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夢幻)의 세계에 빠져든 것 같다. 캄캄한 미로를 헤매는 느낌이다. 악몽도 이런 악몽이 있을까.
지지율이 계속 떨어진다. 그런데도 여전히 유체이탈화법으로 일관해왔다. 그 모습이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위태, 위태했다. 그렇지만 ‘설마…’하는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현실은 ‘설마…’보다 더 참혹했다. 대한민국이 현재 맞은 상황이 그렇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불과 한 주 전, 그러니까 2016년 10월26일 이전은 마치 한 시대 이전으로 느껴질 정도다.
연설문을 고치는 데 최순실의 도움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과거 어려울 때 도와준 인연으로 잠시 그랬을 뿐이다. 사과인지 변명인지 구분이 안 간다. 미리 녹화해 발표한 박근혜 대통령의 90초간의 이 사과로 대한민국은 뒤집어졌다.
최순실이 정부정책결정에서 주요 인사, 심지어 대북 문제 등 민감한 외교문제까지 주무른 흔적이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완전히 딴 소리다. 진정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가증스럽다고 할까 할 정도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것은 그 비선실세가 과거 박정희 대통렬 시절부터 말썽을 부린 영생교란 사교(邪交)의 교주 최태민의 딸이란 점이다. 거기다가 한 마디로 인성(人性)이 돼먹지 못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여자가 국정을 농단해왔다는 데서 분노는 폭발한 것이다.
이와 함께 대통령을 향한 언사(아니 차라리 욕설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합할지 모른다)는 날로 험악해져가고 있다. ‘무늬만 대통령’, ‘바지 대통령’도 모자라 ‘최순실 아바타가 박근혜 대통령‘이란 비난도 서슴없이 나온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대통령의 방조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최순실 게이트가 아닌 박근혜 게이트란 진단과 함께 급기야 ‘병신년(丙申年)사태’라는 말이 등장했다. 그러면서 내려지는 진단은 ‘무당(巫堂)통치가 민주공화국 헌정을 유린했다’는 거다.
무엇을 말하나. 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자격 미달도 한참 미달이라는 이야기다. 사실 일부에서지만 오래 전부터 나온 말이다. 우병우 사태에서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과정에서 그 사실이 새삼 확인되고 또 온 천하에 공개됐다고 할까.
박 대통령은 정직과 신뢰를 강조해왔다. 그 정직성에 그런데 완전히 금이 갔다. 최순실게이트와 관련해 세 차례에 걸쳐 해명을 했지만 다 거짓으로 드러났다. 거짓말로 국기문란이란 중대한 위법행위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박 대통령 본인임이 밝혀진 것이다.
공과 사의 구별 능력도 없다. 기밀 관리의 중요성도 정보유출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도 없다. 그리고 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고 온 데 대한 죄의식도 부끄러움도 없다. 그러니까 도덕성과 상황 판단 능력에 상당히 문제가 있다는 것이 새삼 드러난 것이다.
언어사용도 그렇다. 평소에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어렵다. 용어선택이 그렇고 문맥구조가 엉망이다. 게다가 아주 특이한 표현을 한다. 그 한 예가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식이다.
사람은 말을 통해 자신의 사유방식과 존재 가치를 드러낸다. 이 표현은 미 대사관 분석대로 영혼과 육체가 최태민이란 사람에게 완전히 장악됐다가 계속해서 그 후계자, 다시 말해 신기(神氣)가 있는 최순실이란 여자에게 조종된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이제 와서의 분석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대통령으로서의 정통성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것이다. 오연히 불통으로 일관해왔다. 알고 보니 그게 아니라 사실은 끊임없는 소통을 해온 것이다. 최순실이란 신기 있는 여자와만 영적 교감을 해온 것이다. 그것이 최순실게이트의 알파와 오메가이고 그 사실이 드러나면서 박 대통령은 사실상의 ‘탄핵 대통령’이 된 것이다.
한 가지 아이러니는 심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불분명한 이 박 대통령에게 온갖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는 정치적 현실이다. 진상을 철저히 밝혀라, 거국내각을 받아들여라 등등. 그게 그런데 도대체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최순실과 분리됐다. 우병우도, 문고리 3인방도 떠나보냈다. 그리고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에 스스로 유폐돼 있다. 그런 박 대통령이 홀로서기를 통해 비상시국을 헤쳐 나간다. 이건 만화에나 나올 얘기처럼 들린다.
그 진짜 얼굴이 드러난 상황에서 볼 때 박 대통령은 존재, 자체가 불안이다. 일종의 정치적 금치산자라고 할까. 그런 그가 여전히 국정의 최고권부 청와대에 앉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불안요소로 비쳐지는 것이다.
또 다시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그 촛불이 그렇다. 미친 소가 어른거릴 때와는, 또 세월호 참사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 온도도 보통 뜨거운 게 아니다. 이 촛불행렬의 결말은 그러면 무엇일까. 계엄령일까, 아니면 하야(下野)….
멀리서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상황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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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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