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자리서 각국 명소 돌며 과거.현재.미래 시간여행
지구본과 화단
우리는 J언니표 오믈렛으로 아침을 해먹곤 일찌감치 Epcot(Experimental Prototype Community Of Tomorrow)로 향했다. 엡코트는 1982년, Future World와 World Show Case로 태어났다.
퓨처월드는 바다, 대지, 에너지 등을 테마로 과거 현재 미래의 전시관과 놀이동산이다. 월드쇼케이스는 11개국 문화관이 40에이커의 Lagoon호숫가에 설치된 일종의 만국박람회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태리, 캐나다, 노르웨이, 모로코, 멕시코, 중국, 일본 11개국이다. 한국만 빠졌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빗대 디즈니사에 탄원할 건수다.
빤짝빤짝하는 거대한 지구본(Space Ship Earth)이 시선을 확 끈다. 은색 알루미늄 금속재질과 폴리에틸렌 패널 954장을 붙여 제작됐다. 지름 50M에 1600만 톤의 무게니 엄청난 덩치다. 첫 인상은 '초특대형 골프공‘과 타임스퀘어의 ‘송년 볼’이다. 세계에 반구형 돔 건축물은 좀 있어도 완전 원형은 드무니 명물임에 틀림없다.
각 테마 파크마다 프로그램이 너무 많아 무엇을 볼지 고민이 따른다. 주로 인기 있는 곳엔 우선적으로 입장할 수 있는 FP(Fast Pass)제도가 있다. 무료지만 하루 세 군데밖에 못쓰고 한 번 사용 후 두 시간 안엔 못 찍게 돼있다. 어젯밤 J언니 딸이 인기볼거리와 타임 스케줄, FP까지 조율 감안해 싹 교통정리를 해줬다. 우리가 선택의 고역 없이, 우왕좌왕 시간낭비도 없이, 짜준 스케줄 표에 따라 움직이면 되게끔 말이다.
처음 들어간 ‘Soarin’은 소극장이다. 긴 의자에 10명 정도가 일렬로 앉자, 보조원이 시트벨트를 해주며, 의자의 바(Bar)를 단단히 잡고 절대 움직이지 말란다. 소지품일체도 의자 밑의 소쿠리에 넣으라니 은근히 긴장된다. 백과 카메라를 소쿠리에 담으며, 소아린 Flight니 나는 것인 모양인데, 쏟아지지 않을까 언뜻 우려됐다.
불이 꺼지자, 앞에 푸르른 하늘이 쫙 나타났다. 순간 누군가 번쩍 나를 들어 올린 양 몸이 둥실 하늘로 치솟음과 동시, 발밑에 샌프란시스코 항과 금문교가 싸악 나타났다. 우와! 하는 찰라, 곤두박질이다. 바다에 빠지는 줄 알고 눈을 질끈 감았는데, 서늘한 태평양바람이 뺨을 스치며 바다냄새가 감지된다. 눈을 떠보니 어느 새 노을 진 하늘을 배경으로 멋진 나파벨리 위다. 오렌지농장인지 포도농장인지 과일향이 맴돈다.
글라이더로 활공비행하면 이러려나. 어지럽고 아찔하다. 다시 천천히 떠오르자, 바닷가 야자수들과 숨 막히게 아름다운 캘리포니아 연안 도시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멀어진다. 열기구를 타고 순회하는 격이겠다. 무섭고 짜릿하지만, 푸르른 창공에서 끝 간 데 없는 자유로움이 가슴가득 차오른다. 완전 한 마리 새다. 무자격자임에도 어깨에 날개가 달려 천사처럼 훨훨 하늘을 나는 느낌이다.
그랬는데 불이 켜지고 보니 의자가 제자리다. 소쿠리에 너무도 얌전히 있는 소지품을 챙기며 보니 붙박이의자다. 한바탕 속은 기분이다. 3D 인지 4D 인지 영상기술에다 내 수용 감각신호와 시각신호가 결합한 착시현상일 뿐이었나? 그럼 의자의 쿠션부분만 앞뒤로 약간씩 기울어졌던 거? 분명히 몸의 부양현상을 느꼈기에 ‘그래도 의문’이다.
