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한분이 벌침에 쏘인 후 손이 퉁퉁 부어 내원하셨다. 꿀벌이 손에서 놀고 있었는데, 해칠 의향이 없는 자신에게 설마 침을 쏠까 싶어 그냥 두었다는 것이다. 꿀벌은 죽었고 마음씨 좋은 환자의 손에는 염증이 생겼다. 소통 부재의 결과였고 항생제와 소염제 치료의 대가를 치르고 상황이 호전되었다.
꿀벌은 꿀, 꽃가루를 모으면서 개미처럼 집단생활을 한다. 꿀과 꽃가루를 모으는 이유는 식량저장. 1년 내내 모아서 겨울에 아껴먹고 살아남는다. 몸 표면에는 많은 잔털이 있다. 점성이 큰 꿀에 빠지지 않으면서 동시에 꽃가루를 잘 모으기 위한 것이다. 잔털에 들러붙은 꽃가루를 모아서 뒷다리에 있는 부위에 접착시킨다. 꿀은 삼켜서 보관했다가 둥지에 돌아가서 뱉어낸다.
꿀벌은 꽃가루를 꽃에서 꽃으로 옮김으로써 식물의 번식을 돕고 개체수를 유지하도록 하여 생태계의 균형을 맞춘다. 수박 등의 작물은 수꽃의 꽃가루를 암꽃에게 묻히는 수정작업이 필요한데 사람의 손으로 하려면 중노동이지만, 벌통 하나만 밭에 놓아두면 반나절에 작업이 완료된다. 양봉업자들이 꿀을 팔아 버는 수입보다 작물을 수정시켜주고 버는 돈이 더 많을 것이라 한다.
꿀벌은 호전적인 곤충이 아니며 사람을 무서워해서 먼저 해치지 않으면 덤비지 않으나 집단이 위기에 처하면 목숨을 걸고 싸운다. 꽁무니에서 벌침을 내어 쏘는 공격을 하는데 꿀벌의 침은 내장과 이어져 있어 한번 쏘고 나면 침과 내장이 빠져나오고 꿀벌은 죽는다. 이 때문에 꿀벌은 벌침을 최후의 수단으로만 사용하여 ‘희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군체 생활을 하는 꿀벌은 수많은 육각형 방들이 있는 벌집을 건설하여 사는데 겨울에 벌집을 열어보면 서로 다닥다닥 붙어서 체열로 보온해가면 살아남는다.
천적으로는 말벌, 사마귀, 거미, 잠자리 등이 있다. 특히 말벌은 꿀벌이 모아 놓은 꿀과 애벌레를 약탈하기 위해서 꿀벌의 집을 습격한다. 꿀벌은 무리를 지어서 말벌과 전투를 벌이는데 힘이 부칠 경우 많은 꿀벌들이 말벌을 에워싼 후, 날개 근육을 움직여 온도를 높여서 죽이기도 하고 고농도의 이산화탄소를 내뿜어 질식시키기도 하며 자기 공동체를 보호한다.
우리 몸속에도 생명을 바쳐가며 다른 조직을 보호해주는 세포들이 있는데 바로 백혈구이다. 사람 혈액 속에는 적혈구, 혈소판 그리고 백혈구가 있다. 적혈구는 산소를 운반해주고, 혈소판은 우리 몸에 출혈이 있을 때 피가 멈추게 해준다. 백혈구는 면역체계를 구성하여 감염이나 외부 침입 물질에 대한 방어기능을 해준다.
백혈구 종류는 임파구, 호중구, 단핵구, 대식세포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임파구 중에서 T 임파구는 직접 바이러스를 파괴하고 B 임파구는 외부 침입자를 기억해 놓는다. 대식세포는 몸속에 들어온 세균이나 이물질을 먹어치운다. 대식 세포는 잡아먹은 세균을 분해하여 단백질 찌꺼기를 T 임파구에게 보여주는데 그러면 T 임파구는 이 신호를 B 임파구에게 보내어 세균을 기억하게 하고, 그 세균에 잘 붙는 항체(면역)를 만들게 해 외부 침입자를 공격한다. 어느 정도 세균을 잡아먹은 대식세포는 사멸한다.
이렇게 백혈구가 무단 침입자와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장렬하게 전사하고 남은 잔해가 고름이다.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을 늘 당연시 하지만 끊임없는 세균 공격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세포들을 위해 몸 바쳐 싸우는 백혈구 덕분이다.
백혈구는 어떻게 이런 희생정신을 가지고 있는지 놀랍고 궁금하다. 성경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했는데, 이기심으로 뭉쳐진 인간에게서 그런 사랑을 전달 받았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치며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이 백혈구에 심어진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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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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