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임도 많고 바쁜데, 우리 남편은 친구가 없어요. 다른 집들을 봐도 비슷해요. 여자들은 친구가 많은데 왜 남자들은 친구가 없지요?”어느 모임에서 한 지인이 말했다. “그게 무슨 말? 우리 남편은 너무 모임이 많아서 얼굴 보기도 힘든데… ” 하면 아직 젊었다는 말이다. 부부가 혹은 남편이 은퇴하고 난 60^70대 여성들은 친구 없고 모임 없는 ‘방콕’ 남편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고 하소연을 한다.
70대 후반인 지인은 말을 이었다.
“나이 들수록 남자들은 위축되는 것 같아요. 전에 어울리던 사람들과도 연락을 안 하고 좀처럼 외출도 안 해요. 평생 밖으로만 다녀서 은퇴 후에는 그냥 쉬고 싶어 그러는 걸까요?”은퇴와 함께 행동반경은 ‘집안’, 대인관계는 ‘아내’로 줄어드는 노년의 남성들이 적지 않다. 자주 연락을 하지 않으니 친구들은 점점 줄고, 그만큼 밖에 나갈 일도 없어 자의 반 타의 반 세상으로부터 고립되는 남성들이다. 그럴수록 아내에 대한 의존도만 높아지니 노년의 아내들은 “뒤늦게 이 무슨 시집살이인가” 하며 답답해한다. 친구들 모임에 나가도 남편이 집에 있으니 바늘방석이고, 친구들과 여행을 가고 싶어도 집에 혼자 있을 남편을 생각하면 언감생심이다.
간혹 아내를 따라 여자들 모임에 나오는 남성들도 있다. 젊을 때는 이 또한 별로 어색하지 않다. 여자들 모임에 합류한 남성은 카리스마로 좌중의 대화를 이끌고 밥값도 내며 자리를 즐겁게 하곤 한다. 하지만 노년이 되면 그림은 달라진다. 대개 남성은 옆자리에 우두커니 앉아있어서 보기에도 안쓰럽고 서로가 어색하다.
노년이 되면 남성들은 왜 친구가 없는 걸까? 젊어서는 그 많던 친구들이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노년의 건강과 장수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친구’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노년에 외톨이가 되는 남성 문제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배우자와 자녀 등 가족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노년의 삶의 질을 높이지만 건강하게 장수하는 데는 우정, 친구와의 관계가 최고라고 한다. 지난 2005년 호주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이다.
호주 연구진은 사회 연결망이 노인들의 장수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70세 이상 노인 1,477명을 대상으로 10년 간 조사를 했다. 그 결과 친구가 많은 사람일수록 그 10년 간 사망에 이르지 않을 확률이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려 지내면 기대수명이 22% 연장된다고 연구진은 결론지었다. 자녀나 배우자, 형제 등 가족들과의 관계는 수명 연장에 별 효과가 없었다.
여성의 평균 기대수명이 남성에 비해 긴 것은 돈독한 친구 관계도 한 몫을 한다는 말이 된다.
친구와 관련한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멀리 보면 수렵채취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성들은 산 넘고 물 건너 사냥을 나가고 여성들은 인근 동산에서 열매를 따고 나물을 캐서 먹을거리를 장만했다. 사냥 중 남성들은 오로지 목표물에 집중한다. 열매를 따면서 여성들은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고 동네 아이들을 같이 돌본다. 아득한 그 시절 경험이 유전자 속에 각인되어 남성은 목표 지향적, 여성은 관계 지향적이라고 보통 분석한다.
그래서 친구를 사귈 때도 남성들은 어떤 활동을 중심으로 교분을 쌓는다. 어려서는 스포츠나 게임을 같이 하면서 친구가 되고, 어른이 되면 일을 중심으로 사회 연결망이 형성된다.
일 중심으로 만들어진 관계는 일을 떠나고 나면 와해되기 마련. 수십년 일로 만나던 사람들이 은퇴하고 나면 연락하기도 어색한 사이가 된다. 평생 목표를 향해 달리며 일로만 관계를 맺어온 남성들은 노년에 친구가 없을 수밖에 없다.
반면 여성들은 사람 중심이다. 만나서 그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여성들의 친구 사귀는 법이다. 기쁘고 슬프고 섭섭하고 화나던 온갖 일들을 시시콜콜 털어냄으로써 서로 위로 받고 서로 이해하는 것이 여성들의 우정의 내용이다. 그렇게 수십 년이면 존재와 존재의 교분이 가능하다. 은퇴해 시간이 많아지면 더욱 자주 만나게 된다. 여성들은 바쁠 수밖에 없다.
노년에 남성들은 의식적으로 친구를 사귈 필요가 있다. 가만있으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친목모임이 많은 은퇴 커뮤니티에 사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남가주에서는 실비치와 라구나우즈의 은퇴촌에 한인들이 많이 살면서 같이 합창하고 골프치고 봉사도 하며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따로 약속하지 않아도 정기적으로 만나게 되는 클럽이나 단체에 가입하면 친구 사귀기가 쉽다.
노년에 삶은 단조롭고 가슴은 외롭다. 동무가 필요하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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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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