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나의 고독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40여 년 전 발표된 닐 세다카의 ‘당신은 나의 모든 것(You mean everything to me)’을 이어피스로 들으며 바닷길을 걷는다. “너무 오래 앉아 있었는데 이제 좀 걷는 게 좋을 걸”- 3시간 넘도록 일에 파묻혀 있던 중 스마트폰 앱으로부터 귀여운,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경고를 받고, 불현듯 일어나 인근 페이스 북 본사 둘레길 산책에 나섰다.
보통 4Km 정도 걷고 나면 혈액순환이 잘되고, 점심식사 후 약간 땀이 흐를 정도로 산책한 날은 나른함에 10여분 달콤한 오수에 빠지는데, 깨고 나면 컨디션이 최고다. 손 안의 스마트폰을 통해 건강한 생활 안내도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걷다보면 덤불가지에 앉아 있는 파랑새, 갯벌 얕은 물에서 열심히 주전부리를 하고 있는 긴부리 도요새, 물 숲 어딘가를 오래 노려보고 있는 흰 새끼 두루미가 한가롭다. 갯벌 저 멀리 북쪽으로는 30마일 떨어진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의 고층건물도,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하는 국적기들의 모습도 아스라이 보인다.
페이스 북은 지구촌 곳곳의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멋진 기술과 함께, 내게는 이렇게 좋은 트레일까지 제공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호사도 한달이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본격 우기를 맞아 빗방울 뿌리는 하늘만큼이나 내 마음도 어둡다.
실리콘밸리의 글로벌 IT 기업들은 저마다 악 소리 나게 큰 대단위 캠퍼스를 자랑한다. 마운틴 뷰의 구글이 그렇고, 쿠퍼티노의 애플은 말할 것도 없다. 인공위성에서 내려다보면 착륙한 비행접시처럼 보인다는 250만 평방피트의 신사옥을 짓고 있다.
페이스 북은, 팔로알토의 좁은 사무실에서 창업했다가 10여년 전 1차 닷컴 붕괴 시 문 닫은 멘로팍의 선마이크로 시스템의 어마어마한 캠퍼스로 옮긴지 한 4년 되었을까? 바로 길 건너에 구 사옥과 맞먹는 100만 평방피트(건평 2만8천평)의 대규모 신사옥을 작년에 지은 것도 모자라, 그 일대 비즈니스 팍을 하나둘 사들여 입주 회사들을 내보내고 있다.
아무리 가입자 수가 10억 명을 넘는 초거대 글로벌 사회관계망 기업이라고 하지만, 도대체 무슨 일을 그리 많이 하길래 그 많은 사무실 공간이 필요한 건지 상상이 안 간다. 내가 입주한 빌딩도 페이스 북으로 부터 금년 말까지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아 이사를 가야 한다.
교통이 편리한데다 첨단 회의실 등 부대시설이 좋아 나는 이 사무실 환경을 지난 5년간 말 그대로 사랑해왔는데, 페이스북이 꼭 이래야 하는 건지 야속하다가도 보유 주식의 98%를 사회에 내놓기로 한 마크 저커버그의 선행을 떠올리며 마음을 누그러트린다.
만나는 입주 기업인들마다 ‘너는 같이 갈거니, 아니면 다른 곳에 알아봤니?’하면서 서로 걱정을 해준다. 사람이 자신의 근거지 변경을 강요받을 때 참 섭섭해지는 법. 어쨌든 나는 유난히 빨리 저물어 버린 듯한 올 한해를 돌아보는, 약간은 들뜨지만 한편 숙연해지는 이 계절에 사무실을 옮겨야 하는 작은 고민에 빠져 있다. 우유부단한 나 같은 결정장애자도 12월중에는 결정을 내려야한다.
올 한해 나는 어떤 감사한 일이 있었나 곰곰 생각해 본다. 곰곰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비즈니스가 시원찮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감사할 일이 떠오른다.
한국을 다녀온 직후인 새해벽두, 주말 장거리 달리기를 나갔다가 숨이 가빠 자주 서야했다. 혈액검사를 받아보니 헤모글로빈 부족, 빈혈이 가쁜 호흡의 원인이었다. 50세 이상인 사람의 빈혈은 위험신호라고 해서 즉시 위장, 대장 내시경과 중간복부 MRI 검사 그리고 정맥 혈전 검사에 돌입했다. 우리 연령대에 피가 모자라는 증상은 위장, 대장 등의 암으로 인한 내출혈 가능성이 있으므로 각별히 점검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과를 기다리던 이틀, 나는 대학입시 발표를 기다리는 입시생 보다 훨씬 더한 비장함으로 여러 상상을 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만약 암이라면 이렇게 해야지… 등등.
날아온 소식은, 아무 이상 없음. 철분 알약 3개월 복용하고 야채 위주로 식생활을 개선하라는 행복한 처방이었다. 올 한해 이 보다 더 감사할 일은 없지 싶다. 돈이야 있다가도 없는 것, 사업 부진이 무슨 대수이겠는가.
이제 남은 건 사무실 구하는 일. 나의 고독한 기도에 하나님은 어떤 멋진 사무실로 응답해 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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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환 실리콘밸리 부동산 중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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