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미군 특수 부대 SEAL 소속의 마커스 루트렐 하사관과 부대원 세 명이 오사마 빈 라덴의 측근을 제거할 목표로 아프가니스탄 지역에 잠입해 매복 위치를 확보하고 자리를 잡은 순간 염소를 몰고 지나가던 목동들과 맞닥뜨렸다.
어른 두 명과 14세 가량의 소년이 포함된 목동들을 수색한 결과 아무 무기도 소지하지 않았으며 한 사람은 소년의 아버지였다. 국제법이나 도덕적으로 마땅히 보내줘야 했지만 대원들의 위치를 탈레반에게 알려 줄 위험이 컸었기 때문에 농부들을 죽여야 할지 그대로 보낼 것인지 심각한 논의를 했다. 한 대원은 적진에서 임무를 수행중인 우리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저들을 절대로 보내선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루트렐은 그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속에서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을 죽이는 건 비 윤리적 행위라는 양심의 소리가 들려왔다.
팽팽하게 의견이 맞선 가운데 한명이 기권을 하자 루터렐은 살려주자는 쪽의 손을 들어줬다. 목동들을 보내고 얼마지 않아 100여명의 탈레반 병사에게 포위돼 격렬한 총탄 세례를 받으며 대원 세 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들을 구출하러온 헬기까지 격추당해 미군 16명이 추가로 희생되고 말았다. 중상을 입고 기적적으로 구출된 루트렐은 훗날 우리에게 사형을 집행하도록 내가 캐스팅 보트를 행사했다며 후회하며 한탄했지만 결과를 되돌릴 순 없었다. 이 내용은 마이 클 샌댈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사례로 소개된 실화를 요약한 것이다.
과거 심각한 품질결함 은폐 사건으로 일본 내수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미쓰비시 자동차 회사가 연비 조작이 있었다는 발표 후 주가가 급락해 사흘 만에 시가 총액의 절반이 공중으로 날아가며 또다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오늘의 현대자동차가 있게 한 일등 공신이며 80년이라는 긴 역사를 가진 회사가 바람 앞 등불 신세로 전락한 현실이 안타깝다.
배기개스 조작 등 최근 들어 불거진 자동차 회사들의 대형 스캔들은 결코 하루아침에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처음 무겁게 생각하지 않았던 사안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암세포로 변이된 것이 분명하다. 당시 연비나 배출개스 수치를 조작할 때는 경쟁에서 앞서기 위한 마케팅 차원의 문제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 번 잘못된 관문을 통과한 문제는 누구도 언급을 꺼리는 조직의 특성상 시간이 지나면서 일상화 되는 것이 보통이다. 자동차 회사의 최고경영자라면 연비나 배기개스 같은 기술적 한계치를 모를 리 없겠지만 이를 외면했거나 적극적으로 확인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주가의 향방에 따라 경영진의 거취가 결정되는 환경에서 문제를 알았다 해도 먼저 터뜨리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경영자가 버려야 할 가장 나쁜 습관은 잘못된 문제를 알고도 조치를 미루는 우유부단이다. 세포의 모든 변이가 반듯이 암으로 진전된 건 아니겠지만 질이 나쁜 변이를 방치하면 생명을 위협하는 암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더가 결정을 미루는 첫 번째 원인은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함에서 비롯된다. 조직의 모든 현안을 파악할 수 없다 해도 회사의 생존과 직결된 본질적 문제를 경영자가 모른다면 존폐를 위협하는 위기가 닥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다음은 해결하는 과정에서 닥칠 고통을 회피하고 싶은 나약함이다. 한국의 조선관련 기업들이 겪고 있는 구조적 문제도 경영진이 몰랐을 리가 없었지만 작은 종기를 짜내는 고통을 회피하다 결국 썩은 살을 도려내는 큰 수술대에 오른 신세가 됐다.
마지막은 평소 판단의 기준이 되는 명확한 정의가 정립돼 있지 않은 이유다. CEO는 사내 조직간 첨예한 의견 대립이나 비슷한 주장 같지만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올 논리와 마주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들어보면 두 주장 모두 일리가 있고 회사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결정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으며 내적으로 실리가 필요할 때 명분을 선택해야 하는 입장과 마주치면 더욱 난감해 진다.
센델 교수는 앞서 소개한 사례와 더불어 몇 가지 예시를 했지만 정의란 무엇인지 명제만 던졌을 뿐 결론은 내리지 않았다. 다만 마음씨 착한 지휘관이 잘못된 결정을 내려 부하들을 모두 죽게 했다면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리더는 다수의 의견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올바른 결정을 하는 사람이다. 결과적 책임을 져야하는 경영자가 기업의 생존과 영속성을 기반을 둔 판단은 당연하며 국가가 헌법을 지키는 것과 같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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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보에어 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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