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전통적인 여성이었다. 한번도 돈을 버는 일을 해본 적이 없다. 가장이 벌어오는 생활비는 늘 빠듯했고 검약은 몸에 배었다. 평생 검소한 삶을 사셨는데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수의였다. 노년이 되자 서울에서 안동까지 가서 정갈한 안동포와 질 좋은 명주를 사서 아버지와 당신의 수의를 장만하셨다. 그리고는 갈 준비를 마쳤다며 마음 편해 하셨다. 죽음 준비였다.
죽음은 그렇게 정성 들여서 준비하는 것, 격식에 맞춘 겹겹의 옷을 마지막으로 품위 있게 입고 떠나는 것이라고 옛 어른들은 생각했다. 인간의 4가지 고통(四苦) 중 ‘생(生)’을 제외한 ‘로병사(老病死)’의 과정을 가족들의 보살핌 속에서 거치고 마침내 선산에 묻히는 것으로 한 사람의 생애는 끝을 맺었다. 대가족 제도와 지역 공동체가 살아있던 시절, 죽음은 자연스럽게 찾아들고 자연스럽게 맞아졌다.
지난 반세기 한국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사회적 변화만큼 개개인의 삶이 바뀌었고 죽음도 바뀌었다. 미국에 사는 우리는 이민으로 인해 큰 변화 하나를 더 보탰다. ‘생로병사’ 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 외양은 많이 달라졌다. 죽음은 더 이상 가만히 있다가 맞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찾아들기 전,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심신이 건강할 때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전혀 예상치 못한 삶의 끝을 맞을 수도 있다.
지난주 한국에서 보도된 두 뉴스를 보면서 죽음을 생각했다. 첫 뉴스는 사업에 실패한 아들이 숨진 노모의 장례비용이 없어 시신을 두 달이나 차에 싣고 다녔다는 이야기였다. 86세의 노인은 60세의 아들 때문에 집까지 경매로 날리고 추위와 지병으로 험한 날들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마지막 날들이 그러하리라고 노인은 상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두 번째 뉴스는 노인들이 자신의 장례를 직접 준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보도였다. 본인이 스스로 준비한다고 해서 ‘셀프 장례’라는 이름이 붙었다. 자녀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 혹은 혼자 살고 있는 노인들의 고독사 두려움이 그 배경이다.
‘셀프 장례’에 대해서는 주위에서 여러 사람이 관심을 보였다. 노년이 되면 부부가 단 둘이 살고, 자녀들은 멀리 떨어져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부 중 한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혼자 남게 되는데, 수백 수천마일 밖에 사는 자녀들이 부모를 챙기는 데는 한계가 있다. 빈민층 독거노인이 아니더라도 고독사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70대에 재혼하는 분들의 심중에는 이런 두려움도 포함되어 있다.
“아내가 떠나고 처음에는 혼자 살 생각이었다. 그런데 몸이 아프고 나니 덜컥 겁이 나더라. 이러다 내가 죽어도 아무도 모르겠구나 싶더라”고 70대 중반의 한 남성은 말했다.
‘셀프 장례’는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일본에서 특히 많고, 미국에서도 자신의 장례를 준비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젊은 세대는 너무 바쁘고 노인들은 아무도 곁에 없이 혼자 사는 고독한 세상이다.
한인사회에서 죽음준비 캠페인을 하는 단체로 소망소사이어티가 있다. 죽음 관련 결정들을 미리 내림으로써 삶의 마무리를 준비하면 남은 삶도 더 의미 있게 살 수 있다고 소망소사이어티는 홍보한다. 제일 먼저 추천하는 것은 소망유언서(사전의료지시서) 작성이다. 의학적으로 회복 불가능 상태이거나 뇌사 상태가 될 경우 연명치료를 할지 여부를 우선 결정해두라는 것이다. 이런 결정 없이 의식불명 상태가 된 노인들이 튜브로 영양공급을 받으며 수년씩 식물인간으로 사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안타깝다고 소망의 유분자 이사장은 말한다.
다음에 결정해둘 것은 장례절차. 갑자기 사망할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다. 소망유언서는 매장이나 화장을 선택하고, 장기나 시신기증 의사를 밝히게 한다. 유 이사장은 미국생활 근 50년 동안 매장-화장-장기^시신기증을 마음속으로 모두 거쳤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내가 죽으면 당연히 한국의 선산에 가서 묻히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30년쯤 살다보니 비싼 돈 들여 거기까지 갈 필요 있나, 여기 공원묘지도 좋은 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또 10년쯤 지나니 죽으면 어차피 영혼으로 천국에 갈 텐데 굳이 매장할 필요가 있나 싶어 화장으로 바꾸었습니다.”가능한 한 내어주고 홀가분하게 떠나자는 사회 환원, 장례 간소화 운동을 전개하면서 그는 또 생각을 바꾸었다. 시신기증으로 의학도들에게 몸을 내어주기로 했다. 죽음준비를 다 마친 것이다.
가족들, 자녀들의 보살핌 속에서 죽음을 맞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이 세상 소풍 끝내는 일이 각자의 몫이 되고 있다.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떠날지 준비가 필요하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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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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