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한국의 중요한 축을 담당해 온 양대 국적 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격량의 바다에서 침몰하고 있다. 두 선사의 선장은 이미 배를 포기하고 키를 넘겼지만 풍랑은 멈추지 않고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70년 중반에 설립된 두 회사는 수출 주도의 경제 성장과 더불어 세계 상위권 해운사로 성장했다. 설립 시기와 성장과정 그리고 남편의 갑작스런 부재로 키를 잡다 침몰시킨 미망인들까지 한 치의 다름없는 두 회사의 운명이 안타까울 뿐이다. 더욱 아쉬운 점은 주부에서 CEO로 변신한 두 경영자가 회사를 잘 이끌어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길 바랬기 때문이다.
위기에 빠진 한국 기업들의 대응 과정을 지켜보면 경영 실패로 발생한 문제를 업황의 문제로 대처하다 몰락하는 공통점이 있다. 경영 부실이 발생하면 본질적 접근 보다는 감상적 여론에 빠져 땜빵식 처방만 계속하다 파국을 맞는 게 지금까지 보아온 일반적 수순이었다. 이는 직장을 잃고 싶지 않은 직원들과 썩은 살을 도려낼 용기가 없는 경영자 그리고 사회적 이슈를 피하고 싶은 정부의 삼박자가 만들어 낸 예정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고가의 선박을 구입해 일정 기간 내 이익을 내야하는 해운업은 이동형 장치 산업이라 할 수 있다. 토지를 포함한 건물과 달리 선박은 선령 기간 내 수익을 내지 못하면 고철로 변하기 때문에 막대한 감가로 큰 손해가 따르게 된다. 이처럼 효율적 선박 운용이 손익에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해운업의 특성상 운임이 낮다고 화물을 덜 실거나 운항을 중지할 수 없는 구조다. 따라서 지금처럼 선복량이 넘치면 손해를 보더라도 더 많이 실어야 손실을 줄일 수 있어 생존을 위한 치킨게임을 피할 수 없는 게 선사들의 숙명이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 회계법상 부채에 포함하지 않는 리스 비용을 감안하면 부채 비율이 수천 %가 넘는 한진과 현대가 살아날 수 없음은 분명한 현실이다. 이처럼 파이낸싱 능력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는 해운업의 본질은 금융업과 다름없다.
따라서 지금처럼 경기 사이클이 짧고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에서 장기 용선계약은 리스크가 매우 높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이치다. 그럼에도 이를 간과한 두 회사는 무모한 계약으로 금융업의 기본인 리스크 관리 실패로 몰락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자사 소유의 선박은 비상시 경영 전략에 따라 싼 값에라도 처분이 가능하지만 용선은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 손해를 무릅쓰고 운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배를 자신의 의지대로 운항하는 것과 키가 고정돼 방향을 바꿀 수 없어 뻔히 보이는 폭풍 속으로 돌진하는 차이와 같아 용선 의존도가 높은 두 선사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상황 논리가 우선하는 경우도 어쩔 수 없이 발생한다. 그러나 문제가 불거지면 냉정하게 판단해 과감하고 신속하게 대처해야지 상황 논리의 실패를 다시 상황 논리로 대응하는 건 더 큰 불행을 가져다 줄 뿐이다.
양 선사의 본질적 위기는 잘못된 용선 계약에서 비롯된 것이지 경제 상황 때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경영진과 주관 은행은 원인은 덮어놓고 경제가 회복되면 좋아질 것이라는 비이성적 낙관주의로 일관하다 소중한 자본만 낭비하고 회사는 거덜을 냈다. 배 밑바닥에 구멍이 뚫려 물이 들고 있는데 중요한 자산들만 바다에 던져 당장 침몰을 막기에 급급했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각국의 선사들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일본의 경쟁사들은 두 선사와는 확연히 다른 전략으로 맞섰다. 한진과 현대가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벌크선과 자동차 운송선 그리고 터미널 사업 같은 우량 자산을 팔아 적자를 매울 때 그들은 악착같이 캐시카우 사업을 지켜 손실을 최소화 했다.
이처럼 수익 사업을 정리해 망해가는 사업을 살리는 회생은 미국에선 상상하기 어렵다. 경쟁력에 한계를 느낀 볼보자동차가 우량 사업인 상용차 부분을 지키기 위해 매출이 월등히 많은 승용차 사업을 매각했음도 같은 맥락이다.
한진과 현대는 과거 보다 더 좋은 호황이 와도 저리의 금융지원 없이는 결코 살아남지 못한다. 그들은 이미 환경 적응에 실패했고 경쟁력인 소중한 자원을 모두 낭비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기업이 위기에 몰렸을 때 과거 향수를 잊지 못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그러나 이런 정서에서 빨리 벗어나지 못하면 기업의 아픈 역사는 되풀이 되고 지나간 영광은 다시 오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을 미련을 버리고 다가올 미래를 통찰하여 냉정하게 대응하는 게 경영자의 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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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보에어 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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