옆에 위치한
로 들어갔다. 깜깜한데서 뭔가에 타고, 석기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인류생존변천사를 봤다. 교육테마라 학생들에겐 유익하겠다. 주변이 갑자기 환해지더니 천장이 높고 둥그런 온실 같은 데다. 에덴의 동산인가. 나무와 열매들이 평소 먹던 것과 천양지차다. 토마토는 사과처럼 큰 나무에 주렁주렁. 옥수수, 박, 호박, 오이 등은 열매가 크고 탐스럽다. 가지열매도 흰색이다. 색색의 피망들도 큰 나무에 열려 과일나무로 알았다. "천국의 열매네!" 소리가 절로 나온다. 여주 비슷한데 좀 더 통통한 타원형으로 럭비공을 연상시키는 빨강, 주황, 보라열매들이 있다.
한 나무에 다 붙어있으니 익는 농도에 따른 색의 변신? 진기해서 명찰을 보니 그리스어로 어원이 '신들의 열매'인 카카오다. 과연 오묘한 맛의 초콜릿이 생성될 신비한 모습이다. 피스타치오, 땅콩, 파인애플, 호두, 목화까지 친환경농법으로 재배되는 식물의 왕국이자 자연농(自然農)인 빛의 왕국이다. 온실인줄 여겼는데 지구본 안이었다는 것을 밖에 나와서야 알았다.
새삼 지구의 현실적인 고민과 문제가 머리를 친다. 농약과 유전자조작으로 점점 위험수위로 치닫는 먹거리들. 화학물질로 혹사당하고 유린돼 죽어가는 땅과 자연의 심각한 아픔. 익히 잘 알면서도 순간순간 잊고 사는 세계인들은, 쌀 한 톨, 물 한 방울의 낭비에서도, 생명과 지구를 느껴야한다. 허투루 쓰는 종이 한 장에서도, 나무와 자연을 의식하는 겸손의 눈을 가져야한다. 정말 나를 포함 우리 모두 자성해야한다.
은근히 높은 습도와 더위에 지쳐가던 차. 캐나다관이 설경 세트로 단장해 발길을 끈다. 어두운 홀에 의자도 없이 긴 나무막대로 칸을 구분한 곳에 사람들이 도열했다. 병풍처럼 사방을 둘러싼 360도 대형화면에 영상이 쫙 떴다. 영상해설자가 낯익은 코미디배우 마틴 쇼트다. 로키산맥과 기막힌 설경, 정갈한 도시들은 축복받은 땅이자 그림이다.
1번 타자로 기대한 나이아가라폭포는 웅장한 위용을 맨 나중에 드러내 사람을 압도시킨다. 옵션처럼 캐나다 연예인들 얼굴이 파노라마로 뜨는데 좀 놀랐다. 가수인 셀린 디온, 저스틴 비버, 세라 맥라클란, 배우론 라이언 레이놀즈 정도는 알고 있던 차. 그런데 짐 케리, 스컬릿 요핸슨, 제시카 알바, 기아누 리브스, 마이클 J. 팍스, 영화 '노트북'의 라이언 고즐링과 레이첼 맥아담스, 그리고 'Sex And The City의 사만다’ 킴 캐트럴 등등... 쟁쟁한 얼굴들이 다 캐나다출신인 걸 몰랐다. 캐나다문화의 저력이 부럽고 샘난다. 백범선생께서 왜 누누이 문화의 위대한 힘을 강조하셨는지 새삼 유추되는 바다.
프랑스관에 갔다. 캐나다관 식으로 서서 영상보기다. 처음엔 알프스 산과 비교적 덜 알려진 명소와 도시들의 홍보영상이다. 세느강의 노틀담 사원과 에펠탑은 '짱!'하고 끝내기로 보여준다. 선전할 필요조차 없는 국제적인 랜드 마크라는 자긍심의 발로요 전략이겠다.
한국관이 없어 신이 안 나지만, 만약 설치한다면 어떤 관광이미지로 유종의 미를 장식하지? 얼른 답이 안 나온다. ‘코리아’ 하면 명쾌하게 떠오르는 강렬한 ‘그 무엇’이 없다. 안타깝다. 당장 국민들 의견을 수렴 정립해, 결정적인 한방을 집중 광고해야한다. 만방에, 만인의 뇌리에 확실하게 각인시켜야한다. 급선무는 각자가 우리 금수강산에 대한 무한 사랑과 애착심, 자긍심을 갖고 보존하는 것.
