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올랜도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사건은 극도의 증오와 인명상살용 총기의 결합이 초래한 최악의 참사였다. 마음이 병든 한 인간의 손에 한 자루의 총이 쥐어질 때 얼마나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충격적으로 보여주었다.
정확한 범행 동기는 당국의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평소 범인은 이슬람 극단주의를 추종해 왔다. 또 동성애에 대해 극도의 증오를 나타냈다는 증언들도 이어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그의 야만을 촉발시켰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평소 범인의 마음속에 쌓여왔던 증오의 감정이 테러행위의 방아쇠를 당긴 것만은 분명하다.
올랜도 테러를 놓고 정치권은 다양한 반응과 해석을 내놓고 있다. 당장 대선전의 핫이슈가 될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공화당의 트럼프는 미국에 대한 테러로 규정하면서 오바마 행정부의 테러정책 실패를 거론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이번 참사를 총기규제의 필요성을 부각시키는 계기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상황은 하나인데 해석은 정략적 계산에 따라 제각각이다.
올랜드 총기참사 같은 대량살상이 발생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뒷받침 돼야 한다. 우선 이런 행위를 결심하게 만드는 환경적, 심리적 이유가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필요조건일 뿐 대량살상의 충분조건은 되지 않는다.
마음속에 특정 부류에 대한, 혹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증오나 분노가 꽉 차 있다고 해서 이런 끔찍한 살상행위를 저지를 수는 없다. 짧은 시간에 동시 살상이 가능한 총기류를 갖고 있지 못하면 아무리 다른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해치고 싶다고 해도 머릿속 상상으로만 끝날 수밖에 없다. 대량살상을 가능케 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총기이다.
인터넷 보급으로 증오 바이러스는 예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게다가 경제적 양극화가 전 세계적 현상이 되면서 거의 모든 국가들에서 구성원들의 분노와 증오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른 범죄 역시 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최근 분노와 증오를 이기지 못해 저지르는 범죄들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던 한 실직 젊은이가 여의도에서 무고한 행인들에게 마구 칼을 휘두르며 공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런 종류의 무차별 흉기난동 사건들이 갈수록 자주 일어나고 있다. 사회학자들이 ‘사회 증오형 범죄’ 혹은 ‘절망범죄’라고 부르는 사건들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한국에서 일어나는 이런 증오형 범죄의 피해는 미국과 비교할 때 미미하다. 흉기가 대부분 총이 아닌 칼이기 때문이다. 칼은 총기에 비해 동시다발적인 피해를 입히기 힘들고 제어도 용이하다. 그런 까닭에 총기류가 엄격하게 금지된 나라들에서는 미국에서 흔히 발생하는 총기난사사건 같은 참사가 일어나기 힘들다.
그래서 범죄심리학자인 잭 레빈은 “사회적 증오가 대량살상의 참사로 발전하는 것은 결국 범죄자의 중무장이 가능한 미국적 조건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번 참사와 같은 사건을 ‘미국적 폭력의 전형’이라고 불렀다. 결국 대형 총기 난사사건은 ‘미국의 질병’이라 할 수 있다.
증오와 총기는 최악의 조합이다. 이 가운데 현실적으로 어떤 요소의 통제가 가능한지 정치인들이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증오의 확산을 막는 것도 필요하고 사회적 통합과 치유도 중요하지만 정책적으로 당장 손 댈 수 있는 부분은 총기규제뿐이다. 총기소지 찬성론자들의 입김에 계속 휘둘리기에는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다. 이들이 정말 보호하려는 것은 무고한 인명이 아니라 살상용 무기들이다.
하도 자주 총기난사 소식을 접하다 보니 이제는 희생자가 몇 명 정도인 사건은 일상적인 것으로 담담히 받아들이게 된다. 무서운 일이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미국적 폭력의 전형’에 대해 점점 더 감정적 내성이 생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다 미국이 이 지경이 됐을까. 증오와 총기를 분리시키기 위한 혁신적 조치를 더 이상 미루기 힘든 시점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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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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