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초창기에 아직 국력이 약하였을 때인 1823년에 제5대 James Monroe 대통령이 Monroe 주의를 선포하여 “우리가 느그동네 (유럽) 일에 상관하지 않을 겄인께로 느그들도 우리골목 (북남미대륙) 일에 간섭하지 말드라고!” 라고 엄포를 놓았었다. 그러나 이와같은 미국의 “엄포”는 작은 고양이가 닥아오는 큰 개를 보고 방어 본능으로 몸을 먼저 움추리며 “야옹” 하며 공격자세를 취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유럽의 강대국들이 Monroe Doctrine을 존중했던것은 아니었지만 미국은 외교절충에서 이 몬로주의가 마치 국제법이나 되는 것처럼 자주 내세우곤 하였었다.
미국은 몬로주의로 유럽의 간섭을 경계한 것이지만 미국이 북남미에 있는 여러 나라 들의 내정에 상관하지 않겠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었었다. 북남미 국가들의 문제들에는 미국은 마치 “골목대장”처럼 일일히 간섭하고 꺼떡하면 무력을 동원하여 경찰국가같은 역활을 서슴치 않아 왔었다.
미국은 북남미 국가들과의 무역을 미국에게 더 용이하게 하고 미국의 지배를 제도화하기 위해서 명목상 으로는 “북남미 국가들의 상호존중과 동등한 관계개선을 위해서” 1889년에 Washington 에 북남미 국가들이 모여서 International Bureau of American Republics 라는 국제기구를 창설하였는데 지금은 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 (OAS) 라고 불리운다. 미국이 북남미의 여러나라들에 어떻게 골목대장 노릇을 했었던지 몇가지 예를 들어서 살펴 보기로 하자.
1891년 10월에 미해군의 순양함이 Chile 의 Valparaiso 항을 방문한적이 있었다. 미국 해군수병들이 시내관광을 나갔다가 시민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하여 두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을 당한적이 있었다. Chile 정부는 미해군 수병들이 잘못 행동 했던탓에 일어난 사고 이었다고 주장하며 미국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았었다. Harrison 대통령이 1892년 1월에 미국 국회에 대 Chile 선전포고 결의를 요청하는듯한 강경한 특별 메시지를 보내었고 곧 뒤따라 태평양쪽에 미해군 순양함 8척에게 동원준비명령을 내렸다는 것이 알려지자 Chile 정부는 즉각 사고에 대해서 미국정부에게 사과하고 사상된 수병들에 대해서 손해배상을 하겠다고 하였었다. 골목대장의 위엄을 조용한 위협만으로써 세웠던 것이다.
한편 Hawaii 에 영구 정착하기 시작한 미국의 선교사들과 농장주들은 점차 세력을 잡아갔고 Hawaii 가 미국의 영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져 갔었다. Hawaii 왕국의 옥좌에 오빠를 계승하여 1891년에 올라간 Liliuokalani 여왕은 그녀의 오빠가 사실상 미국의 새정착자들에게 뺐겨버린 통치권을 되찾고 왕권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1893년 1월에 미국의 정착자들은 Harrison 정부의 종용을 받고 순양함을 타고온 미국 해병대의 무력으로 Hawaii 왕국을 전복하고 친미 공화정부를 수립하였다.
새 친미정부는 미국과의 합병조약안을 작성하여 미국정부에 보냈었고 Harrison 대통령은 조약안을 비준을 위해 국회에 보냈었다. 그러나 상원의 민주당의원들이 Harrison 의 임기가 끝날때 까지 조약안을 깔아 뭉개어 버렸다. 재선으로 다시 백악관에 돌아온 Cleveland 대통령은 무모한 영토확장을 반대하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대통령에 취임한후 1893년에 특사를 Hawaii 에 보내서 진상을 조사하도록 하였는데 특사는 주 Hawaii 왕국 미국공사가 주동이 되어 혁명을 일으키게 하였었다고 보고하였다.
