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시골 교회에서는 부흥회만 지나고 나면 교회 뒷마당에 꼬꼬댁 닭들이 우는 소리가 요란했다. 부흥사로 오는 목사들마다 “회개하라, 너희들의 죄를 용서받으려면 회개해야 한다”고 하니 이 설교를 들은 시골농부들이 집에 가서 회개하려고 보니, 지난날 철없던 젊은 시절 이웃집 닭 한 마리 훔쳐다 친구들과 닭서리 해먹은 것 죄스러워 회개하면서 교회로 키우는 닭들을 가져오는 후유증 때문이었다.
시골출신들에겐 새롭지 않은 이 이야기가 새롭게 필자에게 다가온 계기가 있다. 젊은 조교수시절 뉴욕대학에 봉직할 때 살던 곳 가까운 교회에 그 일생이 감동적인 목사 한분이 초대를 받아와 설교를 하면서 ‘용서’와 그리스도 정신에 대해서 한 얘기 때문에 한동안 몹시 독실(?)한 신앙심이 생겼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별로 종교와 가깝지 않은 필자의 마음 한복판을 찌른 그 목사 분은 원래 일본인인데 일제시대에 제국주의 일본의 만행에 기독교인으로서 너무나 가책을 느껴 자기 한 몸이라도 속죄하려는 마음으로 우선 그 시대에 한국으로 국적을 바꾸고 평생을 한국과 한국인들을 위하며 기독교정신에 철저하려 애쓰다 이제는 노년으로 돌아가신 분이다.
지금 분규 많은 한인교회들의 문제 중 하나가 신학공부만 하고 목회를 하는 목사들의 인생이 교인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란 지적을 생각하면 그분의 인생은 목회자로서 모범이 되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그분이 얘기한 ‘용서’의 그리스도적 해석은 그의 일생처럼 화끈하고 거침없는 사랑, 그것이었다. 그분의 해석은 이랬다 : 그리스도는 평생 땅 파서 농사짓고 살아가는 농부가 먹고 싶어 이웃의 닭 한 마리 젊은 시절 훔쳐 먹은 걸 가지고 “네 이놈, 네 죄를 회개하렷다”라고 호령할 그런 쩨쩨한 분이 아니란 얘기였다. “그래 그 닭 먹고 허기가 좀 가시더냐, 닭고기가 맛있더냐”고 자애롭게 미소로 농부를 대할 분이란 것이다.
세상의 많은 싸움, 종교가 원인이 된 전쟁, 이 모든 것들이 처음 시작은 조그만 행동에서의 오해와 말에 대한 이해의 차이와 성서구절 해석에서의 문제로 온 것을 생각하면, 이런 목사 분들이 많다면 이세상이 훨씬 평화롭고 조용한 살기 좋은 곳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얼마 전 영화로도 나왔던 ‘Unbroken’이란 전기가 있다. 미국 올림픽 육상선수가 태평양전이 발발하면서 전투기 조종사로 지원해서 활약하다가 일본군 포로가 되고 일본의 패망으로 석방되기까지 잔악한 포로수용소의 생활을 담은 실화다. 미국의 영웅 루이 잠페리니가 수용소에서 자신을 너무나도 잔혹하게 다루었던 와다나베란 간수를 용서하기까지의 역정을 좋은 문장으로 훌륭히 그려낸 작가 로라 힐렌브랜드는 주인공과 많은 석방 포로들의 인터뷰 및 분석을 통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한 인간이 억울한 고초를 당하고 나면 그 영혼의 가치와 힘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처음에 오는 반응은 분노이다. 회복과정 초기엔 정당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분노는 비탄에 빠져 살아가는 피해자를 그 원인제공 가해자에게 사슬로 묶어놓은 것 같은 효과를 가져 온다는 것이다. 감정도 행동도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가해자에 대한 상대적 반응으로 모든 게 이루어져 버리는 피해자가 되어서, 불타는 복수심이 피해자 자신을 계속 상하게 만든다는 결론이다.
힘을 가진 가해자는 피해자에게서 맨 먼저 인간적 존엄성을 빼앗는다고 한다. 한없는 무력감과 자존감의 상실. 자기를 해칠 것 같은 주변 세상에 대한 두려움. 그 후유증으로 오는 악몽, 무서운 환상, 술을 찾는 반응, 그리고 계속되는 불안 등이 다친 영혼이 정상을 찾아가기 전에 경험하는 증상들이란 것이다. 피해자 자신이 먼저 자존감을 회복한 후에라야 가해자에 대한 용서의 과정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솝의 우화에서도 세찬 바람보다 따스한 햇볕이 사람의 옷을 벗게 만들었듯이, 태양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무한한 힘을 가졌다. 옷을 벗었던 사람이 나중에 몽둥이로 태양을 갈길 수 있다면 그때는 모든 얘기가 달라진다. 용서란 것도 자신에 대한 확신과 힘이 있은 후에 그 과정이 시작된다는 교훈이다. 요즈음 뉴스들을 접하다 보면 이번 가을에는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이 ‘용서’란 화두가 자주 나올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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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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