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가 천재를 만난다. 아주 드문 경우다. 그 상황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캄캄하기만 하다. 그런 밤하늘이 홀연히 떠오른 찬란한 별무리로 한 순간 밝아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이백과 두보. 동양의 시 세계에서 우뚝 솟은 거봉들이다. 이 두 천재의 조우는 천년이 지난 오늘에도 중국문화사에 있어 가장 광휘로운 순간의 하나로 기억된다.
이순신과 정걸. 충무공 이순신은 잘 알려져 있다. 정걸은 역사 속에 숨겨진 군사적 천재다. 이 두 사람의 만남도 그렇다. 전란으로 얼룩진 한국사에서 명장면 중의 명장면을 연출한다. 그 충절과 의기가 하늘을 찔렀다고 할까 할 정도로.
정걸은 1514년생이니까 1545년생인 충무공보다 30년 이상 연상이다. 일찍이 수사, 병마절도사 등을 거쳐 임진왜란이 발발할 무렵에는 80을 눈앞에 둔 고령으로 은퇴해 있었다.
수군 지휘관으로서 그의 경력은 특히 눈부시다. 임진왜란 시 조선수군의 주력 전함인 판옥선(板屋船)도, 주 화공무기인 화전(火箭)도 모두 그의 천재적 창의성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런 그가 고령에도 불구하고 군문(軍門)으로 되돌아 온 때는 임진왜란 직전이다.
전라좌수영 조방장으로 임명 받은 것이다. 조방장이란 직책은 일종의 고문직이다. 한참 후배다. 아마도 그런 이순신의 청빙을 흔연히 받아들이고 그 막하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정걸은 이순신을 도와 유명한 한산도해전, 부산해전을 모두 승리로 이끈다. 그는 또 충청수사로 행주대첩에도 참여한다. 그 정걸을 이순신은 상당히 공경한 것 같다. 마치 스승을 대하는 것처럼. 그런 구절이 ‘난중일기’ 곳곳에서 발견된다.
아버지와 아들의 나이 차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군사적 천재는 서로를 알아본다. 인습을 초월해 이루어진 그 만남은 칠흑 같은 전란기에 한 가닥 찬란한 빛을 쏘아 올린다.
조물주의 섭리라고 할까. 그저 우연이라고 할까. 백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천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무리를 지어 동시대에 나타난다. 그런 경우가 역사 속에 종종 있다.
최악의 무능한 군주에, 조정의 리더십은 형편이 없었다. 조선조 14대 임금 선조를 말하는 거다. 그런데 조선조를 대표할 위대한 인물들은 그 시대에 거의 다 망라돼 있다 시피하다. 이순신에, 정걸, 곽재우 등 군사적 천재는 말 할 것도 없다. 이율곡, 유성룡을 비롯해 그 어느 시대 보다 걸출한 인재가 많이 배출된 게 선조 때다.
용렬한 군주에, 무기력한 조정. 그런데 어떻게 대전란을 극복했을까. 새삼 스치는 생각은 민중의 고초를 함께 짊어진 그 시대 천재들의 눈부신 분투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어지럽기 짝이 없다. 브렉시트(Brexit) 이후 서방세계가 맞은 상황이. 테러리즘은 여전히 기승을 떨고 있다. 그 가운데 프렉시트(Frexit) 소리도 들려온다. 유럽연합(EU)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거다. 그런데도 정치 리더십은 혼돈의 연속이다.
이 정황에서 한 외침이 들려온다. ‘천재가 그 어느 때보다 대망 된다’는 것이다. 월 스트리트 저널의 페기 누난의 지적으로 혼미만 더해가는 서방의 정치질서에 대해 깊은 절망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처칠, 드골 등 정치적 천재들이 있었다. 거기다가 마셜, 아이젠하워, 맥아더. 몽고메리, 패튼 등 군사적 천재들이 거의 동시에 나왔다. 이 일단의 천재들이 결국은 세계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전후의 새 시대를 열었다.
80년대도 상황은 비슷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레이건, 대처, 거기다가 바츨라프 하벨, 레흐 바웬사 등 정치적 천재들의 동시 등장과 함께 냉전시대는 마감되고 새 질서가 이룩됐다는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미합중국 탄생도 마찬가지다. 워싱턴, 프랭클린, 제퍼슨, 애덤스, 메디슨, 해밀턴 등 천재들이 동시에 나타남으로써 이루어냈다는 평가다.
이 천재 대망론은 다름이 아니다. 전후 70년간 지탱해온 서방의 국제질서가 붕괴상황을 맞고 있다. 비상시인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비상상황을 관리할 창조적 리더십이 안 보인다. 그 절박감에서의 외침인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주자로 떠오른 미국도 그렇다. ‘오죽 인재가 없으면…’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위기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 위기에 감연히 도전, 극복해 나가면서 고대 로마제국은 비약적으로 발전해 나간다. 차고 넘치는 인재들 덕분이었다. 그러던 로마의 지도자층의 질적 수준이 급격히 저하된다. 지식인계급의 지적능력도 감퇴된다. 3세기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인재의 고갈, 리더십결여와 함께 로마제국은 결국 쇠퇴의 운명을 맞는다. 느닷없어 보이는 이 ‘천재 대망론’에는 서방세계 쇠망에 대한 불길한 예감이랄까, 그런 초초감이 묻어나고 있다.
‘창조적 리더십이, 인재가 보이지 않는다’-. 이 말이 더 절실히 들리는 곳은 대한민국이 아닐까.
안보가 흔들린다. 그런데 방위산업비리로 몸살을 앓고 있다. 거기다가 대기업 경영비리, 법조 비리 등 온통 비리 투성이다. ‘헬조선’의 신음 속에 양극화는 날로 심화된다. 그 가운데 계파 싸움으로 정치리더십은 아예 부재 상황이다. 사람이 안 보인다. 적막감마저 들 정도다.
2017년 한국의 대선이 벌써부터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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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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