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ce Kim
풍선을 사러 ‘달러 마트’ 라는 가게로 들어섰다. 모든 물건들이 1달러를 넘기지 않는 저렴한 가게이다. 나는 오래도록 바람이 빠지지 않는 예쁜 헬리움 풍선을 사려면 이곳에 온다. 내일이 어머니날이다.
올해는 엄마에게 작은 기쁨이라도 주려는 생각이다. 아이들을 위해 풍선을 사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엄마에게 줄 풍선을 사기는 처음이기 때문일까. 어린아이처럼 발걸음이 가볍다. 오늘은 아주 많은 풍선으로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다.
어머니날 대목을 맞아 매장 한 코너에는 미리 바람을 넣어 준비해 놓은 풍선들이 곳곳에서 머리를 흔들고 있다. 나는 길게 줄을 늘어뜨린 풍선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 동네는 남미계 손님이 많은지 스페니쉬로 ‘떼 끼에로 무쵸! 펠리스 디아 마마’ 라거나 ‘펠리스 디아 데 라스 마드레’ 라고 쓰여 진 것이 많다. 천장까지 떠올라 있는 수많은 풍선들 중에서 맘에 드는 다섯 개를 골랐다.
계산을 하고 나니 “풍선숫자 만큼 추를 가져가세요.”하며 점원이 풍선추가 담긴 상자를 내민다. 비록 1불짜리지만 결코 싸구려 같아 보이지 않는 풍선과는 달리 추는 가볍고 허름한 생김이다. 하지만 몇 개 골라 챙겨 넣었다.
가게 문을 열고 나오는데 바람이 후루룩 분다. 행여 놓칠까 풍선을 꼭 잡아 쥐니 제법 무게가 느껴진다. 뒤쪽 차문을 열고 풍선들을 살살 밀어 넣었다. 백미러로 뒷자리를 본다. 가득 찬 풍선들로 차창 뒤 시야가 모두 가려져 버렸다. 바람에 요동을 치던 녀석들이 비좁은 공간에 얌전하게 숨죽여 앉아 있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왔다. 풍선을 받아 쥐고 환하게 웃을 엄마 얼굴도 상상한다.
며칠 전 엄마와 통화를 했다. 나는 얼마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줌바 라는 운동이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는지 설명하느라 어린아이처럼 들떠서 큰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엄마가 너무 조용했다. 전화가 끊겼나? 하는데 엄마의 젖은 음성이 들려왔다. “너.. 이렇게 씩씩하게 살아줘서... 너무 고마워...”한다. 난 얼떨결에 “그럼! 엄마 걱정 마, 나 진짜 괜찮아. 나 요즘 행복해” 했다. 하지만 더 말을 하면 서로 울어 버릴 것 같아 서둘러 전화를 끊어 버렸다.
나와 엄마는 아주 많이 닮았다. 얼굴뿐만 아니라 예민한 성격까지 비슷하다. 엄마와 딸의 관계보다는 오히려 나이가 비슷한 친구 같다. 잘 지내다가도 싸우고 토라져서 다시는 안볼 것처럼 하다 또 이내 서로를 찾는다. 하지만 엄마는 언제나 나한테는 뽀빠이의 시금치이다.
힘이 빠져 주저앉을 때 시금치 한통만 먹으면 두 팔에 알통이 불끈 솟아나는 뽀빠이. ‘제 것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사는 헛똑똑이년 ...’ 하면서 기꺼이 시금치가 되어 나에게 힘을 주시는 엄마. 그런 엄마에게 나는 정말 큰 아픔을 주었다.
작년 봄에 나는 이 십 여년의 결혼 생활을 청산해야했다. 다 큰 딸아이 하나를 데리고 나는 무작정 엄마 곁으로 돌아왔다.
낯선 북가주로 떠나던 나의 무모함을 안쓰러워하면서도 축복하며 배웅했던 엄마. 이유조차 가늠 안 되는 내 삶의 파선.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충돌하는 감정 때문에 숨 쉬기조차 힘들 때, 오랜 세월 안으로 깊숙이 박혀있던 상처들이 모두 가시로 돋아 나왔다.
기진해 늘어져 있는 딸을 살리려고 가까이 다가오던 엄마는 그때마다 나의 가시에 찔려 고통을 당해야했다. 붙잡고 일어서려고 내가 다가가기도하고, 안타까워서 엄마가 나를 끌어안기도 했다. 내가 주체하지 못하고 흔들릴 때마다 엄마는 나를 감싸주었고 내 가시에 또 찔렸다.
창문을 열고 바깥바람을 맞고 싶은데 뒷자리의 풍선에 신경이 쓰인다. 창문을 내리는 대신 에어콘을 튼다. 풍선을 생각해서인지 문득 추가 떠오른다. 풍선 하나에 추를 하나씩 묶으면 정말 날아가지 않을 만큼의 무게가 있는 걸까?추, 풍선에 딸려 값없이 주는 것. 갑자기 내 마음에도 그런 추가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내가 산 풍선 수 보다 더 많은 내안의 상념들. 어찌해 볼 수조차 없는 상황 속에서 이리저리 휘둘려 엉켜 버리는 내 자아. 그런 내안에 묵직한 추 하나가 거저 생겨서 중심을 잡아 준다면 풍선처럼 흔들리는 내 삶도 제자리로 올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야무지게 살아내지 못한 딸로 인해 가슴에 찬바람이 불어 댈 엄마에게도 그런 추 하나를 달아 주고 싶다.
풍선을 건네받을 엄마의 환한 얼굴을 그린다. 오월의 낮 바람이 상쾌하다.
<입상 소감>
어릴 적 나는 일기 쓰기를 좋아했고, 빛 고운 종이편지로 내 그리움을 전하면서 행복해했다. 내 눈으로, 코로 , 손으로 그리고 내 가슴 속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생각들을 맛나고 보기 좋게 버무려 정성 가득한 글 상을 차리고 싶다는 욕심도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조물조물 무친 들 냄새 나는 글 한 접시, 구름이랑 하늘빛 닮은 청아하고 소망진 글 한 보시기, 눈물 한 방울 찔끔 나게 속이 후련해지는 뜨겁고 얼큰한 글 한 사발, 그리고 토닥토닥 위로가 되어 주는 달달하고 따끈한 한 잔의 글을 차려 내고 싶어진 것이다. 내 정성을 담아 건네준 걸 맛나게 먹어 주는 그 누군가를 바라보면 내 맘을 알아 준 것 같아 덩달아 기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내 마음에 건네진 재료들은 늘 신선하고 정갈한듯한데 정작 차려 내 놓은 글맛은 왜 그리 달라져 버리는지. 적당한 요리 시간과 재료 맛을 살려 주는 양념을 쓰는 일이 참 쉽지가 않다. 분명히 이 맛이 아닌걸 알면서도 가슴에 담았던 제 본래 맛을 살려 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자꾸 무거워진다. 막상 내 글을 밖에 내어 놓기는 겁이 난다. 이제 한 젓가락씩 맛보면 대번에 잘못 넣어진 양념이랑 지나치거나 짧았던 조리 시간 때문에 감칠맛이 부족한 걸 들켜 버릴 테니까. 하지만 멋진 글 상을 차려 내는 걸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글 요리사가 되게 독려해주신 선생님, 선생님들의 응원이 어느새 귀한 보약으로, 묵직한 추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울엄마가 주는 시금치처럼,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나를 껴안아 준 친구들이랑 식구들 그리고 글마루 문학회 문우들의 그 사랑 때문에 이제는 활짝 웃을 줄 아는 씩씩한 뽀빠이가 되가나 보다.
<
Grac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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