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오래 머무는 듯 했다. 그러다가 결국은 또 과거 속으로 사라졌다. 2016년 6월. 그 한 달이 그렇게 느껴진다. 대사건의 연속이어서 그랬나.
미국 사상 최악의 총기학살 사건이 벌어졌다. 2016년 6월12일. 일요일인 이날 새벽 플로리다 올랜도의 한 게이 바에서 49명이 무차별총격에 숨지고 50여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범인은 아프가니스탄 이민 2세 오마르 마틴이다.
충격이었다. 그러나 이내 미국은 이 사건을 놓고 분열됐다. 성 소수자에 대한 증오범죄라는 의견과 이슬람 과격분자의 테러행위라는 시각이 팽팽히 맞섰던 것.
6월23일. 또 다른 대형사건이 발생했다.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순간 올랜도 학살을 둘러싼 논란은 멈춰버린 것 같이 보였다. 그리고 불과 한 주도 못돼 터진 것이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에서의 대형 테러사건이다.
그 뒤로 쏟아지는 소식들은 하나 같이 암울하기만 하다. ‘전후 세계질서 지각변동’, ‘도전받는 팍스 아메리카나’, ‘서방 자유주의 세계질서 붕괴’ 등등.
세계는 ‘붕괴의 시대’를 맞았다. 영국 인디펜던트지의 패트릭 코크번의 주장이다. 그 시대상을 특히 절감케 하는 곳은 아프리카에서 전체 아랍권, 다시 말해 파키스탄에서 나이제리아로 이어지는 광대한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는 현재 7개의 전쟁이 수 년 째 계속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예멘, 리비아, 소말리아, 그리고 사우스 수단이 그 전쟁터다. 게다가 터키 동남부,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나이제리아 북부지역의 상황도 심상치 않다. 반정부 게릴라전이 전쟁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전쟁의 양상이 그렇다. 승자와 패자가 제대로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파괴시키고 있다. 동시에 기존의 국가 개념도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2015년을 기점으로 오래 동안 부글부글 끓어오던 위기는 국경너머 이웃 대륙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지역적 불안정성이 전 지구로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평화기금’과 포린 폴리시지가 발표한 2016년 취약국가지수 보고서 서문의 내용이다.
이 보고서는 시리아와 나이제리아를 위기의 진원지로 지목했다. 거기서 시작된 혼란상황이 계속 악화되면서 수 천마일 떨어진 곳에까지 엄청난 파장을 몰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먹구름처럼 하늘 가득히 번져오고 있는 불안정성. 그 뒤로 그런데 뭔가 한 가지가 어른거린다. ‘이슬람이란 거대한 그림자’다.
시리아 내전도 그렇다. 회교 수니파 극렬단체 이슬람국가(IS)의 대두와 함께 전쟁의 양상이 변모하면서 그 불똥은 마침내 유럽으로 번져가고 있는 것이다.
100여만의 시리아난민이 유럽으로 몰려들었다. 이와 함께 유럽에 상륙한 것은 테러리스트들이다. IS대원들이 피난민을 가장해 들어간 것.
먼저 난민행렬의 병목지대인 발칸반도가 뒤집어졌다. 중부 유럽도 마찬가지다. 잇단 테러와, 끊이지 않는 난민행렬. 이는 전 유럽에 반(反)이민정서 확산을 불러왔다. 그 반이민정서는 결국 브렉시트로 이어지면서 유럽연합이란 이상(理想)은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사하라이남 서부 아프리카의 상황도 흡사하다. IS의 별종이라고 할까. 그 보코 하람의 준동과 함께 차드, 카메룬 등지까지 유혈사태는 확산되면서 거대한 난민물결이 뒤따르고 있다.
“유혈사태, 전쟁 등 20세기의 갈등을 주도한 것이 사회주의, 혹은 민족주의세력이라면 21세기 들어서는 이슬람이 그 역할을 떠맡았다.” IS, 알카에다. 탈레반, 보코 하람, 알샤바브…. 또 뭐가 있나. 대형테러가 발생한다. 대학살극이 저질러진다. 그럴 때마다 들먹여지는 이름이다. ‘붕괴의 시대’- 그 시대의 화두는 다름 아닌 ‘이슬람’이라는 이야기다.
관련해 새삼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서방지도자들의 테러대처방안이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지나치게 매몰돼 있다. 때문에 IS가 사주한 테러가 발생해도 이슬람이란 단어조차 쓰기를 꺼린다. 비유하자면 이탈리아 커뮤니티의 반발이 무서워 마피아를 범죄 집단으로 부르지 못하는 꼴이다.
교조주의로 비쳐질 정도로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고 있어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국민의 99%는 샤리아(이슬람 율령)에 의한 통치를 지지하고 있다’-. 올랜도 참사 직후 나온 보도다. 그러니까 동성애자 처형을 당연시 하고 있다는 거다. 무슨 말인가. 극단주의 형태의 이슬람은 말할 것도 없다. 순수한 형태의 이슬람도 현대 서방의 민주주의와는 그 가치관 추구에 있어 양립이 어렵다는 것이다.
보다 현실적인, 그리고 분별력이 있는 안보정책만이 트럼프주의 승리를 막는 길이 아닐까. 7월에 접어들기가 무섭게 또 다시 전해진 테러소식. 이와 함께 문득 스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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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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