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살의 동갑내기 청년들이 있었다. 한 사람은 미네소타 주 세인트폴에, 다른 사람은 텍사스 주 댈러스에 살았다. 두 사람이 서로 만났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살아서 한 점 연관성도 없던 청년들이, 어떤 인연인지, 죽음으로써 이어졌다. 한 청년의 죽음이 다른 청년의 죽음을 몰고 왔다. 둘 다 억울한 죽음, 비통한 죽음이다.
미국의 원죄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계속 무너트리고 있다. 미국의 태생적 비극이 평범한 사람들의 가슴을 계속 찢어내고 있다. 노예제도에서 비롯된 인종차별, 인종갈등의 역사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미국사회가 또 다시 격렬한 인종갈등에 휘말렸다. 2년 전 미주리, 퍼거슨에서 10대 흑인소년이 백인경관의 총에 숨진 후 불같이 치솟았던 인종적 긴장감이 다시 미국을 뒤덮고 있다. 인종갈등의 대표적 구도인 ‘백인경관 대 흑인남성’ 사건이 지난 사흘 연달아 일어나 7명이 목숨을 잃었다.
시작은 루이지애나였다. 주도인 베이튼 루지에서 지난 5일 백인경관 2명이 30대 후반의 흑인남성을 제압하던 중 총을 쏘아 남성을 죽였다. 그 과정을 고스란히 담은 셀폰 동영상이 일파만파 퍼지고, 분노한 흑인커뮤니티가 들고 일어나자 연방 법무부는 즉각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다음 날인 6일에는 미네소타에서 사건이 터졌다. 초등학교의 카페테리어 직원인 필랜도 캐스틸(32)은 생일기념으로 머리를 깍은 후 약혼녀와 그녀의 4살짜리 딸을 태우고 기분 좋게 운전 중이었다. 밤 9시쯤 백인경관들이 차를 세웠다. 자동차 후미등이 나갔다며 교통검문을 했다.
필랜도는 엄마의 당부를 기억했다. “경찰을 만나면 무조건 순종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손을 위로 올리라는 경찰의 지시에 순종하고, 운전면허증을 보이라는 지시에 순종하느라 손을 바지 뒷주머니로 가져가는 순간 경찰이 총을 쏘았다. 연속 4발을 맞고 뿜어 나오는 피로 흰 셔츠를 흥건히 적신 채 그가 쓰러지는 모습을 약혼녀가 셀폰에 담았다. 페이스북 생중계 기능으로 찍은 10분가량의 동영상은 실시간으로 퍼져나갔다.
그 밤으로 흑인들 수백명이 주지사 관저 앞으로 몰려가 시위를 했고, 다음날인 7일 마크 데이튼 주지사는 백인경관의 공권력 남용을 지적했다. “운전자가 백인이었어도, 차에 탄 사람들이 백인이었어도, 이런 일이 일어났을 까요?” 그는 묻고 대답했다. “아닐 겁니다.”유사사건이 연이틀 터지자 흑인들의 분노는 증폭되고 항의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7일 밤 댈러스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댈러스 경찰국 소속 5년차 경관 패트릭 자마리파(32)는 시위 현장에서 근무 중이었다. 시위가 평화롭게 끝나가던 9시쯤, 미네소타의 필랜도가 사망한 지 만 하루가 되던 때, 총탄이 날아들었다. 지난 이틀간 사건에 격분한 흑인남성이 “백인들, 특히 백인 경관들을 죽여버리겠다”며 매복 저격해 경관 5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했다.
이라크 전쟁터에 3번이나 나가서도 무사했던 패트릭은 이날 밤 댈러스에서 목숨을 잃었다. 두 살짜리 딸을 ‘공주’라며 몹시도 예뻐했던, 아내와 아들과 더불어 행복했던 평범한 가장이었다. 필랜도의 죽음이 자신의 죽음으로 이어질 줄 그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 사이에 인연이 있었다면 같은 나라에 살았다는 것, 인종갈등의 뿌리가 깊은 미국에 산 것이 그들의 억울한 죽음의 근원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 “우리에게는 참 힘든 역사가 있고, 그 역사를 우리는 아직 통과해내지 못했다”고 오바마 대통령은 말했다. 힘든 역사란 인종차별의 역사, 역사란 오랜 세월에 걸쳐 쌓였다는 의미. 그만큼 깊이 인종차별은 우리의 의식에 각인 되어있고, 그만큼 널리 이 사회의 문화에 퍼져있다는 말이 된다.
인종차별은 진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종족이 살아남으려면 다른 그룹에 대한 경계는 필수적이었다. 그 경계심과 차별의식이 우리의 유전인자에 박혀있다. 그래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는 인종차별주의자이다. 여러 인종이 섞여 사는 미국에서 툭하면 ‘인종’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배경이다.
이번 인종갈등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불똥이 언제 어느 지역으로 튈지, 그래서 어느 무고한 사람들이 또 희생될지 알 수가 없다. 차별을 법으로 금한 나라에서 인종차별의 비극이 끝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의식 때문이다. 의식이 저절로 바뀌지는 않는다. 다름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열린 마음을 의도적으로 연습해야 한다. 그렇게 마음을 청소해야 한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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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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