Cleveland 는 합병조약안을 철회하고 Hawaii 왕정을 복구해 주려고 노력했었다. 어정쩡한 상태로 있던 Hawaii 는 미국과 Spain 의 전쟁이 미국의 승리로 끝난후 미국 국회양원의 결의로 1898년 7월에 미국에 합병되었었고 1959년에야 주로 승격되었다. 이때쯤에 미국내에서는 미국도 유럽 열강들의 국제적인 풍조에 따라 무력을 써서라도 영토를 확장해 식민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과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해서는 원지의 해외 영토들도 주들로 승격시켜야 한다는 상반된 주장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에 이르러서 Spain 의 식민폭정에서 독립되기 시작한 군소한 Latin American국가들의 골목대장 노릇이 그렇게 간단한 일만은 아니었었다. 골목내에서의 질서는 물론 골목대장이 잡도록 되어 있었지만 골목바깥의 어른들이 골목안의 아이들을 건드리면 골목대장은 골목안의 아이들을 보호해 줘야할 책임도 있었던 까닭이다. 현재의 남미 Guyana 를 식민지로 가지고 있었던 영국은 Venezuela 와의 국경에 있는 2만3천 평방 마일에 지역을 Guyana 에 속한다고 주장해 왔었다. Venezuela 는 미국이 이 위협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고 요구하였고 미국의 Cleveland 대통령은 미국의 Monroe Doctrine 을 영국이 도전하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미국은 영국에게 타협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것을 권고하였 으나 영국은 미국의 요청을 거부하였다.
미국은 기존의 몬로주의를 더 확대 해석해서 “남미에 ‘사실상의 주권’ 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이 영토분쟁을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강력하게 경고 하였으나 영국수상은 몬로주의는 국제법이 아니다 라고 응수하며 타협권고를 계속 거부하였다. Cleveland 대통령은 국회에 “국경분쟁위원회” 의 설립을 위해서 10만불을 요청하고 무력을 써서라도 영국의 횡포를 저지하겠다고 선언하자 미국국회가 동의하였다. 마침 그때 South Africa 를 식민지로 획득하기 위해 전쟁을 하고 있던 영국은 양 대륙에서 동시에 전쟁을 하기가 힘들것임을 알고 타협할것에 동의하였다. 1899년에 Paris 의 국제 중재위원회는 영국의 주장을 많이 들어주기는 하였으나 50여년이나 지속되어왔던 이 분쟁을 중재해 주었다. 이 사건은 향후 미국이 고립에서 벗어나 국제문제 해결에 더욱 공격적이 될것임을 보여준 선례가 되었다.
1900년에 이르러서는 미국은 세계에서 세번째로 강대한 해군병력을 가진 나라가 되었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가? 해군병력의 급속한 증대는 미국내의 경기불황, 농산업문제, 노동분규, 통화문제의 해결이나 populism (장기적인 국익 보다는 단기적인 인기획득을 위한 정략정치)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해군의 급성장은 한 중견 해군장교의 저서가 국가정책 수립에 큰 영향을 준 까닭이었다.
미국의 해군 대학원격인 Naval War College 를 창설하는데 공로가 큰 역사학자 Alfred Thayer Mahan 해군대령은 1890년에 “The Influence of Sea Power Upon History” 이란 저서에서 고대와 근대의 해군력이 역사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뒤 “현대에 강력한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미국은 전세계에 수출을 하여야 하며 전세계의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서 미국은 강력한 해군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는 극히 “상식적인” 주장을 한후 미국은 강력한 해군, Panama 운하건설, Caribbean 해역의 지배, Hawaii 와 Samoa 의 확보등을 하여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 이지만 1890년에는 “참신한” 제안이었다. 그리고 이책은 많은 독자들 중에서도 특히 장차 미국의 역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기는 두 젊은 정치가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첫번째로 Massachusetts 주의 연방상원의원 Henry Cabot Lodge 는 최고의 부자이자 명문가의 아들로써 Harvard 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으로 역사를 잘 알고 잘 쓸줄도 아는 사람이었으나 능숙한 정치인은 아니었었다. 그는 1890년대에 끈질기게 더 강한 해군, Hawaii 합병, Panama 운하건설, 운하입구의 확보를 위한 화란령 West Indies 의 구입을 주장하였고 Greenland 와 Cuba 를 미국의 통치 아래에 두어야 하며 미국이
Caribbean 해역을 지배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두번째로 Lodge 와 절친한 사이인 New York 출신의 Theodore Roosevelt 가 있었다. 그는 아직 30대의 “청년”으로서 McKinley 대통령의 해군차관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아주 괄괄한 성격으로 “호전적”인 성격에다가 미국은 강력한 국가가 되어야 하며 필요할때 에는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Lodge 와 Roosevelt 는 Mahan 의 제안을 신봉하는 사람들로써 “팽창주의자”들로 구분될수 있는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은 미국의 “제국주의”는 “선행”이어서 군소국가들에게 도움을 주며 미국에게도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
조태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