그런데 명색이 사진작가란 사람이, 앵글에 방해된다고 200년도 더된 금강송을 비롯해 수십 그루를 감히 무단 참수시켰다. 그것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에서. 향후론 한국의 얼을 상실한, 국토와 자연사랑의 기본조차 결여된, 오불관언(吾不關焉)형의 사람을, 더 이상은 방치하고 용납해선 안 된다.
천안문을 세워놓은 중국관에 갔다. 대기실 옆의 홀에 진시황의 병마용갱(兵馬俑坑)의 용병(勇兵)모형이 쭉 서있다. 섬쩍지근해 눈을 돌렸다. 용병들을 만든 병사들을 비밀누설방지차원에 전부 몰살시켰다지. 토우들은 절통한 인부들 넋이 실린 거였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강제노역으로 명분 없이 끌려가, 연기처럼 스러진 한 많고 애통한 한민족의 원혼들이 저절로 겹쳐진다. 심사가 불편한 채 중국관광안내화면을 응시했다. 상해, 북경, 자금성, 황산, 계림 등을 비춰주다 예측대로 끝은 만리장성자랑이다.
옆의 일본관은 당연히 건너뛰었다. 약삭빠른 그들이 얼마나 또 잔재주를 부려놓았을지 빤하니까. 그걸 보면 가뜩이나 꼬인 심사가 더 꼬일 거니까.
반갑게 J언니 딸 내외가 온다. 시간께나 걸리는 Saint Pitersberg의 집에서 출근하다시피 한다. 매직킹덤 방문은 내일인데, 오늘밤 퍼레이드가 성대하고, 불꽃놀이도 여기보다 훨씬 볼만하단다. 하여, 하루 한군데 입장가능이지만, 오늘밤에 당겨 보는 대신 내일 일찍 퇴장하는 조건으로 합의를 봤단다. 아쉽게 한국식당이 없어 대타로 중국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매직킹덤의 밤 퍼레이드에서 성과 마차
야외 모노레일에 올라 매직킹덤으로 향했다. 완전 세상과 동떨어진 동화왕국의 신데렐라 뾰족 성이, 신기루처럼 멀리서도 한 눈에 들어온다. 매직킹덤의를 보러간 광장엔 사람들이 땅바닥에 진을 치고 앉았다. 깜깜해지자 빤짝빤짝 오색 크리스마스 전구로 장식한 차량행진이다. 탑승자들은 역대 디즈니 만화영화의 캐릭터들, 어릴 때부터 접해왔던 동화주인공들의 총출동이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피터팬, 피노키오, 인어아가씨, 미녀와 야수, 알라딘, 포카혼타스, 겨울왕국 등등...
진짜 화려하고 환상이다. 초등학생들에겐 저절로 꿈과 상상의 나래가 펼쳐질 만큼. 더한 건, 초록, 분홍, 파랑 옷으로 갈아입는 성이다. 순 조명발이지만 칼라패션쇼성의 자태는 한마디로 감동이다. 총체적으로 첨단산업기술, 독창적인 상상력, 환상적인 표현력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킨 퍼레이드였다.
끝나니 9시인데, 40분 후에야 불꽃놀이 시작이다. 끝남과 동시, 한꺼번에 퇴장할 인파들을 예상하니 겁난다. 연 관광객이 세계 놀이공원 중 최다인 무려 3천만 명이란 사실이 피부로 느껴지는 인산인해니까. 미련 속에 불꽃놀이를 포기하고 철수하는 대열에 합류했다. 그 대열만도 옛날 창경원의 밤 벚꽃놀이 수준의 구름떼와 거북이 행렬이다. 우려대로 미아들처럼 두 팀으로 헤어진 채 숙소에 도착했다. 겨우 이틀째임에도 내 집인 듯 마음이 놓인다. 마음 편한 26년 지기 짝꿍과 한 침대에 누우니 수학여행 온 기분이다.
레마르크는 "늙음과 죽음보다 녹슨 삶이 두렵다"고백했다. 오늘 만큼은 나도 새롭고 진기한 경험으로 나이답지 않은 '감성 충만'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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