,000달러!” 라는 것이었다.
이불은 이불일뿐, ‘이불이 3,000달러’라니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이불 커버 값이 또 1,500달러 정도라니 세금 포함하면 이불 한 채 장만하는 데 5,000달러가 든다는 말이다. 아무리 품질이 좋다 해도 이불의 가격이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야생거위 털 이불에 대해 좀 알아보고 싶어서, 그리고 한인타운 상점이 혹시 한인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서 그날 저녁 인터넷으로 조사를 해보았다. 결론은 거위털 이불 가격은 천차만별이라는 것. 그날 찾아본 이불들 중 가장 비싼 것은 1만4,000달러나 했다.
미국에서 2016년 연방 빈곤선은 1인기준 연소득 1만1,880달러이다. 2인 가족인 경우는 1만6,020달러 이하면 빈곤층이다. 미 전국 빈곤층 인구는 5,000만명 정도. 이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의 이불 한 채 값으로 1년을 산다는 말이다. 남들은 1년 사는 생활비를 누군가는 이불 한 채 사는 데 써버린다는 말도 된다. 그건 정당한 걸까.
다음날 출근길에 프리웨이를 나와 시내도로로 들어서니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노숙자들의 텐트가 띄엄띄엄 눈에 들어왔다. 다른 대도시들과 마찬가지로 LA에서도 길거리에서 잠자는 노숙자들 때문에 행인들이 불편을 겪고, 좀 후미지다 싶은 곳마다 텐트들이 삼삼오오 진을 치고 있다.
같은 밤, 같은 나라에서 수천달러짜리 이불 덮고 자는 사람들과 신문지와 담요에 의지해 콘크리트 바닥에서 새우잠 자는 사람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경제는 분명 성장하고 있고 사람들의 씀씀이는 커지고 있는데, 노숙자들이 오히려 늘어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개개인의 능력과 성실성에 따른 차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평생 성실하게 일해 왔어도 어느날 갑자기 직장을 잃으면 두어 달 버티기 어려운 것이 대부분 서민들의 현실이다. 그달 그달 살기도 빠듯한 데 저축해놓은 돈이 있을 리가 없다. 아파트 렌트비 몇 달 밀리면 길거리로 나앉을 수밖에 없다, 중독자나 정신질환자만 노숙자가 되는 게 아니다.
21세기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제기해온 프랑스의 토마 피케티 파리 경제대 교수와 UC 버클리의 임매뉴얼 사에즈 교수가 1980년부터 35년 간 미국인들의 소득을 분석한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결론은 한마디로 소득 불균형이 날로 심화하고 있다는 것.
소득을 기준으로 인구를 절반으로 나눌 때, 하위 50%는 경제 성장의 단맛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소득 사다리 중간 이하에 해당하는 대략 1억1,700만명의 취업연령 성인들은 지난 35년 동안 인플레이션 감안, 소득 증가분이 ‘제로’로 나타났다. 반면 경제 규모가 배 이상 커진 그 기간 상위 50%의 소득은 3배가 증가했다. 증가분의 대부분은 상위 10% 혹은 1%에게 쏠린 것은 물론이다.
1980년부터 2015년 사이 평균 소득은 인플레이션 감안, 61%가 증가했다. 그런데 늘어난 증가분 10달러 당 7달러는 소득 상위 10%가 차지했다. 주 원인은 자본수익이다. 상위계층일수록 주식 투자나 건물 임대 등 자본을 통해 얻는 이윤, 배당금, 이자, 임대료가 많아 소득이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 임금에만 의존하는 소득 하위계층이 거북이라면 자본으로 수익을 펑펑 늘리는 상위계층은 하늘을 나는 새에 해당한다. 오죽하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하겠는가.
상위 1%를 보면 그림이 분명해진다. 1980년 이들의 평균 연소득은 2014년 달러가치로 42만8,200달러, 소득 하위 50%의 평균 연소득 1만6,000달러의 27배였다. 2014년 후자의 소득은 1만6,000달러로 그대로 인데 반해 전자의 소득은 130만4,800달러로 81배가 되었다. 이런 엄청난 격차는 미국과 콩고의 국민소득 차이에 해당한다.
경제적 불평등은 날로 심각해지는데 미국은 상위 1%가 통치하는 나라가 되었다. 대통령도 각료들도 하나 같이 억만장자들이다. 이들이 이불 한 채 값으로 1년을 살아가는 저소득층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새해를 맞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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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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