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가장 충격적 사건인 9.11 테러가 일어나자 아랍계 시민들은 긴장했다. 전날까지 스스럼없이 지내던 이웃, 직장동료, 학교친구들이 갑자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테러를 주도한 알카에다와는 아무 연관도 없는 사람들이, 이슬람교도도 아닌 사람들이 단지 외모가 아랍계라는 이유로 협박당하고 폭행당하며 살해되는 사건들이 발생했다.
부시 행정부는 즉각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알카에다의 요람인 아프간을 침공했다. 하지만 한 가지를 분명히 했다. 종교나 인종, 민족이 다르다고 해서 편견을 갖는 것은 미국적 가치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못 박았다. 미국은 민족적 문화적으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이룩한 나라, 우리 모두는 이민자(후손)라고 부시 행정부는 강조했다. 일방주의 외교정책과는 별도로 국내 무슬림 혐오범죄는 강력히 단속되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 이번 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선후보로 공식 지명된 도널드 트럼프는 ‘포용’이라는 미국의 가치에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소위 ‘정치적 올바름’을 거부한다고 그는 선언했다. (오바마를, 힐러리를, 이민자를, 무슬림을 …) 미워하면서 겉으로 아닌 척할 것 없다, 당당하게 미워하고 분노하라고 그는 선동한다.
그의 주장에는 거침이 없다. 범법자들이 넘어오니 멕시코 국경에 아예 장벽을 쌓고, 테러분자들이 섞여 올지 모르니 무슬림 이민을 금지하며, 미국 내 불법이민자들은 모조리 추방하겠다고 공표한다.
기성 정치인 같으면 감히 할 수 없는 말을 그가 한 것은 그가 간파한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제조업 쇠퇴 후 좌절감 깊은 백인 노동자들의 분노이다. 정치권에 대한 불만,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에 그는 불을 지폈다. 분노의 불길을 타고 그는 대통령후보 자리에까지 올랐다.
세상이 분노와 증오로 들끓고 있다. 올랜도 게이바 총기난사 사건으로 미전국이 충격을 받은 것이 지난달인데 불과 몇주 사이 백인경관의 흑인 총격사건이 연이어 일어나고, 이에 분노한 흑인들의 백인경관 저격사건이 두번이나 일어났다. 그 사이 니스에서는 이슬람 과격분자의 트럭테러로 8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22일에는 뮌헨에서 또 테러가 발생했다.
하나 같이 개인적 원한과는 무관한 사건, 주로 사회에 대한 분노와 증오의 사건들이다. 이런 사건 자체도 문제이지만 그로 인해 사회적 분열이 심해지니 또 문제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인종차별, 총기규제, 이슬람 극단주의, 이민정책, 난민수용 등의 이슈를 둘러싸고 편이 갈라져 서로를 적대시하면서 분노는 확대 재생산되고 사회 양극화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여기에 올 대통령 선거가 분노 부추기기 경쟁이 된다면 이 사회는 어찌 될 것인지 답답하다. 분노를 선동하는 트럼프에 대한 분노가 이미 깊다.
조감 효과(Overview Effect)라는 용어가 있다. 우주인들이 우주비행 중 처음 지구를 보면서 경험하는 순간적 인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수십억 인구가 아등바등 살고 있는 지구를 우주에서 내려다보면, 그것은 허공에 떠있는 작은 공 하나. 저 작은 곳에서 뭘 얻겠다고 싸우고 분열하는가, 공존이 최선이라는 인식이 생긴다고 한다.
미국의 역사를 높은 곳에서 조감해보면 사회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분노와 분열, 희생양이 있었다. 이민국가 미국에서 희생양은 으레 이민자.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독일계 이민자들이 희생양이었다. 1917년 미국이 뒤늦게 참전하자 독일계는 한순간에 적군 끄나풀 취급을 받았다. 폭행을 당하고, 집이 불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두려움을 느낀 독일계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 성을 바꾸었다. 오늘날 흔한 성 ‘스미스’는 원래 독일 성 ‘슈미트’였다.
당시 뉴욕에는 트럼프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독일의 작은 마을, 칼슈타트 태생이다. 요즘 무슬림이 눈총을 받듯, 트럼프의 조부는 독일계라서 눈총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 경험이 후손에게 교훈으로 남지 않았으니 안타깝다.
인종갈등과 테러가 일상사가 되었다. 분노와 증오라는 불쏘시개가 사방에 널려있다. 높은 곳에서 전체를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미국의 위대함은 인종, 민족, 언어, 문화가 다른 세계 각국 출신들을 가리지 않고 품어 안는 데 있다. “고단하고 가난한 자들, 자유로이 숨쉬기를 열망하는 자들”이 각지에서 와서 그 품에 뿌리를 내렸다.
올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선택해야 한다. 미국이 미국이려면 증오나 배척이 아닌 포용의 지도자가 필요하다.
junghkwon@koreatimes.com
<
권정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