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세기는 우연히도 지구의 동 쪽과 서쪽에서 대규모 토목사업이 시작 된 해이기도 하다. 동쪽에서는 만리장 성이, 서쪽에서는 로마가도가 건설됐다.” ‘로마인 이야기’ 저자 시오노 나나미의 지적이다.
이 두 거대한 토목공사는 모두가 국방을 염두에 둔 것이다. 방벽은 사람의 왕래를 차단한다. 가도는 왕래를 촉진한다. 이민족의 왕래를 차단 할 것이냐, 아니면 자국 내의 왕래를 촉진할 것이냐.
안보에 대한 이 같이 현저한 사고방식 차이는 결국 그 민족이 나가는 길까지 결정해버렸다는 진단이다.
춘추전국시대에서 진 시황을 거쳐 명나라 때 대대적으로 수축된 만리장성은 그 전체 길이가 6,700여km에 이른다. 이 만리장성은 중화민족의 상징이자 자부심이다. 그 만리장성이 또 다시 축조되고 있다. 이번에는 육지가 아니다. 바다위에 세워지고 있는 것이다.
2009년 중국은 일견 단순해 보이는 지도를 유엔에 제출했다. 남중국해 해역에 아홉 개의 단선을 그은지도다. 이 구단선이 의미하는 것은 이 해역의 90% 가 중국의 영토라는 거다.
유엔해양법 협약에 따르면 영해(領海) 는 한 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바다로 해안선으로부터 12해리의 범위까지로 설정된다. 배타적전관수역(EEZ)은 영해기선으로부터 200해리까지 이르는 수역까지 인정된다.
문제는 이 구단선이 인근 다른나라의 EEZ을 마구 짓밟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남중국해를 중국의 내해(內海)로 만드는 작업은 공공연히 이어져왔다. 그리고 2015년 11월 시진핑은 남중국해는 고대부터 중국의 바다로, 중국의 영토임을 선포했다.
동시에 이루어진 게 인공섬조성과 군 사기지화다. 산호초 아니면, 작은 바위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런 섬들을 멋대로 점령하고 인공 섬 조성에 들어갔다. 인근의 모래를 퍼 올려 섬을 만들고 중국영토임을 선언하는 거다. 그로 그치는 게 아니다. 군사기지화 하는 것이다.
크기는 지중해의 절반이 넘는다. 이 해역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물동량이 지나는 주요 수로를 형성하고 있다. 그 남중국해에서 중국은 거대한 요새구축작업에 나선 것이다.
이과정에서 베이징은 한 가지 괴이한 내러티브를 만들어 냈다. ‘치욕의 세기’에 중국은 많은 영토를 상실했다. 남중국해는 말하자면 식민주의세력 열강에게 빼앗긴 중국의 영토로 중국공산당은 그 실지회복에 나섰다는 것이다.
국제법상 근거가 허약하다. 남중국해와 그 인근의 인공 섬들이 중국영토라는 주장은. 그런데 남중국해 문제를 주권문제로 끌어 올렸다. 다른 말이 아니다. 주권은 신성불가침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주권은 지켜야 한다. 남중국해는 사활적 이해가 걸려 있다는 거다.
그 모양새가 그렇다. 과거 왕조시대에 거대한 방벽이 세워지는 과정과 흡사하 다고 할까.
왕조가 흔들린다. 상황이 점차 절박해 진다. 그럴 때마다 새삼 원용되는 것은 화이(華夷)사상이다. 철저한 한족(漢族) 중심사상이 그것으로 특히 강조되는 것 은중국적예외주의,다시말해중화제 1의 민족주의다.
이웃 나라를 오랑캐로 취급해왔다. 이웃나라는 결코 협상대상이 아니다. 정복 내지, 관리대상일 뿐이다. 위기상황에서 결국 들려오는 소리는 하나로 귀결된다. 강경론, 중화 제1주의다. 그래서 세워지는 것이 높은 방벽이다. 중화문명을 보호해야한다는 명분과 함께.
명왕조가 대대적으로 만리장성을 수축한 것도 같은 논리에서다. 그러나 결국은 만주족의 말발굽아래 유린되고 만다. ‘중화주의’라는 덧에 갇혀 타협을 거부 한 결과다.
만리장성은 그런 면에서 중국의 자부 심이라기보다는 극도로 폐쇄적인 성벽 의식(fortress mentality)의 산물로 오히려 허약한 왕조에, 대실패를 상징하고 있다.
그 중화주의가 큰 도전에 직면했다. 중국이 제멋대로 설정한 구단선의 적법성을 놓고 필리핀이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소를 제기했다. 그 PCA의 판결이 12일로 다가온 것이다.
필리핀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전망으로 이와 함께 동남아에서 호주에 이르는 서태평양일 대는 자칫 베트남전쟁 이후 최악의 안보 위기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경제가 불안하다. 뒤따르는 것은 파업에, 폭동 등 잇단 소요 사태다. 중국 공산당 통치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베이징은 남중국해문 제를 중화 제1주의로 짙게 덧칠해버렸다. 민족주의 과열상황을 불러온 것이다.
그런 마당에 PCA판결에 승복해 뒤로 물러선다. 그 경우 시진핑 정권의 존립도 위험해진다.
때문에 베이징은 강경일변도로 나올 공산이 크다는 것이 다수의 관측이다. 더욱이 PCA판결을 앞두고 남중국해상 에서 벌인 중국의 대대적인 무력시위는 그 같은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2016년 7월12일은 현대 중국사에 있어서 어쩌면 기억해야 할 날이 될것이 다-. 위크(Week지의 지적이다. 그 말이 어쩐지 심상치 않게 들린다.
<
옥세철 논설위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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