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0달러 내고 스키여행 가서 스키는 구경도 못 했다” 는 제목의 칼럼이 며칠 전 워싱턴포스트에 실렸다. “신종 사기인가?” 생각하며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글을 쓴 사람은 콜로라도에 사는 작가였다. 두 아이의 엄마인 그는 마흔 살 생일을 기념해 특별한 여행을 계획했다. 스키 애호가로서 평생 꿈꾸던 헬리(콥터) 스키를 해보는 것이었다. 헬리콥터를 타고 산 정상에 올라가 깎아지른 듯 가파른 능선을 질주해 내려오는 모험이다. 그는 친구와 함께 각자 남편과 아이들을 집에 두고 알래스카의 추가치 산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일주일 먹고 자며 3일간 헬리 스키를 하는 가격이 5,875달러였다.
그들이 사기를 당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기당한 기분임에는 분명했다. 도착한 날부터 닷새 동안 계속 비가 내렸고, 마침내 날이 개어 헬리콥터를 타고 산꼭대기로 가보니 적설량이 형편없었다. 연일 내린 비로 눈사태가 발생한데다 기온이 너무 높은 탓이었다. 3월의 알래스카 기온이 화씨 68도. 예년 평균보다 20도가 높았다. 일행은 4,000피트 산정에서 15분쯤 둘러보다가 그대로 돌아왔다. 꿈의 여행은 스키부츠 한번 신어보지 못한 채 끝났다.
굳이 꼽자면 그들은 ‘기후’에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고온으로 세계 곳곳에서 만년설이 녹고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다.
미 기상협회, 화학협회, 과학진흥학회 등 미국의 31개 과학기구들은 지난 28일 연방의회에 특별서한을 보냈다. 기후변화 문제를 상세히 지적하면서 조속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서한이었다.
미국에서 온실가스,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같은 용어들이 대중화한 것은 지난 2006년 알 고어 전 부통령이 저서 ‘불편한 진실’을 발간하고 부터였다. 그의 환경보호 운동이 집중적으로 매스컴을 타고, 노벨평화상 수상으로까지 이어지면서 기후변화는 과학의 영역을 넘어 일반인들의 관심 사안이 되었다. 그럼에도 연방의회가 온실가스 배출 규제 등에 미온적이자 관련 기구들이 연대해 경고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기후변화는 앞으로 닥칠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기후변화가 인간 활동으로 일어난다는 것은 일개 의견이 아니다. 광범위한 과학적 데이터들을 분석한 결과이다.” “우리의 후손들을 생각한다면 지금 담대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 … 과학자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기후가 변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 피부로 느끼는 일이다. 남가주만 해도 날씨가 이전 같지 않다. 과거에는 11월말부터 2월말까지 우기이던 것이 이제는 연중 아무 때나 비가 온다. 그러면서도 가뭄은 심각하다. 날씨가 맑고 선선해서 에어컨이 필요 없던 것이 이제는 에어컨 없으면 여름을 날 수가 없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의 가장 기본적 현상은 이상고온과 가뭄 그리고 잦은 산불이다. 가주 등 서부에서는 6월에 이미 화씨 100도를 훌쩍 넘었다. 가뭄으로 나무들이 불쏘시개처럼 바싹 말라있으니 불이 쉽게 날뿐 아니라 났다 하면 대형 산불이 된다.
이상고온으로 애리조나, 피닉스에서는 한밤중에 콘크리트 공사를 하는 기현상이 생겼다. 낮 기온이 118도에 이르자 부득이 밤을 택한 것이다. 기온이 너무 높으면 콘크리트가 바로 굳어 작업이 어려운 데다 철제설비며 연장들이 너무 뜨거워 인부들이 화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밤중 기온도 근 90도에 이르지만 달빛 아래 작업이 훨씬 할 만하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와 관련, 가장 눈길을 끄는 현상은 빙하와 만년설 붕괴이다. 아프리카의 최정상, 킬리만자로가 2030년이면 눈 없는 산이 될 것이라고 한다. 억겁의 만년설이 녹고 녹아 앞으로 15년이면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과학자들은 전망한다. 빙하가 녹아 북극곰들이 작은 얼음 덩어리 위에서 불안해하는 모습은 기후변화의 상징적 이미지가 되었다. 빙하가 녹는 만큼 해수면이 올라가 세계 곳곳의 해안 마을들이 침수되고 있다.
과거 환기시설이 없던 시절, 광부들은 카나리아를 새장에 넣어 탄광에 가지고 들어갔다. 새가 메탄가스나 일산화탄소 등에 대단히 민감해서 소량만 있어도 바로 죽기 때문이었다. 새가 죽으면 광부들은 위험을 감지하고 대피할 수가 있었다.
기후변화에도 ‘카나리아’가 있다. 녹아내리는 빙하나 만년설이 ‘카나리아’일 수 있다. 대책 없이 있다가는 지구 생태계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이다. 지구의 평균기온은 지난 100년 사이 화씨 1.4도 올라갔다. 그 결과를 지금 우리가 보고 있다. 지금 추세로 간다면 21세기 말 지구의 기온은 4도 이상 올라갈 수가 있다. 풀 한포기 없이 흙먼지만 날리는 화성 같이 되는 것이다. 후손들에게 그런 지구를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생활습관을 자연 친화적으로 바꿀 때가 되었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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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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