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올랐다. 단풍이 지는 산. 정상엔 호수가 있다. 오르고 내리는 동안 수없이 지나치는 작고 큰 나무들. 말이 없다. 그래, 자연은 말이 없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건, 한국에선 온통 혼란스러운 날들이 계속되고 있건, 산과 들은 말이 없다. 산과 들 뿐이랴 하늘도 말이 없다. 강물도 바다도 그저 흐를 뿐이다. 말없이, 말없이.
감사의 계절이다. 매년 맞이하는 추수감사절. 칠면조들이 수난을 당하는 날. 반면, 사람들은 가족과 친척들이 끼리끼리 모여 칠면조를 먹으며 한 해의 무사함을 감사하는 날이다. 감사절은 영국의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와 농사를 짓고 처음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데서 유래한다.
산에 오르며 감사를 드린다. 얼마나 공기가 맑고 좋은가. 산과 호수. 호수의 물이 그렇게 청정할 수가 없다. 물고기들이 자유스레 노닌다. 장자가 물속의 물고기의 노님을 보며 자신이 물고기인가, 물고기가 나인가? 라고 자문자답했듯, 호수속의 물고기들의 노니는 자유스러움. 그 자유함에 비해 인간이 뭐 그리 잘 난 게 있다던가.
산에서 내려오며 커다란 고목이 큰 바위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을 본다. 어떻게 고목의 큰 뿌리가 바위를 감싸 안고 자랐을까. 이리 생각해도, 저리 생각해도 알쏭달쏭하다. 나무의 나이가 못 먹었어도 100년은 넘은 것 같다. 바위가 나무를 끌어안은 게 아니고 나무가 바위를 끌어안고 있다. 자연의 조화라 할까. 너무 보기 좋다.
돈을 내지 않아도 되는 햇빛과 공기. 단 한 푼의 돈도 요구하지 않는 자연의 넉넉함이다. 공기 없이 하루도 채 살아 갈 수 없는 생명체들 아닌가. 24시간 365일, 몸속에 흐르고 있는 산소를 담고 있는 공기의 흐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단 3분, 아님 4분. 공기를 마시지 않으면 호흡이 멈춘다. 호흡의 멈춤은 곧 죽음이다.
도파민.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호르몬이다. 그러나 감사한 마음, 긍정의 마음을 품으면 저절로 생겨나는 것. 도파민은 마음에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행복감을 안겨준다. 아드레날린. 스트레스를 방치하거나 불평불만이 쌓이면 생겨나는 호르몬. 복어가 가진 맹독과 독사의 독과 유사한 독을 내뿜는 아드레날린. 무엇을 택할 건가.
자존감, 자존심. 이것, 절대 밥 먹여주는 것들 아니다. 버릴 때는 버릴 줄 알아야 감사가 생겨난다. 특히, 부부사이. 절대 불필요한 것이 자존감과 자존심이다. 감사의 조건 중 하나는 자신을 버리는 거다. 자신을 낮추는 거다. 그것은 바로 겸손이다. 겸손한 자는 절대 화내지 않는다. 웃음 속에 화를 감출 줄 안다.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자연은 말이 없다. 산도 들도, 물도 호수도, 나무와 바위도 말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말을 하고 있다. 말 없는 말들을.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말 없는 말들. 서로 아껴주고 감싸주고 품어주고 살아가라 한다. 감사하며 살아가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을 너무 괴롭히지 말라 한다. 지금까지 인간이 자연을 파괴한 잘못이 얼마나 많은가.
장자의 물화(物化). 장자의 나비 꿈. 장자철학을 대표하는 꿈 얘기다. 장자의 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호접지몽(胡蝶之夢). 옛날 장주란 사람이 꿈에 나비가 됐다. 갑자기 깨어나 보니 장주였다. 그러나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됐는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건지 알 수가 없다. 산에 오르면 산과 하나가 된다. 산 속에 내가, 내가 산속에.
지난해 암 수술을 받은 한 친구. 고통 속에 죽음같이 살았다며 지금은 그 고통이 많이 사라지고 없단다. 그의 말, 고통이 가시니 이 보다 더 감사한 일이 없다고 한다. 그래, 살아가며 고통만 없어도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감사란 먼 곳에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서 감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감사하면 토파민이 나온다. 분노와 화를 내면 아드레날린이 나온다. 열 받지 말자. 나비도 되어보고 물고기도 되어보자. 말 없는 자연 속에 나를 담아 보자. 추수감사절. 지난 한 해 동안의 무사함과 살아옴을 감사해보자. 고목이 큰 바위를 품듯 품으며 살아보자. 한 푼의 돈 내지 않고도 받는 공기와 햇빛. 너무 감사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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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뉴욕지사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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