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불단행(禍不單行) - 지난해 7월,미시건의 소도시에 살던 90세 할머니의 상황이 딱 그랬다. 가까운 사람들이 연이어 떠났다. 6월에 오빠가 떠나고 7월에 남편이 떠났다. 오빠의 가장친한 친구였던 남편과 같이 산 세월이 67년. 습관 같고 분신 같던 남편을보내고 이틀 후, 할머니는 자궁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수술과 방사선치료, 화학치료 … 현대의학의 공식 같은 치료절차들을 설명했다.
숨 돌릴 틈 없이 밀어닥친 사건들끝에서 연로하고 병든 할머니에게 다른 선택은 없어 보였다. 양로원에 들어가 정해진 치료를 받으며 죽을 날을기다리는 것뿐. 별 재미도 특징도 없는 그저 그런 인생 드라마 한편이 막을 내릴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뻔한 드라마에 대단한 반전이 있었다. 90 평생 꿈에나 그리던 신나는 일들이 펼쳐지고, 할머니는 팔자에도 없는‘ 스타’가 되었다. 페이스북 여행기 ‘미스 노마와의 자동차 여행(DrivingMiss Norma)’의 주인공 노마 바우어슈미트 할머니 이야기이다.
‘고령에 암’ -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기어이 살아야겠다’ 하면 암울하기 그지없는 현실, 반면‘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 생각하면 한없이 자유로워질 수도 있는 현실이다. 건강에대한 염려를 접고 생명이 허락하는한 생을 즐기리라 마음먹으면 뻔하던인생 드라마에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챕터가 찾아든다는 사실을 노마 할머니가 보여주었다.
할머니의 인생 드라마의 반전은 두가지 요인 덕분이었다. 말 없고 수줍은 전형적 구세대 주부인 할머니의 내면에 사실은 모험을 즐기는 대담함이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은퇴해 RV 여행을 즐기는 아들 내외가 있었다는사실이다. 저널리스트와 부동산 중개업자로 일한 아들과 교육 컨설턴트였던 며느리는 은퇴 후 RV를 거처 삼아여행을 다니며 살고 있었다.“ 함께 하시겠느냐?”는 아들 부부의 제안에 할머니는 주저 없이 동의했다.
아들 부부는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큰 RV를 새로 장만하고, SUV를 뒤에 끌고 미 전국 방방곡곡 여행길에나섰다. 지난해 8월24일이었다. 1년 동안 30여개 주 1만3,000마일을 여행하는 대장정이 시작되었을 당시 아들 내외는 바로 옆 위스콘신까지인들 갈 수있을까 싶었다. 그만큼 할머니는 심신이 쇠락해 있었다.
그런데 여행이 계속되면서 놀라운일이 벌어졌다. 할머니에게 생기가 돌고 건강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말을 타보고, 열기구를 타보고,페디큐어를 해보고, 처음 보는 음식들을 먹어보면서 할머니는 새싹처럼 피어올랐다. 며느리가 친지들에게 근황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페북 여행기‘드라이빙 미스 노마’는 수백만명이찾아 읽는 인기 사이트가 되었다.
원없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본 할머니는 워싱턴주에 도착한 후 건강이 나빠져 지난달 30일 91세로 세상을 떠났다“. 아주 마지막 순간까지, 몸 안의 마지막 생명의 기운까지 다 쓰고 가장 기품있게 떠났다”고 며느리는 말했다.
치료와 건강, 행복한 삶이 항상 같이가지는 않는다. 특히 고령에는 건강회복과 치료에 너무 치중하다보면 삶다운삶을 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노마할머니가 남들 하듯 암 치료 받으며 양로원에서 살았다면 수명은 연장되었을지 몰라도 절대로 생동감 넘치는 경험들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현대의학의 과도한 치료가 오히려 삶의 질을 떨어트린다는 주장은 의료계에서도 나오고 있다. 다트머스 의과대학의 길버트 웰치 교수는 불필요한 치료의 부작용으로 암을 예로 든다. 의사들이 암 치료를 위해 가능한 모든 첨단의술을 동원하는 것은 암을‘ 토끼’로 보기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암 즉‘ 토끼’가울타리 밖으로 도망치기 전에 모조리잡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암이 같지는 않다. 발견했을 때는 이미 날아가 버린 ‘새’ 같은암이 있는가 하면 그 자리에서 꿈쩍 않고 있는 ‘거북이’ 같은 암이 있다는 것이다‘. 새’는 가장 공격적인 암 ,조기진단을 해도 사망률이 높다. 반면 그냥 둬도자라지도 않고 몸에 별로 해롭지도 않은‘ 거북이’를 굳이 찾아내 수술하고 치료하느라 환자들의 삶이 망가지는 경우가 많다고 그는 말한다. 고령의 암이 많은 경우‘ 거북이’이다.
노마 할머니의 팬들 중에는 암환자와 가족들이 많았다. 그들이 할머니의 여행을 지켜보면서 위로를 받고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유한한 존재. 인생이라는 드라마의 마지막 장을 필히 맞게 된다. 마지막 장을 용기 있게 맞았으면 한다. 그래서80에도 90에도 “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신영복 ‘ 처음처럼’ )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생명의 마지막 한줌까지 충만하게 살아내기를 바란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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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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