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시인)>
해마다 미주 한국일보로부터 보내져 오는 시 원고를 읽는 것은 올해도 특별한 감동을 줍니다.
그 먼 나라, 영어를 생활어로 사용하는 그 나라에서 살면서도 이렇게 정겹고도 결 고운 한국어로 시를 쓰는 분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감동하고 이런 뜻 깊은 행사를 매년 잊지 않고 마련하시는 신문사의 속내 깊은 배려에 감사를 가지는 것입니다.
시작품을 쓰게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고 인간의 삶, 그 바탕입니다. 그러므로 심사자 두 사람은 시의 기교의 드높음보다는 시의 진정성에 방점을 두고 보았으며 그러므로 쉽게 합의에 이를 수있었습니다. 이 또한 즐겁고도 감사한 노릇입니다.
하여 우리는 다섯 분의 시인을 여기에 소개합니다. 언제나 하는 말씀이지만 여기서 순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에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도 있는 것처럼 오늘의 순서에 따라 앞으로의 시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의 이것은 그저 먼 길을 떠나는 기차표 한 장에 불과합니다.
어디 가서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이며 어떤 것을 얻어 돌아올 것인지는 오로지 그 사람의 노력 여하와 그 사람의 능력 여하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석으로 뽑힌「 애벌레의 어느 하루」(지경민)는 우리 다 같이의 자화상만 같아 가슴이 아린 바가 있었으며, 2석으로 뽑힌 「나팔꽃에대한 보고서」(조양비)는 언어감각이 경쾌하여 신선한 느낌이었으며,3석의「여름이 남기고 간 씨앗」(박혜자)은 단순하지 않은 인생의 자성이 돋보였으며, 4석의「 아침 창가에서」(김혜린)는 사물을 들여다보는 눈매가 선연했으며, 4석의 「기울어지는 바다」(박장복)는 현장 감각이 뛰어난 작품이었습니다.
다같이 앞날의 정진을 빌면서 시인으로서 대성하여 좋은 인생을완성하시기 바랍니다.
<한혜영(시인)>
올해는 응모한 원고도 많지 않았고 전체적인 작품 수준도 조금 낮아서 실망스러웠다. 책을 읽는 대신에 모바일 게임과 웹서핑을 즐기는 것이 요즘 사람들이라고 할 때, SNS의 영향이 시적 감성마저 고갈되게 하는 것이 아닌지 염려가 된다.
그런 중에서도 논할 만하다고 여겨지는 입상작들을 고를 수 있었음은 다행이다. 심사방법을 잠깐 언급하자면, 일단은 양쪽 심사위원모두에게 뽑혀야 본선에서 논의 대상이 된다.
올해도 같은 방식이었고, 그렇게 일차를 통과한 작품 중에서 제일먼저 지경민 님의 ‘애벌레의 어느 하루’를 당선작으로 결정을 했다.
오이벌레를 바라보는 따뜻하면서도 연민 가득한 화자의 시선이 심사위원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길 잃은 오이벌레의 절망과자신을 오버랩시키는 것이 무리가 없으면서도 잔잔하게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가작으로는 조양비 님의 ‘나팔꽃에 대한 보고서’와 박혜자 님의‘여름이 남기고 간 씨앗’에게로 돌아갔다. 나팔꽃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그것의 생리를 잘 이용한 솜씨가 돋보이지만, 여기에 인생을 고뇌하는 사유가 보태졌더라면 한층 무게감 있는 시가 되었을 것 같다.
박혜자 님의‘ 여름이 남기고 간 씨앗’은 상처 주었던 말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을이 오기 전에 나팔꽃 넝쿨 정리를 하고 씨앗의 무덤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지만, 여전한 생명력을 가진 씨앗이기에 두렵다. 여기에서의 가을을 인생의 계절로 본다면‘ 상처를 주었던 말’이란 분명히 무서운 씨앗일 수밖에 없다.
장려상으로는 김해린 님의 ‘아침 창가에서’와 박장복 님의 ‘기울어진 바다’로 선정했다.
김해린의 시는 무엇보다 밝아서 마음에 든다. 어둠이 걷히고 햇살이 축복처럼 쏟아지는 아침 시간의 분위기를 잘 살린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가 되고 있다. 박장복 님은“ 메고 다니는/퍼스널 컴퓨터는/먹이 사냥을 위한/새로운 활이며 기다란 창”이라는 표현만으로 주제를잘 살렸고, 출장을 자주 다니는 사람이 느꼈을 외로움이 잘 드러난다.
하지만 운문의 특장인 절제의 미학을 생각하면서 시를 쓰면 좋겠다. 외국에 살면서 모국어로 시를 쓴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하다.
그러기에 맞춤법이 더러 틀리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이번 기회에 알려주고 싶다.
1988년 개정 맞춤법에 의하여 성이 한 글자인 경우 성과 이름을붙인다는 사실. 단지‘ 남궁’‘ 독고’처럼 성이 두 글자여서 이름과 구분 지을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는 경우엔 띄어 써도 무방하다. 이상으로 입상자 전원에게 축하를 보내며 그 밖의 응모하신 분들께도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
나태주(시인), 한혜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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