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첫 1년 동안 경제원론 강의는 충격이었다. 활 모양의 곡선이 교차하는 점에서 수요와 공급, 그리고 가격이 결정되었다. 규제받지 않는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의 힘으로 공평하고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지시했다. 이기적인 인간은 합리적이고 정직한 방법으로 시장의 의사결정에 기여했다.
활 모양의 곡선은 기울기를 변화시키며 수요와 공급이 시장가격에 반응하는 이유와 방법을 설명했다. 정부의 규제로 왜곡된 시장이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려 작용하는지를 설명했다. 1년 동안 활 모양의 곡선은 상하좌우로 위치를 바꾸면서 경제 환경의 변화를 설명했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경제현상뿐 아니라 도덕적, 철학적 일상생활과 현상들을 설명할 때는 전율을 느꼈다.
당시 세계의 경제학은 미국의 시장주의 학자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밀턴 프리드만이 선두에 있던 당시의 시장주의는 고전 시장주의에서 변형된 형태였지만 자유시장의 범주를 뛰어넘지 못했다. 오히려 자유시장을 강조하기 위해서 수정주의를 채택했었다.
존 롤스의 영향으로 사회적 평등이라는 담론이 미국에 나타나던 때이기도 하다.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에 어떻게 악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반성과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으며,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새로 부임한 젊은 교수가 ‘평등과 분배’라는 강의를 시작하던 때였다.
이후 30여년간 시장경제의 맹신자였다. 1998년의 한국 IMF 위기도, 2008년의 미국 금융위기도 시장이 자유롭게 작용하지 못한데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다. 현실에는 완벽한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극히 최근이다. 시장은 일부 참가자들이 의도적, 악의적으로 조정하고 있으며, 그 선도에는 자신만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부정직한 이기주의자들이 있다. 경제원론 교과서도 시장이 왜곡될 수 있는 이유를 수없이 반복했다.
"All other conditions remain unchanged". 활 모양의 곡선들이 위치를 바꿀 때 항상 따라다니던 전제조건이었다. 경제 환경이 바뀔 때 시장정보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제공되지 않는다. 시간과 지역차이에, 개인차이까지 발생한다. 소득이 높은 사람, 자본이 많은 사람, 정치적 우위에 있는 사람이 정보를 선점하고, 차단하고, 왜곡시킨다. 부정한 방법으로 시장을 조정한다.
경제적 약자들은 그동안 자신의 무능을 탓하며 미국의 시장주의에 순응해 왔다. 2008년 금융위기는 사악하고 무책임한 조정자들의 실체를 파악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1년 시작된 ‘월가를 점령하라’는 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났지만, 정치인의 주목을 끄는데 성공했다. 민주당 경선에서 초반 돌풍을 일으킨 버니 샌더스가 이런 미국의 마음을 대변한다.
반공과 자유경제를 국시로 하는 미국에서 당당히 사회주의자임을 표방하고 민주당 경선에 뛰어들었다. 샌더스 돌풍에 위기를 느낀 힐러리는 자신이 진정한 진보주의자라고 선언했다.
최근 36년간 미국에는 두 명의 민주당 대통령이 있었다. 두 대통령 모두 국민의료보험을 공약하는 등 사회주의적인 색채가 있었지만, 정책상 실제 좌표는 보수였다. 버니 샌더스가 끝까지 경선에서 사퇴하지 않을 기세이고 힐러리의 부통령으로 국정에 참여할 가능성도 있지만, 현실 정치에서 혁명적 사회주의 정책은 미국에 어울리지 않는다. 샌더스 돌풍은 자유시장을 왜곡시키고 약자의 이득을 빼앗으려는 시장경제 파괴자들에게 경고를 하는 식으로 발전할 것이다.
이익은 자신의 것이며, 손실은 파산이라는 제도를 이용해 국민에게 부담시키며 부를 축적한 사람이 공화당 후보가 되었다. 추종자들을 선동하고, 반대편을 황폐화시키는 극우적 사고로 권력을 차지하려는 트럼프의 언행에 많은 한인들이 우려하고 있다. 일본의 대통령이 제국주의로 회귀하며 극우 보수세력을 결집하는데 우리는 분노한다. 동시에 우리는 유신독재를 향수하는 한국의 편향된 보수에 박수를 보내는 이중적 모습을 갖고 있다.
경제가 발전하면 하위계층도 그 이익을 누리게 된다는 낙수효과는 이제 현실성이 없는 주장이다. 인구가 증가하지 않는 성숙한 경제는 연 3%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경제학계의 정설이다. 모든 참가자가 위로받으며 살 수 있을 때 기득권자의 권리가 유지된다. 헛된 성장의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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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경/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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