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실시된 20대 국회의원 선거는 모든 정당의 실패로 막을 내렸다. 결과만 본다면 새누리당의 참패와 더 민주당의 대승 그리고 국민의 당 성공으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지역 기반인 호남에서 싹쓸이 패를 당한 민주당과 전국에서 지지를 얻지 못한 국민당이 승리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선거 전날까지도 과반을 쉽게 넘을 걸로 예상됐던 새누리당이 유권자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은 건 그들의 고백대로 오만함에서 비롯됐다. 구태정치의 전형인 줄 세우기 공천으로 내홍을 겪으면서도 지도부는 자신감에 차 있었으며 과반 달성이 어려울지 모른다는 너스레는 국민을 향한 일종의 협박처럼 들렸다.
새누리당이 주도한 19대 국회는 대의정치 제도의 중요한 가치인 협상과 타협의 정치는 실종되고 집권자의 의지만 관철시키려는 오만이 넘쳐흘렀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과반의석 확보가 어렵다고 판단됐던 한나라당 시절 자신들이 주도해 통과시킨 국회법을 철폐하자는 뻔뻔함을 보인 것이다. 또 한 입으로는 늘 국민을 받든다고 외치는 대통령이 민의를 무시한 내리꼽기식 독선적 공천으로 민심을 돌아서게 만들었던 것도 주요 패인중 하나일 것 이다. 온갖 잡음이 불거지며 두개로 분열된 야당에게 표면적 대승을 안겨준 한국민의 분명한 메시지는 한심한 건 봐 줄 수 있지만 오만함은 용서치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생각한다.
독일 이민자가 1895년 설립한 미국의 슈윈(Schwinn) 자전거 회사는 70년대 말보로와 코카콜라 다음으로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가진 기업이었다. 개인의 교통수단으로 이용되던 자전거 수요를 자동차가 차지하면서 판매 급감의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레저용 자전거로 콘셉트를 바꿔 극복한 경험도 있다. 80년대로 접어들면서 레저의 범위가 차츰 확산된 가운데 마운틴 바이크의 수요는 꾸준히 증가했지만 일반 판매는 정체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경쟁사들은 산악에 적합한 자전거 개발에 적극 나서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갔지만 슈윈의 경영진은 이를 폄하하며 외면하다 주력 시장마저 저가에 밀려 결국은 파산하고 말았다.
자동차 업계 부동의 1위를 지키던 GM도 70년대 오일 쇼크를 경험한 후 엔지니어들을 일본으로 보내 도요타 자동차를 스터디했지만 소형차는 미국 소비자에 맞지 않다는 경영진의 오판으로 포기했었다. GM이 그때부터 소형차 개발에 힘을 기울였다면 지금처럼 우수한 연비의 자동차 판매가 다수를 차지하는 시장 환경에서 지금처럼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전자업계 리더였던 소니가 표준화된 VHS 방식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개발한 베타 방식을 고집하다 실패한 사례는 경영의 고전에 속하며 이밖에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하고도 전통적 필름에 감겨 몰락한 코닥과 자사가 개발한 복사 기술만 고집하다 후발 주자들에게 시장을 모두 빼앗긴 제록스 등 수많은 사례들이 있다.
이렇게 혁신적인 기술로 시장을 장악하며 경쟁사를 압도해 나가던 선두 기업들이 몰락한 공통점은 언제나 자신들이 소비자를 주도 한다는 오만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다.
현대는 저가 자동차라는 소비자 인식을 극복하고 세계 일류 브랜드로 성장한 대표적 기업이다. 현대차보다 먼저 미국 시장에 진출한 이태리의 피아트와 프랑스 푸조 등 유럽의 유수 자동차 회사들이 철수한 시점에 다소 엉성한 엑셀차가 들어 왔을 때 오늘 같은 성공을 예측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실제 가치보다 절하된 야박한 평가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오직 고객의 마음을 얻겠다는 일념으로 꾸준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자신들의 방식을 고집하다 철수한 유럽 회사들과는 달리 소비자의 작은 불만도 간과하지 않고 겸허하게 반영한 결과 글로벌 탑 5 자동차 회사로 우뚝 선 것이다.
정부나 기업은 물론 오만한 개인도 시간이 지나면 반듯이 대가를 치른다는 교훈을 수많은 실패 사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교만은 내놓고 건방을 떠는 것이지만 오만은 속으로 건방을 떠는 것이다. 진정한 배려는 입이 아닌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아닌 척 감추려 해도 전달될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의 속내다.
정치인은 몇 년에 한번 평가를 받지만 기업은 소비자로부터 매일 선택을 받아야 한다. ‘부족한 건 이해하지만 오만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 대중의 확고한 의지를 경영자가 잊어선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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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보에어 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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