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LA에 한인 동성애자들의 모임이 결성되었다. 몇몇 회원들을 만나 취재를 하면서 세상에는 자신이 당하는 고통을 고통이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았다. ‘고통’을 말하려면 고통의 원인을 말해야 하는데, 그 원인은 말로 되어질 수 없는 것. 이를 악물고 혼자 감당할 뿐이었다.
회원들은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 없어 자신과 싸워야했던 아픔, 부모에게 ‘자신’을 감춰야 하는 아픔을 이야기했다. 그들 중에는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사는 50^60대도 있었다. 그 나이에 동성애자 모임에 나온 걸 보면 결혼을 해도, 다른 사람들 사는 대로 살아봐도 타고난 성적 성향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 같다. 아픔이 그들의 가슴마다 깊게 뿌리 내리고 있었다.
49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올랜도 게이클럽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이 동성애자였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가 그 게이클럽에 자주 갔었다는 증언, 동성애자 데이팅 앱을 사용했다는 증언, ‘그는 게이!’ 라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이슬람 급진주의에 빠진 무슬림 청년의 동성애 혐오범죄로 알려졌던 사건은 이슬람 급진주의의 탈을 쓴 동성애 무슬림 청년의 자기혐오 테러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범행 전 IS에 충성서약을 했다는 범인 오마르 마틴(29)이 과거 헤즈볼라 지지선언을 했다는 사실부터 앞뒤가 맞지 않았다. 둘 다 과격 무장단체들이지만 IS는 수니파, 헤즈볼라는 시아파로 원수지간이다. 이 정도의 배경지식도 없는 그가 목숨 건 지하디스트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신의 광적인 파괴행위에 ‘위대한 전사’의 이미지를 덧씌우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동성애 혐오 테러범’이 게이일 가능성을 게이 커뮤니티는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을 다룬 ‘콜럼바인’ 등 베스트셀러 작가인 데이브 컬른(55)은 ‘전혀 놀랍지 않은 일’이라고 칼럼에서 썼다. 사건 직후 그의 많은 동성애 친구들은 이를 감지했었다고 한다. 동성애자들에게는 가슴 깊이 내재된 동성애 혐오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동성애자가 성적 정체성을 받아들이기까지 몇 단계를 거친다고 썼다. 첫 단계는 부인. “내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28살 때까지 남성과 손도 잡지 않았다고 한다. 성적 충동을 누르고 누른 것이었다. 그리고 나면 실험 단계이다. 여성과 사귀면서 남성과도 관계를 한다. 양성애자로 사는 이런 생활을 그는 7년간 했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 자신은 부인할 수 없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단계에 이른다고 했다.
동성애자라면 경멸과 차별, 종교적 저주의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 동성애자이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그는 말한다. 동성애 성향을 뽑아버리고 싶어서 발버둥 치는 기간이 반드시 있는데, 이때 동성애 혐오가 극에 달하면서 심한 경우 자기 파멸의 길을 택한다는 것이다. 아프간 이민 2세로 엄격한 이슬람 신앙 속에서 자란 마틴은 동성애 관련 갈등과 혐오가 특히 심했을 것으로 그는 짐작했다.
동성애로 인해 비극적 삶을 산 인물로 차이코프스키가 꼽힌다. 19세기 후반 러시아에서 그는 대성한 음악가였다. 1893년 그가 사망하자 황제가 국장을 치러주고 장례식에 6만명이 운집할 만큼 추앙을 받았다. 하지만 그 빛나는 음악적 명성의 뒤에 동성애가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며 그의 삶과 죽음의 축을 이루었다.
그가 여성과의 결혼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혼생활을 도저히 견디지 못해 폐렴에 걸려 죽으려고 모스크바 강에 뛰어들기까지 했다. 결혼은 두달만에 끝났다. 53세 젊은 나이의 죽음 역시 동성애와 상관이 있다. 교향곡 ‘비창’을 초연하고 며칠 후 그는 갑자기 사망했다. 발표된 사인은 콜레라였다.
하지만 이후 드러난 정황들에 의하면 죽음은 비소 중독에 의한 자살 가능성이 높다. 그의 동성애 사실을 고발하는 투서가 황제 앞으로 전달된 것을 그의 대학동창들이 미리 보고 차라리 죽을 것을 권했다는 설이다. 당시 동성애는 치욕적 금기이자 시베리아 유배형을 받을 중죄였다. 그는 가장 사랑하는 애인이자 조카인 보브 다비도프에게 전 재산을 남기고 죽었다. 마지막 교향곡 ‘비창’ 역시 다비도프에게 헌정되었었다.
올랜도 사건은 미국사회에 많은 숙제를 던져주었다. 총기규제, 자생적 테러, 혐오범죄가 특히 부각되었다. 시급한 것은 개개인의 내면에 어떤 혐오, 어떤 미움이 있든 대량살상으로 연결되는 고리만은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용 자동소총을 민간인들에게 합법적으로 파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사회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병든 영혼들에게 악마가 되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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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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