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상업적 구매행위와 비슷하다. 여러 대상들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른다는 점에서 그렇다. 내 선택이 생활에 어떤 영향과 변화를 가져오게 될지 혜택과 비용을 현실적으로 따질 뿐 아니라, 심리적 만족감까지 고려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대선을 앞두고 미국 유권자들은 지난 수개월 동안 투표를 통해 자신들의 선택을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두 당의 후보가 사실상 확정됐다. 이들은 대선이라는 ‘정치 시장’에서 유권자들이 가장 많이 골라 든 베스트셀러라 할 수 있다. 또 한 차례 치열한 경쟁을 거쳐 오는 11월이면 최종적인 베스트셀러가 결정된다.
하지만 “베스트셀러가 곧 베스트 작품은 아니다”라는 사실은 정치 시장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대선 1차 관문에서 선택을 받은 두 후보들이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한 인물들로는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유권자들의 비호감도가 너무 높다. 역대급 수준이다. 그러니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단지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말 그대로 베스트셀러일 뿐이다.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내는 기본적인 힘은 인지도이다. 잘 알려진 것 일수록 더 잘 팔린다는 말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자신들의 제품을 되도록 널리 알리기 위해 큰돈을 들여 광고를 한다. 책 또한 유명 작가들의 작품일수록 쉽게 팔린다. 특히 어떤 게 믿을만한 것인지 잘 판단이 서지 않을 때일수록 더욱 그렇다.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가 바로 그런 케이스다. 두 사람은 수십년동안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아왔다. 매스미디어 시대에 이런 노출은 상업광고를 훨씬 뛰어 넘는 효과가 있다. 트럼프가 예상을 뒤엎고 승승장구하자 자신들이 그동안 트럼프를 너무 띄웠다며 후회한 뉴욕 타블로이드 매체 기자들이 있었다. 황색언론을 통해 형성된 인지도조차 이처럼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한국 정치판을 흔들고 있는 ‘반기문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반 유엔사무총장에 대한 유엔 내부와 국제사회의 평가는 그리 후하지 않다. 그럼에도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1위로 나오고 있다. 순전히 유엔총장으로 누려온 언론 노출 덕이다.
그리고 일단 어떤 추세가 형성되면 그것을 뒤따라가려는 대중의 속성이 작용하기 시작한다. 남들이 사니까, 남들이 고르니까 덩달아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베스트셀러는 ‘밴드왜건 효과’라 부르는 이런 과정을 밟아 만들어 진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베스트셀러의 탄생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사회적 상황과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베스트셀러가 되기 힘들다. 한국의 IMF 사태가 한창이던 1997년 ‘아버지’라는 제목의 소설이 무려 180만부나 팔리는 초대박을 터뜨렸다. ‘명퇴 바람’과 ‘고개 숙인 아버지’로 대변되던 시대상이 반영된 베스트셀러였다. 작품성이 만든 베스트셀러가 아니었다.
공화당 트럼프가 공화당의 베스트셀러가 된 배경도 마찬가지다. ‘반 정치’(anti-politics) 정서 확산과 맞아 떨어진 결과이다. 만약 그가 4년 전 대선에 나왔더라면 조롱거리가 된 채 슬그머니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적 요구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아무도 예상 못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니 그의 자질과는 별개로 트럼프 현상을 우습게 여길 수 없는 것이다.
대선은 훌륭한 작품을 선정하는 문학상 심사가 아니다. 가장 대중적인 상품이나 작품을 가려내는 인기투표 같은 절차일 뿐이다. 11월에 누가 최종적인 베스트셀러가 될지는 지켜 볼 일이지만 그 결과는 작품성과 별 상관이 없을 것이다.
이것을 일찌감치 간파한 사람은 19세기 영국의 민법학자 제임스 브라이스 경이었다. 그는 미국정치를 돌아 본 후 1888년 “훌륭한 인물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 정당정치로 대변되는 현실정치의 벽을 그 이유로 들었다. 브라이스 경의 결론은 “베스트셀러가 베스트 작품은 아니다”라는 명제에서 한 걸음 더 나간다. 그것을 쉽게 풀이한다면 이렇다. “베스트 작품은 베스트셀러가 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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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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