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골이 산더미처럼 쌓인 장면이 보인다. 아이를 안은 남자가 지뢰를 밟았다. 서너 살 남자아이의 똘망똘망한 눈망울, 순간 지뢰는 폭발하고 아이와 남자는 산산조각 흩어진다.
30년도 전에 본 영화 ‘킬링필드’ (The Killing Field)의 잔영은 아직도 충격적이고 섬뜩하다. 킬링필드는 1975년~1979년 사이 캄보디아 민주 캄푸차 정권 시기에 폴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즈가 저지른 학살로 죽은 시체들을 한꺼번에 묻은 집단 매장지를 말한다.
1984년 만들어진 이 미국영화는 한국에도 1985년 개봉되어 공산정권에 의한 학살이 부각된 반공영화로 초중고가 단체관람을 했었다. 당시 서울관객 100만명을 동원했으니 요즘의 1,000만 영화이다.
영화 속 실존인물로 캄보디아 크메르 루즈 학살 고발 기사를 써서 1975년 퓰리처상을 받은 미 언론인 시드니 섄버그가 지난 9일 심장마비로 뉴욕에서 별세했다. 향년 82세. NYT의 캄보디아 특파원으로 5년간 내전을 취재해 온 그는 킬링필드로 변해가는 역사적인 순간을 취재하다가 붙잡힌 후 태국으로 강제 추방되고 방콕에서 서방언론 최초로 프놈펜 함락과 크메즈 루즈군의 대학살 참상을 보도했다. 귀국 후 NYT 메트로폴리탄 에디터로 일한 그는 함께 전장을 누빈 현지 통역직원인 디트 프란을 잊지 않았다.
먼저 탈출하여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프란의 가족을 돌보면서 계속 프란의 생사를 추적했다. 프란은 폴포트 군에 체포돼 갖은 고문과 강제노동에 시달렸고 1978년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한 틈을 타 태국으로 탈출하여 미국으로 왔다. 섄버그는 79년 프란을 극적으로 만나 그의 가족 모두를 뉴욕으로 이주시키고 자신의 직장인 뉴욕 타임스 사진기자로 일하게 한다.
1980년대부터 함께 일하며 ‘깊은 우정’을 이어간 두 사람, 언론인의 로망이다. 영화 ‘킬링필드’는 섄버그가 쓴 책 ‘디트 프란의 죽음과 삶’을 토대로 조페 감독에 의해 영화화됐다. 프란은 2008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로부터 8년 후인 지난 7월9일 세상을 떠난 시드니 섄버그, 불필요한 전쟁에서 캄보디아 사람들이 겪은 고통을 세상에 알리자는데 뜻을 같이 한 그들의 이상과 우정이 몹시 부럽다. 그들은 평생 얼마나 서로 의지가 되었을까.
40년 전 캄보디아에서 일어났던 학살이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자행되고 있다.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 IS의 폭탄 테러로 중동은 물론 세계 어느 곳도 안전지대가 없고 남수단은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으로 수많은 난민이 발생하며 미국, 독일 등은 자국민을 대피시키고 있다.
남중국해 국제재판 결과에 이해 당사국의 갈등으로 동아시아 지역도 긴장상태다. 북한의 김정은은 인권제재에 대한 반발로 미국과 유일한 접촉창구인 뉴욕 채널을 차단했다.
대선을 불과 넉달 앞둔 미국엔 흑백 갈등이 불거져 연일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이 난세에 시드니 섄버그가 “나의 보도는 프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친구를 치켜세운 일을 기억해 보자.
‘명심보감’에 “얼굴 아는 이는 천하에 가득한테 마음 아는 이는 과연 몇이나 될까”는 말이 나온다. 유독 친구간의 우정을 높이 산 동양에서는 우정에 대한 사자성어가 많다.
우리가 다 아는 관포지교(管鮑之交, 나를 낳아준 분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라는 말로 유명한 관중과 포숙 사이), 금란지교(金蘭之交, 금이나 난초와 같이 귀하고 향기를 풍기는 친구 사이), 수어지교(水魚之交, 고기와 물의 관계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특별한 친구), 막역지우(莫逆之友, 서로 거역하지 않는 친구), 그리고 지음(知音, 자기를 알아주는 친구)....이런 친구를 원한다면 스스로 누군가의 이런 친구가 되어야 한다.
미국생활 20년, 30년 동안 가까이 지내고는 있지만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가 몇 명이나 있는가? 한평생 같이 해왔고 같이 갈 친구가 두어 명은 있다면 당신의 이민생활은 성공한 측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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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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