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무속신앙에서 최영을 장군신으로 모신다면 중국에는 관우가 있다. 관우는 용맹과 의리를 갖춘 무의 화신으로 민속신앙 숭배의 대상이 된다. 그런 만큼 삼국지 정사와 연의에 더해 민간전설들이 전해지는 데 그중 화타와 얽힌 일화가 있다.
관우가 팔에 독화살을 맞고 당대의 명의 화타에게 상처를 보인다. 화타는 독이 뼈에 스며들고 있다며 피부를 절개하고 뼈를 긁어내는 수술을 하는데, 피가 철철 흐르는 수술 내내 관우는 태연하게 술을 마시며 바둑을 두었다고 한다.
수술 후 화타는 관우에게 100일 간의 요양을 권한다. 하지만 용맹한 장수 관우는 코웃음을 친다. “왼팔로 싸우겠다”며 전쟁터로 나간다. 그때 화타는 탄식을 한다. “관우의 병은 치료됐지만 오만의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관우는 최후를 맞는다. 손권에게 속아 함정에 빠지고는 ‘경솔했다’고 후회하지만 때는 늦었다. 관우는 참수 당한다.
역사적 사실로 보면 관우가 수술 받을 당시 화타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허구가 가미된 이야기라는 말이다. 천하무적 관우를 무너트린 것은 오만, 오만 앞에 장사는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오만하면 남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오만과 불통 - 요즘 한국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다. 4.13 총선 논평에서 빠지지 않는 말이 오만과 불통 그리고 독선이다. 선거에서 참패한 것은 새누리당이지만 비판의 화살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다. 낯 뜨거울 만큼 노골적으로 친박 비박을 가려낸 공천파동 드라마의 총감독이 누구인지 국민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더해 박 대통령은 “진실한 사람들만 선택받을 수 있도록”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고 나라를 위해 일하는 국회를 만들 수 있도록” 표를 찍어달라며 새누리당의 빨간색 옷차림으로 투표하는 본을 보였다.
‘선거의 여왕’은 이번 선거를 왼팔로 싸워도 이길 것으로 자신했을지 모르겠다. 야권은 분열했고, 보수층인 60대 이상 인구는 증가했다. 조건으로는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박근혜’ 이름만 들어도 껌뻑 죽는 콘크리트 지지층 역시 여전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래서 ‘수첩’ 들여다보며 진박 뽑아 앉히기를 계속했다면 그것은 오만이고, 오만의 화살이 퍼트리는 분노의 독은 전통 지지층으로까지 파고들었다.
결과는 역사에 길이 남을 여당의 참패. 과반의석을 자신하던 새누리당은 원내 1당에서조차 밀려나는 수모를 당했다. 국민들은 매섭게 등을 돌렸다.
2012년 12월19일.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날이다.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 젊은 세대와 나이든 세대,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 … 나라는 둘로 갈라지고 대립은 격렬했다. 3년4개월 전의 그날을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떠올리고 있지 않을까. 떠올려야 된다고 생각한다.
당시 박 후보는 절반의 지지로 당선되었다. 51%의 지지를 얻음으로써 49%의 지지를 얻은 문재인 후보를 눌렀다. 자신을 찍은 자와 안 찍은 자로 양분된 국민들 앞에서 박 당선인은 ‘대통합의 정치’를 약속했다. 어머니 마음으로 포용해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했다.
집권 4년차를 맞은 지금 분열의 골은 더 깊어졌다. “손가락질하면서 비난하는 세력과 소통하지 않는 것을 불통이라고 한다면 자랑스러운 불통” “저항세력에 굽히지 않는 것이 불통이라면 임기 내내 불통할 것”이라고 청와대 홍보수석이 오만하게 말한 적이 있고, 그렇게 불통은 당당하게 이어져왔다.
박 대통령의 임기는 1년10개월 남았다. 실제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대선정국으로 들어서기 전까지 1년여뿐이다. 청와대를 떠나면서 후회가 없으려면 통치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 박 대통령 자신이 말한 ‘열 자식 안 굶기는 어머니 마음’을 실천하면 되는 일이다.
자식이 열이면 의견도 열이고 다투는 일도 많다. 말 잘 듣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말 안 듣는 자식도 있다. 그럼에도 그 모두를 끌어안고 함께 가는 것이 어머니이다. 원하는 게 뭔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경청은 기본이다. 이야기를 들어야 중재도 되고 타협안도 나온다.
지난 3년여 집권기간 박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단 세 차례, 야당 대표와의 회담 역시 불과 몇 차례였다. 여당 대표들조차 대면이 어렵고 장관들은 대면 대신 서류로 보고를 한다니 청와대는 고립되었다. 고립 상태에서는 현실을, 민심을 읽을 수가 없다. 여당 후보들이 선거유세 현장에서 경험한 민심을 수없이 당에 전해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오만의 다른 얼굴은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추락이라는 사실을 이번 선거가 보여주었다. 박 대통령이 새로운 모습으로 남은 임기를 마치기를 기대한다. 나라도 살고 본인도 사는 길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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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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