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먹구름’ 이던 뉴스의 날씨가 ‘활짝 개임’으로 바뀌었다. 미국도 한국도 답답한 뉴스 일색이었다. 미국에서는 대선후보 간 공방, 한국에서는 사드배치를 둘러싼 공방이 두터운 먹구름으로 국민들의 불쾌지수를 마구 올리고 있었다.
어느 쪽도 대통령으로 선뜻 내키지 않는 힐러리와 트럼프, 제발 그만 봤으면 싶은 한국의 정치권 인사들 … 매스컴의 전면을 차지하는 그 얼굴들을 밀쳐내고 싱싱한 얼굴들이 등장했다. 장마철 햇살처럼 반가운 싱그러운 얼굴들이다. 리우올림픽이 가슴 벅찬 뉴스들을 쏟아내고 있다.
감동은 예상을 뒤엎을 때 솟아난다. 한국 펜싱팀의 막내 박상영(21)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승리를 거두었다. 펜싱 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종목, 에페 개인전에서 한국사상 첫 금메달을 땄다. 서구 선수들의 독무대였던 에페에서 한국선수의 금메달은 ‘기적!’이라고 전문가들은 흥분한다.
올림픽 출전만으로도 가슴 벅차했던 새내기 선수는 100% 긍정의 정신으로 감동의 파장을 몇 갑절 더 키웠다. 펜싱장비를 갖추기에는 너무 어려운 가정형편, 펜싱선수에게는 치명적인 무릎 부상 등 그에게는 역경을 딛고 정상에 오른 역전의 드라마가 있었다.
‘금수저, 은수저’로 냉소적인 한국사회에서 그는 한순간에 ‘할 수 있다’의 본보기로 떠올랐다.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처럼, 자신과는 비교가 안 되는 백전노장의 상대선수에게 밀리고 밀리면서도 그는 “나는 할 수 있어…”를 되뇌었다. 그 모습이 SNS에서 돌고 또 돌았다.
“메달은 생각도 못했다. 세계인의 축제이니 즐기자, 인생 살면서 언제 또 올림픽에 가보겠는가 라는 생각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욕심 없이 즐기는 자세가 그를 200% 날아오르게 한 것 같다.
감동은 염원이 간절할 때 따라온다. 이번에는 올림픽 기분이 별로 안난다 싶을 때 한인사회가 들썩들썩해졌다. 지난 10일 정오 한국 대 멕시코 축구경기 때였다. 한인타운 식당마다, 샤핑센터마다, 직장 사무실마다 2002년 월드컵 단체응원 열기가 되살아났다. 경기가 다 끝날 무렵 아슬아슬하게 결승골이 터지고, 8강 진출이 확정되는 순간 타운 전역에서는 일제히 환호성이 터졌다. 그렇게 마음껏 소리를 질러 본 게 언제인가. 가슴마다 쌓였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간 듯했다.
감동은 기대를 넘는 완벽함 앞에서 터져 나온다. 평생 하나도 ‘기적’인 올림픽 금메달을 22개나 수집한 마이클 펠프스(31)의 수영실력은 이제 감동을 넘어 감탄이다. 11일 개인혼영 200m 결승에서 우승함으로써 그는 개인전 13관왕으로 올림픽 역사를 다시 썼다.
인류 역사상 올림픽 개인 금메달 최다 보유자는 고대 그리스의 육상선수 레오니다스였다. 그는 36살이던 기원전 152년까지 4번의 올림픽에 출전해 총 12개의 금메달을 땄다. 펠프스가 13번째 개인 금메달을 따면서 2,160여년 이어오던 기록이 깨어졌다.
완벽함으로 감동을 주는 미국선수로는 또 흑인여자 체조선수 시몬 바일스(19)가 있다. 알콜 마약 중독자인 엄마를 대신해 조부모 손에 자란 그는 탕탕 튀는 완벽한 연기로 5관왕이 기대된다.
우리는 선수들의 경기에 왜 감동할까. 왜 그렇게 재미있어 할까. 우리가 가진 놀이 본성 때문일 것이다.
네덜란드의 문명사가 요한 호이징하는 인간을 3가지 특성으로 정리했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호모 사피엔스), 도구를 가지고 뭔가를 제작하는 존재(호모 파베르)이자 놀이를 즐기는 존재(호모 루덴스)라는 것이다. 그중 중요한 특성으로 호이징하는 놀이 본성을 꼽았다. 놀며 즐기고 싶은 본성이 인류 문명의 시발점이었다는 것이다. 놀이 본성을 집단적 문화적으로 표출한 것이 축제이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호모 사피엔스에 호모 파베르로 사느라 마음껏 놀이를 즐겨본 경험이 별로 없다. 일에 치이고 스트레스에 짓눌려 사느라 호모 루덴스로서의 삶은 기억에 아득하다. 어린아이처럼 깔깔 웃으며 놀아본 적이 언제인가. 한바탕의 웃음은 30분 운동한 만큼 건강에 좋고, 감정에 복받쳐 우는 울음은 스트레스로 생긴 독성물질들을 배출해준다는데, 우리는 웃음도 울음도 없는 무덤덤한 삶을 살고 있다.
올림픽은 지구촌 최대의 축제이다. 마음껏 응원하고, 박수치고, 환호하며 즐기자. 그것이 우리의 건강한 본성이다. 흥분과 감동이 시들하던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줄 것이다. 우리는 놀이하는 존재이자 축제하는 존재(호모 페스티부스)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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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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