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일까. 그렇겠지. 그 태도가 그런데 그렇다. 여유가 지나쳐 태연자약하다고 할까. 성당에서 혼자 기도하던 여인을 흉기로 찔러 죽였다. 그러고도 일말의 회오의 감정도 보이지 않는다. 그 살인 혐의자, 중국관광객의 현장검증 모습이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어쩌다가 있는 단순한 살인사건일 거야. 그런데 순간 새삼 8년 전 서울 한 복판에서 일어났던 일이 오버랩 된다.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을 맞아 중국의 인권탄압을 비난하는 시위가 있었다. 그러자 오성홍기를 머리에 두른 중국 유학생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대한민국 시민들을, 심지어 경찰관까지 마구 폭행한 그 사건 말이다.
식당 여주인이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해 중상을 입었다. 그러더니 결국 살인사건이…. 뭐 그렇지만 작은 일일 거야. 애써 그 의미를 축소시킨다. 그런데 어딘가 개운치 않다.
6.25를 주제로 한 장기시리즈 ‘38선’이 중국 국영매체를 통해 방영되고 있다. 38회로 구성된 드라마 ‘38선’은 당시 압록강변에 살던 어민 이창순(李長順)과 장진왕(張金旺)이 미국 전투기 폭격에 자극받아 인민지원군에 입대해 결사적으로 전투를 치르는 것이 주요 스토리이다. 미국을 철저한 악당으로 묘사함으로써 중국이 참전한 6.25를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하고 북한을 지원)의 의로운 전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중추절을 맞아 6.25를 소재로 한 또 다른 영화가 중국에서 개봉됐다. ‘나의 전쟁(我的戰爭)’이 다. 역시 주제는 ‘항미원조’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도 메시지지만 더 섬뜩한 것은 영화 홍보영상이다.
중국노인들이 단체로 서울 관광에 나섰다. 한국여성 가이드가 서울을 소개하려들자 우리는 ‘한성(漢城)에 와봤어’라고 말한다. 여권이 아닌 오성홍기를 들고 왔었다는 거다.
다른 말이 아니다. 6.25에 참전해 서울까지 진격했었다는 거다. 그러면서 중국노인들은 영화 ‘나의 전쟁’을 선전하는 구호를 일제히 외친다. ‘나의 전쟁(我的戰爭)! 항미원조, 보가위국((抗美援朝, 保家衛國)!’
나라를 지키기 위해 미국과 싸우고 북한을 지원한다는 의미로 중국공산당이 6.25참전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내걸었던 구호다. 중공군 침공으로 참담한 피해를 대한민국. 그 수도에서 그 구호를 외쳐대고 있는 것이다.
안하무인 정도가 아니다. 한국인의 입장은 전혀 고려치 않은 몰상식에, 비(非)양심의 극치다. 이를 도대체 어떻게 보아야 하나.
사방을 향해 눈을 흘겨댄다. 그리고 근육자랑이다. 그러다보니 우군은 하나도 없다. 온통 적군뿐이다. 한 때는 노회한 전략을 구사하는 중국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 중국이 시진핑 시대에 들어와서는 온통 죄충우돌(左衝右突)이다. 전략적 사고 같은 것은 찾을 길이 없다. 그 원인은 어디서 찾아지는 것일까.
‘힘의 균형이 중국으로 기울었다’-. 적지 않은 베이징당국자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결과가 바로 ‘힘의 외교추구’라는 거다. 비뚤어진 역사관에, 중화 애국주의 팽배도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중국공산당은 애국주의, 중화 내셔널리즘을 통치 이데올로기로 내걸었다. 그 애국주의는 이제 정부통솔도 잘 안 될 정도의 괴물이 됐다. 곳곳에서 마찰만 일으키는 중국외교는 바로 그 부산물이라는 것.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그 보다는 중국의 내부정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진단이다. 공산당 1당 독재체제에서 시진핑 1인 독재체제로 전이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모든 주요 결정은 최고위층의 독단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이의제기란 있을 수 없다. 정치적으로 극히 위험하니까. 이 분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경론자가 될 수밖에 없다.
시진핑이 1인 체제 강화를 위해 내건 것은 중국몽(中國夢)에, 마오쩌둥 숭배다. 그 마오쩌둥 신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6.25다. 아편전쟁 이후 ‘한 세기의 치욕’을 마오쩌둥은 6.25, 다시 말해 ‘항미원조’전쟁을 승리함으로써 끝냈다. 그 후계자는 바로 시진핑이라는 선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드라마 ‘38선’이 국영매체를 통해 방영되고 또 영화 ‘나의 전쟁’이 개봉됐다. 이와 함께 교묘히 펼쳐지고 있는 것이 중국식 애국주의 부추김에, ‘미국도 안중에 없는 강력한 지도자 시진핑’의 이미지 부각이다.
이는 동시에 한 가지 시그널을 분명히 내비치고 있다. “중국은 미국보다 북한과 더 가깝다.” 중국 해외정책의 비공식 대변인이라고 할까. 그런 인민대학의 시인홍교수가 평양의 5차 핵실험과 관련해 한 말이다.
유엔제재에 동참할 의사가 없다. 그리고 북한은 혈맹으로 그 ‘핵무장 북한’은 미국과의 대립상황에서 중국의 전략적 자산임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작은 일일까. 하루가 멀다고 벌어지는 중국관광객의 폭행에, 살인사건…. 그렇겠지. 그런데 여전히 어딘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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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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